19세의 상간녀

배우자의 외도에 대처하는 자세 #3

by YUN ji



나의 19세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딸아이들의 19세를 상상해 본다.


이혼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큰딸은 내년이면 18세가 된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때때로 전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되살아 나기도 하지만 독이 될 뿐이다.

19세의 나는 다 컸다고 까불고 다녔지만 지금 생각하면 지금의 17세 내 딸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전남편의 여자친구는 어땠을까. 어른처럼 보이는 그녀의 사장님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걸까. 그래서 어쩌면 피해자 일 수도 있을까.

19세의 상간녀는 스스로의 선택이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남편의 외도상대의 나이를 알았을 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원조교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누가 들어도 자연스러울 일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24살이었고 상대가 19세였으니.



그들의 대화를 들여다볼수록 '얘네들은 정말 연애를 했구나' 확신이 들었다.

그런 관계의 대화가 평범할 수 없겠지.


"나만 사랑해야 돼!", "두 명을 사랑할 수는 없는 거야!"

"알겠어, 너만 사랑해. 지금 싸우는 중."

혹은,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도 안돼?"

"왜 애들 핑계를 대? 두 번째라 그래? 난 언제 첫 번째가 될 수 있니"


그리고 제일 끔찍했던 것.

"할머니가 태몽을 꿨다고 엄마가 그러더라."

"헐, 검사기 사러 가야겠네 ㅋㅋㅋㅋㅋ"

그들의 불륜을 내가 알게 된 이후의 대화가 이 정도였다.


내 아이들의 아빠가 이런 인간이라니, 부끄러웠다. 지금도 부끄럽다.

아이들 아빠는 내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면 상간녀는 나의 몫은 아니다.

그 사람이 어느 방향이든 정리해야 했으나 가정과 불륜,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불륜을 들켰을 때 그 사람은 자기가 빌기만 하면 나는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덮고 나면 더 잘 숨겨서 이중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용서는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좀 참아보겠다, 일단은 현상유지가 되도록 견뎌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던 것을 용서라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런 착각 속에서 그 사람은 잘 숨기지도 못했다.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면서 나는 점점 의지가 다져지게 되었다.

소장을 작성하면서 나의 결혼생활을 되새겨보고, 그와 그녀의 사생활을 들여다볼수록 슬픔의 감정은 옅어지고 분노가 쌓여갔다.

남편의 휴대폰이나 이메일, SNS등을 뒤져본 것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을 들먹여 고소라도 하겠다면 하라지, 가정이 파탄 나게 생겼는데 그따위는 대수가 아니었다.

책임을 묻는다면 지면 될 일이고 내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간통법이 없다고 간통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간녀는 소장을 받기 전 자신의 계좌가 있는 은행으로부터 정보제공에 관한 우편물을 먼저 받았다.

내가 소장을 접수할 때 같이 요청했던 사실조회신청으로 상간녀의 개인정보를 법원에 제공했다는 은행의 안내문이었다.

우편물은 그 아버지가 받게 되어서 온 가족이 다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 덕에 애들 아빠는 그 집 식구들에게도 욕을 먹어서인지 나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졌다.

여자 쪽에서 자신을 고소하려 한다, 사업장으로 찾아오려고 한다는 말들을 늘어놓는데 나로서는 '그 얘길 왜 나에게?'라는 생각만 들었다.

애초에 내가 만든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만든 문제는 너와 결혼해서 아이들은 낳고 산 것,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알아서 질게.


제발 소송을 취하해 달라고, 어떻게 하면 취하해 주겠냐고 해서 "너의 여자친구와 만나게 해 줘."라고 했다.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단 그들의 관계가 정리될 수 있다면 소송은 취하할 생각이 있었다. 남편과 나의 문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며칠 후 상간녀를 만났다.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가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소송취하의 조건으로 사실확인서와 각서를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작성해 주었다.

나의 질문에 상대방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


그들이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나와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 거의 매일 밤 상간녀의 집에서 성관계를 가져왔다는 사실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구체적인 내용이 사실확인서에 항목으로 정리되었다.


각서에는 이 시간 이후 남편과 어떤 연락도, 만남도 갖지 않겠다는 내용과 이를 어길 시 일정액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사실확인서와 위약벌각서에 각각 서명과 지장을 찍고 원본을 받은 후 상간녀를 먼저 돌려보냈다.

무슨 정신으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역겨움이 치밀어온다.



집으로 돌아와 사실확인서와 각서를 첨부해 소송취하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소송취하한 확인서를 출력해 상간녀에게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그들을 믿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약속을 지켜주기를 바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러고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나의 남편과 그의 여자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