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24가지 지혜
# 내 삶의 기준을 세우는 법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고 그 기준도 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란 내가 가지고 태어난 유전적, 환경적 영향을 넘어 좀 더 나다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또한 내 후손에게 내가 가진 유전적 형질보다 더 나은 형질의 것을 물려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세운 삶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준'은 '기본이 되는 표준'입니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해석해 보면, '삶의 기준'이란 내가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 기준은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나 사람들과 어긋나지 않는 일반적이고 호응받을 수 있는 '내 행동의 나침판'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나의 짐, 홀로 짊어질 때 단단해진다.
요즘 제 행동의 기준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입니다. 남들도 나와 같이 모두 다 자기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거기에 보태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깊게 들어왔습니다.
주위에서 저를 보는 사람들은 세상 편하게 사는 철부지 아줌마 같다느니 걱정 없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내 속도 모르고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싫지 않습니다.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들이 내 표정이나 내 행동에 있지 않아서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는 내 마음에 이런 신념이 강해서입니다. 내 힘든 이야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내가 풀어야 할 일이고 내가 짊어져야 할 문제라면 굳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걱정을 끼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걱정하고 안 하고도 그분들 선택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서운한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남편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와 생각이 같습니다. 양가 부모님은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줄 아십니다. 그 어려운 30대 고비를 넘길 때는 많이 서운하고 야속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때 그런 저의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이렇게 기대지 않고 단단하게 설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제 행동의 기준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입니다. 남들도 나와 같이 모두 다 자기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거기에 보태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깊게 들어왔습니다.
# 나의 기준이 있어야 삶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실천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약속을 하는 편입니다. 좋은 기분으로 만나지 못할 때는 되도록 약속을 미루거나 다른 핑계를 댑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상대방도 우리 만남에 좋은 기분과 기대감을 가지고 올 텐데 거기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마야 안젤루는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을 잊고, 당신이 한 일을 잊지만, 당신이 준 ‘느낌’은 결코 잊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으로 대화를 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함께한 시간이 비로소 즐거운 추억과 좋은 '느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노력하는 행동의 이유입니다.
삶의 기준 없이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자칫 휩쓸려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자신을 볼 때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이 없어서 생기는 무의식적 행동입니다. 이 또한 우리가 알아차리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진짜 삶에서 실천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실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다른 사람의 기준을 내 기준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 삶의 기준을 세우는 첫걸음, 나 자신을 탐구하라.
삶의 기준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우선 자신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면 잘 알지 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입니다. "모든 지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습니다. 우선은 나 자신을 알아야 삶의 기준도 세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다면 먼저 그 답을 찾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수준의 의식으로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 나의 의식을 좀 더 높게 키워야 풀 수 있다.’라고 어느 선현이 이야기한 걸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내 능력이 부족할 때는 세상에 나와 있는 지식과 지혜를 찾고 모으려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느끼는 대로 내 삶에 직접 적응해 보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나에 관한 답을 찾아 주지 못합니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긍정적이면서도 이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도 나를 모른다'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을 의심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무의식은 의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식인 것처럼, 내가 나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 또한 무의식의 영역이라 의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방법은 있습니다. 자신에게 자유와 시간과 고독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의도적인 불편함이 함께 하면 더 좋습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나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을 보듯 그렇게 자신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하면서 나오는 내면의 말을 잘 들어봅니다. 말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신념, 가치관 등 우리의 무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