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김초엽다운, 낯섦과 익숙함

-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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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김초엽다웠다.

신간 단편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작가가 그동안 추구해 온 작품론을 가장 선명하게 구현다. 김초엽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자면, "타자화를 통해 세계를 공감각적으로 번역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단편집 역시 이와 같은 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단편은 장편과 달리 서사가 아닌 아이디어와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다. 덕분에 작가가 보여주고 싶고 동시에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는 더 뚜렷이 빛난다. 무려 4년 만에 찾아온 단편집인 만큼, 그동안의 사유는 한층 단단해졌다.

이 책은 오롯이 '김초엽다운' 단편들을 담고 찾아왔다. 하지만, '김초엽다운'이라는 표현에는 양가적인 느낌이 존재한다. 만약 기존부터 김초엽 작품을 즐긴 독자라면,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작품에서 제기해 온 사유들이 심화되고, 단편으로 응축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김초엽 작품 세계와 맞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 역시 읽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김초엽다운 글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저자의 한계 역시도 그대로 보인다. 후술 하겠지만, 전작부터 제기되어 온 단점이 따라왔다.

요약하자면 이 단편집은 김초엽 문학의 매혹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래서 더더욱 '김초엽다운' 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타자라면, 비인간이라면, 다른 신체를 가진다면 어떻게 감각할까?

토머스 네이글의 사고실험처럼, 박쥐가 된다고 상상해 보자. 어두운 동굴 속 나는 날아갈 방향을 정하기 위해 눈이 아닌 입을 연다. 입에서 고주파의 초음파가 나오고, 기다란 귀가 반사된 초음파를 듣는다. 이렇게 박쥐는 자신 주변을 '보는' 것이 아닌 '듣는'다. 이처럼 박쥐는 인간과 다르게 세상을 감각하고 인식하고 경험한다.

'비인간'은 김초엽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 용어로 자라 잡고 있다. 일례로, 작가의 다른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과 『파견자들』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를 전복한다. 두 작품은 인류가 재난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드러내고, 나아가 식물·균류와 같은 비인간 존재와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오늘날 SF가 쓰이는 방식을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한다. 저자의 다른 서적『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움벨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과 다른 지각 세계를 가진 동물들을 이야기할 때 움벨트umwelt라는 말을 쓴다.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체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세계, 그 개체가 살아온 또한 지각하는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 중에서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전술한 움벨트를 통해 기존의 인간적 사고를 타파하고, 비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새롭게 인지한다. 이 '비인간되기'는 SF적 상상력으로, 사변적 모색을 통해 구현된다. 특히 이 담론은 신체에 대한 고찰과 연결된다. 본디 사람은 각자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트랜스휴먼적인 몸 바꾸기를 통해 구체화된다. 가령 본 책에 수록된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발달된 신체공학 기술로 다양한 동물 피부를 자신의 피부에 이식할 수 있는 미래상을 그린다. 다른 단편 역시도 인간적 관점을 버리고, 다른 존재로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한다. 이 상상의 중심에는 움벨트가 자리 잡고 있다.

사장은 원래 단단한 재료로 조각을 하다가 유동적이고 쉽게 뭉개지는 재료로 넘어왔는데, 그랬더니 형상을 조형하는 방식도, 감각하는 방식도, 상상하는 방식도 바뀌더래요. 사장은 이런 생각에 도달했죠.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
- 15p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중에서)

움벨트로 기인된 낯섦은, 김초엽 작가 특유의 서사구조와 맞물려서 극대화된다. 김초엽 작가는 항상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나타나고, 서사의 결말은 복합적인―슬프지만 희망찬― 감정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공감한다. 일례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단편 「감정의 물성」에서도,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도, 끝내 주인공은 공감하고 이해한다. 독자에게 명확한 정답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고요한 소란」에선 어느 날 갑자기 사물·동물이 전 세계 인구의 80%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물·동물의 소리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주인공에겐 사물의 목소리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이들의 소리가 끊어졌다. 이런 야릇한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김초엽 본인이 '우주 먼 곳에서 온 비인간 존재에게 이번 소설집에서 딱 한 편만 소개한다면'* 「고요와 소란」을 뽑은 것도 이런 이유일 터이다. 지구에는 인간 외에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왜 사람들은 허구를 찾을까… ‘환상’이 우리를 살게 하니까

도시는 고요해졌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이제 그 고요를 인간 아닌 존재들의 소리가 채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해결은 그 모순적인 고요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 215p (「고요와 소란」 중에서)

김초엽의 서사는 독자에게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오직 작품이 쌓아 올린 서사만이 고요하게 답할 뿐이다. 독자가 불투명한 작품 내용을 공감하려는 순간, 전술한 '움벨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 속 주인공에게 타자는 여전히 낯설고 생경한 존재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독자 역시도 작품을 이해하고자 고민하고 숙고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와 주인공 사이의 이해관계는, 곧 독자와 작품 사이의 관계로 전이된다. 결국 김초엽이 만들어내는 움벨트적 낯섦은 단순한 작품 속 장치가 아닌, 작품 전반을 지배하며 독자가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도록 이끈다.

전술한 김초엽의 작품론을 『양면의 조개껍데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가볼 수도 없는 너머의 세계에 매료되고 그 세계들에 기대어 인생을 살아갈까." 「비구름을 따라서」 속 문장은 비단 작품 속 인물뿐만 아니라 독자를 위한 문장이기도 하다다. 김초엽의 작품을 그동안 즐겼다면, 이 책은 필히 가볼 수 없는 세계로 떠나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가장 '김초엽다운' 글은, 작가의 단점 또한 공유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단편집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반복되는 서사 구조가 야기하는 진부 함이다. '김초엽다운'이라는 표현에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은, 작가 고유의 개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정한 전형성이 굳건히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세 번째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슷한 플롯 속에서 독해가 된다는 점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단편 중 「진동새와 손편지」에서 나타난 외계 생명체의 상상력은 반짝이며 빛났다. SF 작품에서 외계 생명체의 언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바벨 17』(새뮤얼 딜레이니)과 「네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처럼, 이 단편 기존―기성 인간―의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 형식을 상상한다. 빛과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외계 생명체는 진동을 통해서 소통한다. 이 진동-의사소통을 더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진동새와의 공생관계를 가진다는 사변은 독자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 뛰어난 사변의 끝 역시 비인간을 향한 공감과 이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를 느낀다.

내가 의식을 굳이 Z의 신체를 흉내 낸 유기체 모조품으로 옮겼다고 했었지. 그래서 본체로의 동기화가 지연되었다고. 그건 금속형-본체-조각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진동새의 패턴 외의 무언가를 감각하기 위해서였어.
- 128p (「진동새와 손편지」 중에서)

다음으로는 등장인물의 성별 구성 문제이다. 김초엽의 작품 속 주요 인물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왔다. 남성이 등장하더라도, 대체로 주변적 역할에 머문다. 사실 필자인 나는 이 부분을 딱히 의식해서 읽은 적이 없지만, 실제로 비평 담론 및 독자 리뷰에서 이 부분은 언급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장 최근 쓰인 「비구름을 따라서」에서 무려 남성이며 비중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분명 주목할 부분이라서 기술하였다. 이것이 일시적인 징후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식적 글쓰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김초엽 작품의 주목할 요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정합성이 부족을 들 수 있다. 이 부분은 사실 가혹한 비판일 수도 있다. 애초에 김초엽 작가는 소프트 SF에 가깝다. 초기작인 「관내분실」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종종 과학적으로 엄밀함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엿보이지만, 이제는 김초엽 작가는 엄연한 소프트 SF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진동새와 손편지」에서 빛과 소리가 없는 세계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용하다. 되레 그 생명체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사유와 사변을 즐기는 것이, 오늘날 주로 권유되는 SF 감상법이다. 물론 뱀파이어가 왜 십자가에 취약한지 과학적 언어로 설명한 피터 와츠와 같은 사례가 있지만, 이는 독특하고 대단한 예외로 취급할 수 있다.

본 서평에서 과학적 정합성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이 미지의 현상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할 때 발생하는 문제 때문이다. 「고요와 소란」에서는 사물과 생물이 갑작스레 말을 하게 된 현상에 대해 과학적 가설이 제시된다. 하지만 정작 이론에 대한 설명은 추상적이어서, 엉성하게 짜인 과학적 기반은 노출된다. 결국 세계관의 정합성은 붕괴하고 작품의 빛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탁해진다.

잇따른 이론 연구를 통해 그들은 거미줄이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시공간의 균열이나 어긋남에 가깝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은 너무 복잡하고 추상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주류 이론은 계속 생물학으로 거미줄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 223p(「고요와 소란」 중에서)

「달고 미지근한 슬픔」에서도 양자역학적 설명이 시도되지만, 그 설명의 밀도는 지극히 옅다. 결과적으로 작품에서 제시하려는 깊이 있는 SF적 세계관은 허술한 과학적 설명으로 인해 설득력을 잃는다. 역설적으로 가장 세계관이 탄탄하게 느낀 작품은 「비구름을 따라서」이다. 본 단편은 SF라기보다는 과학 현상에 대한 환유를 끌어 온 작품이다. 과학적 설명은 전무하지만, 제시한 환상성으로부터 파생된 세계관의 매력은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대로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번 단편집은 김초엽의 세계를 다시 확인하게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구조적 약점을 드러낸다. 결국 '김초엽다운'이라는 평가는 낯섦을 이끄는 찬사와 동시에 익숙함을 은연중에 의식하는, 양가적인 표현으로 남는다.



한국 SF 팬은 2019년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로 만났고, 이제 6년이 지났다. 독자들은 김초엽 작가에 익숙해졌고, 그녀의 글을 여러 번 읽었을 것이다. 움벨트적 시선과 비인간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가치 있고 같이 논의할 이젠 반복과 편중, 그리고 허술한 과학에 더 이상 눈이 가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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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신간과 함께 알라딘에서 공개한 <과학소설 판매 부수> 그래프이다. 김초엽 이후 한국 SF계의 성장이 명징하게 나타나지만, 이와 동시에 한국 SF계의 뚜렷한 성장 동력 약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초엽에게 거는 기대는 여전하다. 6년 전 한국 출판계에서 소위 'SF 붐'을 일으켰듯, 다시 한번 새로운 물결을 열 가능성은 충분하다. 분명 김초엽의 작품은 훌륭하다. 전술한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그 비판을 충분히 가릴 수 있는 수많은 장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너머를 상상해야 한다. 본디 앞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은 SF의 의무이니.

그러니 이젠 '포스트-김초엽'을 상상해 보자. 그것은 김초엽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김초엽 시대에 난 김초엽 작가도, 이 책도 분명히 있으리라 전망한다.『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지금까지의 김초엽을 집대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기반으로 새로운 김초엽을, 새로운 한국 SF를, 그리고 새로운 물결을 상상해 본다. 그런 SF적 상상과 함께 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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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조개껍데기』

저자: 김초엽 / 출판사: 레빗홀


한줄평: 비인간되기를 통해 낯섦이라는 감각을 인지한다.

별점: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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