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인 최신 SF를 읽고 싶다면…!

- 『터스크』(레이 네일러)를 읽고

by 사각사각

* 본 서평은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오늘날 SF가 20세기 SF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20세기와 21세기 SF를 비교하며 가타부타 우열을 가리는 것은 그렇게 지향되는 일은 아니다. SF 독자로서의 과제는 오늘날 SF가 가진 사변성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변성 너머를 상상하며 동시에 작가에게 그 너머 요구하는 데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2024 휴고상 중편부문 수상작 『터스크』(레이 네일러)는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작품이다.


멸종된 매머드를 되살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의 귀환은 그저 어떤 털북숭이 코끼리가 돌아왔다는 것 이상으로 생태계 전체가 돌아왔다는 뜻이니까요. 매머드들은 잎을 따 먹으면서 숲을 밀어내고 스텝 지대에 잔디가 더 자라도록 도와요. 겨울이 되면 얼어 있는 땅에서 잔디를 찾느라 위에 쌓인 눈을 밀어내고, 땅을 태양 아래로 드러내 영구 동토가 되는 걸 방지해 줘요. 그야말로 좀 더 회복력이 강한 세상을 지어내는 거랍니다. 매머드들은 인간이 파괴한 세상을 어느 정도 복구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거예요. - 90~91p

세르게이 지모프(실제 인물)의 이론을 차용해서, 매머드의 지구 귀환은 자연을 되살리는 숭고한 것으로 인지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신 과학 이론을 반영한 현대 SF는 오늘날 독자에게, 고전 SF와 다른 새로움을 제공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매머드 복원은 인류의 경이로운 승리가 아니다. 되레 인류가 도덕적으로 타락했음을, 자본의 노예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기능한다.

매머드는 총알을 맞은 그대로 분홍빛 스프레이를 뿜어내고 신음하며 생명을 토해내고 쓰러졌다. 마치 모든 인간에게 항의하는 대지의 신음 같았다. -31p

부활한 매머드는 더 이상 관념적인 것이 아닌 물질로서 하나의 재산으로서 전락해 버렸다. 사람들은 상아를 얻기 위해 총을 쏘고 매머드는 사냥당하기 시작했다. 분명 잃어버린 생태계를 복구하기 위한, 어쩌면 도덕적으로 인류의 과거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행위가 인류의 도덕적으로 파산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작중 중반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트, 여기 이 어둠 속 어딘가에는 매머드들이 있어. 매머드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신만이 모든 걸 알고 있겠지. 우리는 뭐든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잖아." - 57p

매머드를 부활시킬 수 있다면, 그 기술은 매머드 그 너머를 노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정신 역시도 부활의 대상이 되었고, 한 인간이 매머드의 육체에 정신이 주입된다. 정신은 과거 인류였으며, 신체는 매머드인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이 점에 대해 사변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바로 『터스크』가 가진, 그리고 뛰어난 SF가 가진 미덕이다.


매머드는 어떻게 세상을 인지하는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혹은 기타 최신 SF단편을 떠올려 보자. 이 작품들은 우리(인간 독자)가 가진 인지체계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라며, 비인간의 인지체계를 생경하게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사변적으로 상상된 비인간의 인지체계는 작중 세계를 (심지어 인간 독자의 세계마저도) 변화시킨다.

매머드들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아요. 지금 있는 곳에서 우리를 발견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청각과 후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나지요. - 155p

작중의 매머드 역시 매한가지이다. 인간과 다른 감각, 특히 후각이 발달된 매머드는 우리와 다르게 세상을 본다. 발달된 후각은 입천장에 위치한 특수 후각 기관인 '야콥슨 기관'을 통해 단순한 지각체계를 넘어 기억을 소환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기에 전술한 작중 (과거) 인간의 의식을 가진 매머드는 후각을 통해 과거로 걸어가는 통로를 연다. 이 비인간적 인지체계는 SF장르의 재미를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를 갖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같이 읽을 수도 있다.)


작중 '냄새'는 끊임없이 강조되는 모티프다. 매머드를 사냥한 사냥꾼에게 배는 피냄새는, 지울 수 없는 죄의식을 나타낸다.(28p) 일상생활 속의 물건은 과거 인간이었던 시절을 이어준다. 냄새는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게 만들며, 그 경험 속에서 작품은 인지과학이 묻는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까지 도달한다.

이렇듯 인간 중심의 인지 체계를 벗어나 비인간 생명체의 감각 세계를 탁월하게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터스크』는 현대 SF가 주목하는 '비인간'이라는 주제를 훌륭하게 성취해 낸 모범적 사례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아쉬움도 더러 있었다.

이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 소설에 그려진 모든 등장인물, 기관명, 그리고 사건들은 작가가 상상한 결과물이거나 허구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또 다른 사실이 존재한다. 이 소설은 코끼리를 밀렵하고 상아를 거래하는 못난 현실과 얽혀 있다는 것이다. - 211p ('감사의 말'에서)

저자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이분법적 논리가 굉장히 뚜렷하게 발생한다. 자연은 선이고, 이를 파괴하려는 인간(혹은 자본)은 악으로 묘사된다. 작중 인물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경계에서 끝없이 갈등하지만, 이 갈등의 기반이 선과 악이 철저하게 나뉘었다는 점에서 갈등의 긴장감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점은 아마 중편의 구조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추측해 본다. 중편은 장편보다 서사에 분량을 할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레이 네일러의 첫 장편소설인 『바닷속의 산』은 어떨지 기대되는 점이 있다)

책이 가진 사변적 아이디어는 훌륭했으나, 너무나 뚜렷한 사변의 목적성 때문에 사변 그 자체가 빛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SF팬이라면 이 책 띠지의 표어를 보고 가볍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테드 창, 켄 리우, 어슐러 르 귄을 잇는 새로운 거장의 탄생"이라니!


만약 당사자가 겸손한 성격이라면 손사래를 칠 만큼, SF 신인 작가에게는 지나치게 큰 수식어일지도 모른다. 과연 레이 네일러에게 이러한 찬사가 정당한지 묻는다면, 나는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것이다. 『바닷속의 산』이 출간된 지 이제 겨우 4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평가가 머지않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터스크』에서 보여준 사변적 아이디어만 보더라도, 네일러가 지닌 잠재력은 분명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책 『터스크 The Tusks of Extinction (2024)』와, 저자 레이 네일러(Ray Nayler)

『터스크』

저자: 레이 네일러

번역가: 김항나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페이지수: 216p


한줄평: 현대 SF의 비인간 담론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작품, 다만 서사 부분은 중편 때문인지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보다 울었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