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울었다, 진짜로

-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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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밈이 그 효력을 잃는 시기는 다음과 같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넷상에서 소비되기를 그치고 현실에서 나타날 때. 유명인이나 정치인이 그 밈이 사용하는 순간, 밈은 우리에게 웃음을 줄 수 없다.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밈 죽음의 순간은 바로, 현실 속 본인의 입에서 그 밈이 발화되는 것이다.

2016년에 제작된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시사회 반응은 호평으로 가득 찼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하고 명명백백한 망작인 것이 드러나자, 시사회의 호평은 일종의 조롱으로서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다. 특히 가장 강렬한 표현인 '보다 울었다. 진짜로'는 지금도 히어로 영화 팬덤 내에서 잊히지 않을 문일 터다.

이 오래된 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더 이상 캐캐묵은 먼지 쌓인 밈으로 남지 않았고, 나의 현실을 침식했기 때문이다. 바로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후였다.


보다 울었다. 진짜로.


당연히 이때의 울음은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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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출판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과학문학상(이하 한과상)은 김초엽, 천선란, 청예 등 한국 SF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작가들을 배출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 유일의 SF 작가 등용문"이다. SF 독자 입장에서 한과상은 새로운 SF 작가와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이다. 비록 작가의 첫 데뷔작이라서 미숙한 면이 있어도, 각 작품마다 기대되는 부분이 늘 있는 것이 한과상 수상작품집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한과상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SF 작가들을 처음 소개하는 한과상 도서인 만큼, 본 리뷰에선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모두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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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우 작가의 단편 「카나트」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극심한 사막화가 진행된 미래, 인류의 생존은 지하 수로 '카나트'에 달려있다. 물을 독점한 거대 기업 '오아시스'는 인체의 물 사용량을 줄이는 '신체 기계화 수술'을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오아시스 소속의 물 배달원 아이작 역시 이 수술을 받게 되지만, 단기 기억상실이라는 예기치 못한 후유증을 겪으며 거대 기업의 시스템 안에서 그의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SF적 소재는 네 가지다. '기후변화(사막화)', '물부족(경제재로서의 물)', '사이보그화', '기억 상실'. 모두 익숙하면서도 시의성 있는 소재 선택이다. 특히 기후위기는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주제이다. 2023년 한과상 수상작이 모두 인공지능을 다룬 것처럼, 올해는 모두 기후위기 담론을 다루리라 예측했지만, 실제로 읽었을 때 이 예측이 어긋나서 흥미로웠다. (후술할 「옛 동쪽 물가에」(이연파)에서는 기후위기 언급이 간접적으로 등장하긴 한다.)


그렇다면 모범적인 소재 선택에 걸맞게, 「카나트」는 좋은 SF인가?

작품 맨 뒤에 수록된 심사평에 의하면, 「카나트」는 "모든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지지한 작품"이지만, 난 치기 어리게도 다르게 주장하고자 한다. 심사를 맡은 김희선 작가는 "단순히 ‘소행성’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SF라고 보기는 어렵겠다"라고 했듯, 같은 기준으로 본 단편 「카나트」에게도 의문부호가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기후변화'와 '물 부족'과 '사이보그화'와 '기억상실'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SF라고 보아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아니요"라고 외칠 것이다. 작품에 과학 소재가 등장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SF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 역시 좋은 SF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1759074704'.png 『버나드 양 가라사대.(バーナード嬢曰く。)』 3화의 한 장면

여기서부터 SF 장르에 관한 다소 지루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좋은 SF는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이루는 관계망이 서사의 원인으로 작동할 때 성립한다.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기대어 말하자면, 과학기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매개자로서 다른 요소들을 변형 및 번역하며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SF 작가 프레드릭 폴의 유명한 어구를 인용하자면, "좋은 과학 소설은 자동차가 아닌 교통체증을 예측해야 한다". 이는 SF 소설이 소재를 예측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소재가 만든 사회기술적 상호작용을 서사에 담아 달라는 요구이다.

어느 SF 소설에서 미래의 교통수단(자동차)이 등장하고, 사고가 일어난다. 좋은 SF 작가라면 단순히 사고가 났다는 사실 전달에 그치면 안 된다. 사고의 이유를 독자에게 설명하고, 그 설명 과정에서 작품 속 요소가 서로를 매개하며 사고가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작품 속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방식으로 엮일 수 있다. 프레드릭 폴의 설명처럼 교통체증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동차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 인간 신체의 한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동차를 향한 금기시된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를 상상하는 것 SF 작가의 의무이다.


좋은 SF는 소재도 중요하거니와 그 소재와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 만약 소설 속 핵심 소재인 소행성을 드래곤으로 대체했을 때 작품 속 이야기가 그대로 기능한다면, 과학적 소재는 교체 가능한 소품에 불과하다. 그런 작품은 빛나는 소재와 뛰어난 필치로 무장해도, 전술한 좋은 SF의 기준을 충족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소행성이 나와도, 기후변화와 물 부족과 사이보그화와 기억상실이 나와도 좋은 SF가 아닐 수 있다.


이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자. 「카나트」의 각 소재들은 치밀한 관계망을 형성하는가? 이 평가 기준에 대해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사막화와 물의 경제재-화(化)는 『듄』이나 《매드맥스》등의 작품에서 흔히들 다룬 내용이다. 또한 사이보그화와 기억의 상실 역시 수많은 사이버펑크 작품에서 다뤄졌다. 문제는 이들 사이의 연결성이 마치 당연하듯이 넘어간다. 다른 장르에서 클리셰처럼 다뤄졌다는 미명하에, 작품 내부에서의 서사 관계는 생략되었다. 특히 물부족과 사이보그화의 연결성은 다른 요소와 달리 익숙지 않은 연결점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또한 가볍게 여기고 넘어간다.

‘오아시스’는 바이오 로봇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오랜 기간 연구 개발한 끝에, 인체의 장기와 팔다리의 일부분을 로봇화하는 하이브리드 생체 로봇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로 인체의 물 의존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보고서가 곧바로 학계에도 발표되었다.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시작한 서비스에서 하이브리드와 일반 개체의 평균 생존율에 큰 차이가 없음이 밝혀지자, 회장은 인체 로봇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오아시스의 모든 라이더에게 무상으로 하이브리드 로봇화를 해준다는 발표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물값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빈민층 젊은이에게 오아시스 라이더는 매력적인 직업이 되었다.
- 「카나트」 중에서

작품은 물부족의 해결법으로 사이보그화를 제시하지만, 둘의 접속마저도 끝내 선언적인 수준을 넘지 못한다. 하이브리드 기술이 어떻게 신체의 수분 의존을 낮추는지, 물을 소비하지 않는 대가로 무엇을 새로 의하는지 등의 이야기는 결여되었다. 이 설명에서 물을 식량이나 햇빛으로 바꿔도 플롯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작중 새로운 기술은, 독자에게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약속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평가기준은 소프트 SF식의 독해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소프트 SF는 작품 내 등장한 과학적 기술이 서사를 어떻게 변형하는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전술한 네 가지 소재 모두가 서사의 결정적 매개자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특히 사이보그와 기억상실은 그러한 결점이 더욱 크다. 회사가 물부족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부작용 있는 물-대체 액체를 준다 해도 이야기는 성립한다. 기억 상실이 아니라, 사이보그의 열악한 충전소 시설로 인해 지각을 많이 해 회사에게 찍혔다 해도 이야기는 성립한다.


결론적으로 「카나트」는 좋은 SF의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SF적 설정을 보기 좋게 나열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 SF가 출판계에 굳건히 자리 잡은 이상, SF가 이와 같이 작품 속 배경 및 소품으로만 치부하는 관성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카나트」가 앞으로 더 섬세한 관계망을 가진 SF적 세계관을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아가길. 본 단편이 데뷔작인만큼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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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실망한 작품이었다.


먼저 작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다. 이연파 작가는 고전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그 뛰어난 학문적 배경을 작품에 녹여낸다. 본 단편에서도 그런 이연파 작가의 학문적 배경이 잘 드러난다. 동일한 소재를 쓰더라도 이연파 작가의 글은 고전 텍스트에 대한 남다른 이해로 다른 이들이 쉬이 따라할 수 없는 개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향후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럼 이연파 작가의 「옛 동쪽 물가에」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6세기의 연구원 한소담이 6세기 신라 시대로 타임워프 한다. 목적은 그 시기에 일어난 천문현상 관측이다. 그렇게 6세기로 간 소담은 천문현상 관측시까지 절에서 비구니로 활동한다. 하지만 시간여행자 특성상 자신이 떠나온 시간대가 아닌 현재 머무는 시간대에 익숙해지는 현상을 겪게 된다. 6세기 신라인들과 일상을 보내던 중, 소담은 혜성의 정체를 알고 ‘관찰만 하라’는 규율과 ‘직접 개입’ 사이에서 갈등한다.


줄거리만 읽었을 때, 곧장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시간여행 장르에서 길이 빛나는 고전, 코니 윌리스의 「화재 감시원(Fire Watch)」이다.

두 작품은 여러모로 공통점을 가진다. 두 주인공 모두 연구 목적으로 과거에 파견된 시간여행자로서, 한쪽은 대화재, 다른 한쪽은 혜성 충돌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관찰하러 간다. 주인공들은 '관찰만 해야 하는'는 규율을 부여받지만 결국 사람을 구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갈등과 마주한다. 또한 낯선 시대의 언어·예법·소통 방식의 차이로 인해 시간여행자임이 들킬 긴장감이 초반의 긴장을 형성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현지인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점점 그 세계에 동화된다.

내러티브 톤에서도 유사성이 뚜렷하다. 두 주인공 모두 수다와 잡학적 TMI를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옛 동쪽 물가에」에서는 26세기 회사의 ‘에너지 절약 지침’이나, 6세기 이름 ‘하늘이르기’가 어떻게 붙었는지 같은 자잘한 설명이 이어진다.

결국 두 작품은 ‘대사건을 배경으로, 관찰자이자 연구자인 시간여행자가 현지인과 관계 맺으며 비개입 규칙과 인명의 가치 사이에서 흔들린다’는 서사의 구조에서 강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사건을 노래로 해결한다는 점은 코니 윌리스의 또 다른 작품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를 연상시키지만, 이는 다소 과잉된 해석일 수 있다.


물론 이 유사성이 곧바로 ‘직접적으로 읽고 베꼈다’는 증거가 되진 않는다. 코니 윌리스의 「화재 감시원」이 SF 장르 역사 속에서 워낙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다 보니, 오늘날에는 「화재 감시원」에서 등장하는 설정들은 일종의 클리셰로 고착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윌리스를 읽지 않고도 비슷한 틀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다만, 나는 여전히 SF 지망 작가라면 국내에 번역된 주요 고전은 이미 섭렵했으리라 짐작했기에, 처음에는 이런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SF는 본질적으로 상호 영향과 변주 위에서 발전하는 장르다. 그런 점에서 「화재 감시원」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 자체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고전문학적 배경을 접목해 만든 '한국식 시간여행'의 변용은 분명 독창적이었다. 뛰어난 명작에다가 자신만의 해석이 가미된 서사적 재미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다만 이번 작품은 유사성의 밀도가 높아 독서 내내 원전의 그림자가 강하게 의식된다. 그에 비해 명시적 예우로서 코니 윌리스에 대한 언급이 부재하다는 점이 몹시 정말로 아쉽다. 후기나 각주, 혹은 텍스트 내부의 가벼운 언급(예를 들어 옥스퍼드/감시원/바솔로뮤의 이름 언급)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작가 에세이를 보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 에세이에서는 본인이 얼마나 SF를 사랑하는지 자랑할 정도였는데, 거기서에서조차 코니 윌리스의 이름이나 「화재 감시원」이 간접적으로도 언급되지는 않는다.

소설로는 르 귄, 젤라즈니, 하인라인, 딕처럼 고전으로 불리는 영미권 작가의 책을 한두 권씩 읽었다.
(중략)
수년간 만난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2021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읽고 독서 노트에 기록해 둔 단독 저자의 책은 다음과 같다. 『7인의 집행관』(김보영, 2013), 『기파』(박해울, 2019),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2019),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켄 리우, 장성주 옮김, 2020), 『지상 최대의 내기』(곽재식, 2019), 『천 개의 파랑』(천선란, 2020),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2021),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전삼혜, 2021), 『나인』(천선란, 2021), 『얼마나 닮았는가』(김보영, 2020), 『단어가 내려온다』(오정연, 2021), 『므레모사』(김초엽, 2021), 『골든 에이지』(김희선, 2019), 『우리는 도시가 된다』(N. K. 제미신, 박슬라 옮김, 2022), 『잔류 인구』(엘리자베스 문, 강선재 옮김, 2021).
- 에세이 「2020년대에 일어난 자갈의 도약 진화에 관해」

더 아쉬운 점은 심사평에서조차 코니 윌리스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가 유사성을 의식해 이 부분을 숨기려 한다면, 평가를 담당한 쪽에서라도 선행 텍스트와의 계보 및 영향을 짚어 주는 편이 독자에게 공정하다. 오마주라고 가볍게 상기시키는 한 문장만 있었어도, 이번 작품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을 꺼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시선도 더욱 늘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좋은 선례를 상기할 만하다. 한국 SF 작가들이 모두 빚지고 있는 듀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기대고 있는 장르적 계보를 후기에서 분명히 밝힌다.

모든 장르 작가들은 선배들이 만든 재료들을 갖고 작업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우선 지침(the Prime Directive)과 앤서블(ansible)은 모두 기존 작가들의 발명품이다. 미개 문명에 대한 선진문명의 개입을 금지하는 최우선 지침은 오리지널 〈스타트렉(Star Trek)〉 1시즌의 ‘아르콘의 귀환(The Return of the Archons)’ 에피소드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이 개념을 만든 사람은 제작자 진 L. 쿤(Gene L. Coon)이었던 것 같다. 초광속 통신기 앤서블은 어슐러 K. 르 귄의 해인 유니버스에서 사용되는 도구로, 이 세계를 다룬 첫 장편인 『로캐넌의 세계(Rocannon’s World)』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리전』(듀나, 2024년 개정판)

이러한 출처 표기의 습관은 법적 의무라기보다 SF 장르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는 관행이자 예의다. 특히 본 작품처럼 쉽게 의식될 정도로 유사성의 농도가 짙은 경우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결과적으로 작가와 심사평 양쪽의 '코니 윌리스 언급 부재'는 많은 실망감을 자아낸다. 독자 입장에서는 자칫 부정적으로 오해될 여지도 있다. 앞서 말한 한과상 작품의 질적 하락과 더불어, 대회 명성에 흠이 될 수 있는 아쉬운 판단이라 생된다. 더이상 독자와 한과상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도록, 다음 한과상에는 독자와의 신뢰를 한층 견고히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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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편은 최장욱 작가의 「창조엔진」이다.

평범한 소설과 달리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사건을 회고하는 형식이라, 복잡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취업 준비생이자 아마추어 개발자인 ‘기수’가 우연히 시스템 버그를 발견한다. 고대 문명이 남긴 달걀 모양의 나노로봇 제조기를 통해 문명을 쉽게 발전시킬 수 있고, 이는 기존의 어려운 문명 창조 난이도를 자랑하는 <창조엔진> 시스템 버그와도 같았다. 버그와도 같은 달걀을 이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창조엔진> 서버 속 새로운 엔진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기수는 개발에 착수하고, 그 개발은 기존 <창조엔진>을 운영하던 기업의 견제를 받기 시작한다.


강지희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게임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소설적으로 변용된 작은 스펙터클을, 게임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반전이 거듭되는 즐거운 소동극으로 다가올 작품이다."「창조엔진」은 오늘날 한국 게임에서 벌어지는 방식을 SF 및 블랙코미디적으로 다뤘기에, 게이머들에게 더 재밌으리라 장담한다. 특히 이 내용을 최근 게임계에서 나타나는 '유즈맵의 도래 및 자본주의적 변질'과 엮어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다른 소설에서 쉬이 볼 수 없던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이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김성중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 다만 흥미로운 스토리를 거의 서술로만 일관해 아쉬움이 남는다. 서술에 의존하면 지나간 다음에 들려주는 형식이 되어버려 이야기의 숨이 꺾이고 생동감이 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즉 본 단편은 게임 개발 및 개발 과정의 암투 등의 흥미진진한 설정을, 일관된 서술투로만 기술되었다. 하필 본 도서의 마지막에 실린 단편인지라, (작가 입장에서 이 부분은 억울하겠지만) 지친 독자 입장에서 본 단편의 구체적 요소는 놓칠 확률이 크다. 상기한 복합적 이유 때문에 본 작품은 많은 이들이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제임스 블리시의 『양심의 문제』 1부를 요약하자면 외계 행성의 처우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제임스 블리시는 다양한 연출로 인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심지어 소설임에도 중간에 희곡 형식을 차용해서, 등장인물의 혼란스러움을 극대화했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다양한 연출은, 단요 작가의 『개의 설계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이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일명 사이코패스―이기에, 자칫 일관된 서술 방식이 내내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요 작가는 중간중간 영상처럼 보이는 등의 다양한 서사 방식으로 이 지루함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러한 경우처럼,「창조엔진」도 더 나은 전달법이 있으리라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작중 언급만 된 개발 시기의 암투를 스펙터클하게 그려냈다면….


하지만 「창조엔진」이 남긴 아쉬움이 이 작가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앞선 작가들보다 더 기대되는 면이 있다. 바로 작가의 에세이 <미래가 아닌 현재의 초월적 범죄들과 SF의 효능>에서 SF적 재미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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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햄버거가 영양상 완전식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잘못된 것은 감자튀김과 탄산음료와 같은 곁들임 음식. 그런데 왜 피자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제치고 왜 햄버거만 옹호를 받는 것인가? 혹시 햄버거에는 모종의 음모가 있는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초월적 범죄들과 SF의 효능> 에세이는 마치 음모론과 같은 의심에서 시작해서 작가만의 SF론(論)으로 끝났다. 본 책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훌륭했고, 양질의 SF엽편과 같았다.


사실 햄버거라는 소재는 SF 작품에 종종 중심으로 등장하는 소재이다. 당장 한국 SF만으로 범위를 좁혀도, 떠오르는 작품이 무려 2개나 있다. 조현 작가의 단편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에서는 '햄버거'라는 제목의 시집이 패스트푸드 업계의 발전에 일조하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진짜인 양 논픽션처럼 기술한다. 이규락 작가의 단편 「햄버거를 위한 테러리스트」에서는 우주적 햄버거 테러 사건을 일으키는 외계생명체를 블랙코미디적으로 다룬다. 햄버거라는 익숙한 소재를 가지고, 한 작가는 가상논픽션을, 한 작가는 블랙코미디 스페이스오페라를, 한 작가는 음모론에서 시작한 SF론(論)까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도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개한다면, 우린 이를 '상상'이라고 부르고 뒤이어 '사변'이라고 부르고, 이윽고 'SF'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최장욱 작가는 그러한 SF를 썼다.


조만간 작가 본인의 작품집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에세이에서 보인 재치를 참작하면, 단편 「창조엔진」의 문제점은 고치리라 전망한다. 그가 가진 SF에 대한 훌륭한 아이디어를 잘 연마하여, 예리한 단편으로 찾아왔으면 한다. 그동안 보지 못한 참신한 아이디어라면, 필히 SF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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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과상을 주최하는 허블 출판사에 대한 비판 역시 피할 수가 없다.


25년도(8회)부터 한과상은 수상 작가의 수를 기존의 절반으로 축소하는 한편, 신인 작가만이 아니라 기성 작가도 참여할 수 있게 했고, 중단편 부문에 한해 1인당 출품 편수를 1편에서 2편 이상으로 늘렸다. 이는 참가자의 상향 평준화 및 작품의 질적 향상을 노렸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장단점이 존재하니, 가타부타하지 않겠다. 다만, 허블 출판사에 대한 불만은 바로 한과상 수상작품집의 구성에 있다.


전술했듯이, SF 독자에게 한과상은 새로운 작가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무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상 작품집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면면을 충실하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에서는 작가당 두 편 이상의 중단편을 접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수상 작품집에는 단편 한 편만이 수록되었다. 이는 새롭게 등단한 작가의 SF 작품을 기대하던 독자의 바람과는 분명히 어긋난다.

비어 있는 단편 하나의 자리를 작가의 에세이로 대체한 것 또한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작가들의 고유한 SF론(論)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당연하겠지만 작품으로 독자와 소통해야 한다. 에세이가 작품에 얹어 있는 덤이 아닌, 작품을 대신하는 대체재로 기능한 것은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욱이 출판사 측이 한과상 수상 발표를 연기하였는데, 이 에세이를 수상 작가가 쓸 시간을 주기 위해 시상식과 작품집 출간 일정마저 늦추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결정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1756812576.png 김초엽 신간과 함께 알라딘에서 공개한 SF소설 판매 부수

김초엽 작가의 신간 『양면의 조개껍데기』 출간과 함께 공개된 국내 SF소설 판매 부수를 보면, 한국 SF가 힘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점점 독자가 외면하는 SF 시장에서, 한과상의 아쉬운 면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아직 올해 포스텍 SF 어워드 수상작품집을 읽지 않아서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섣부르지만, 부정적인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체감된다.


이제는 한국 SF가 새로운 변환점을 추구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더 다양한 개성을 추구해야 하고, 기존의 K-SF 담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SF의 유행을 만들고 이끌어야 한다. 진부함에서,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이 SF가 가진 힘일 것이다.

비록 허무맹랑하게 보일지라도, 응당 SF 독자라면 더 나은 대안적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작가들이 앞으로 뛰어난 SF 작품을 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상상력야말로 SF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도의 한과상 및 판매 부수를 경각심 삼아, 내년에는 진정한 SF를 한국에서 보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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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저자: 고선우, 이연파, 최장욱 / 출판사: 허블


한줄평: K-SF, 이제는 정말로 숙고하고 반성해야 한다

평점: ★★☆ (2.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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