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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Mar 30. 2021

모교로부터 온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려서일까? 액정화면에 모르는 번호가 뜨면 나도 모르게 고민을 한다. 받아도 되는 전화인지, 괜스레 귀찮아지는 건 아닌지. 몇 주 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약간의 고민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억 깊숙한 곳에 있던, 조금은 낯익은 목소리였다.


전화를 건 분은 내 출신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직접 수업을 들었던 적은 없지만 자주 뵀던 분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선생님께선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하는 교지에 글을 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엔 나름 모범생처럼(?) 생활하긴 했다. 그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도 매년 반장을 하기도 했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모교 자체 학생수가 적었던 터라 조금 과장해서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학생회에서 활동까지 했으니 까불 만큼 까불고 다녔다. 그 덕분에 여러 선생님과도 가깝게 지냈다.


왕성하게 활동했던 만큼 기분 좋은 추억도 많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돌이켜 봤을 때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하루를 보낸 적은 없었다. 아침부터 공부에 열을 올렸고, 체력을 키우겠다며 점심시간에는 빼놓지 않고 축구를 하며 땀을 흘렸다. 고3 때에는 공부할 시간에 운동한다고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중 친구들과 장난치다 많이 혼나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닭싸움을 하다 교실 문을 부숴 엉덩이 뜨거워질 만큼 사랑의 매를 맞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 슬리퍼(학교에서는 슬리퍼를 착용했었다) 날리기를 하며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아련한 추억들이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졸업 후에도 꾸준하게 학교를 찾아갔다. 담임 선생님들부터 친했던 선생님들까지 쭉 뵙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갈 만큼 한 번 모교에 가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3 때 담임 선생님께선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하라며 항상 시간을 내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곳이 모교지만 그래도 제안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잘 나가는 훌륭한 동문들이 많을 텐데. 긴 역사는 아니어도 5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일에 내 이름을 올린다니. 곧장 수락하기 어려웠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해보겠다고 하긴 했지만 막막했다.


필력이 좋지는 않아도 글 쓰는 게 두려운 적은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지만 기자 경험까지 했으니... 무식이 용감이라고 글 쓰는 걸 주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일이 닥치기 전까지. 


전화 통화를 하고 며칠 뒤, 전화를 주신 선생님을 찾아가 희망하시는 내용을 들었다. 내가 재테크 책을 썼다는 걸 알고 계셨더라. 그래서 재테크 관련된 간단한 조언을 글로 전해주면 어떻겠냐 하셨다. 내용만 따지면 부담이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2주간 고민을 했다. 자리가 자리니 만큼 어찌 가볍게 쓰랴. 기록으로 남는 게 아니니 차라리 강의를 하는 거였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 같지만.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불가능했다. 


여러 학교에서 재테크 강의를 할 때 쓰던 자료를 훑어보고 그중에 어렵지 않은 내용들을 추려 적어내려 갔다. 쓰다 보니 마냥 돈 얘기를 하기도 어색해 수험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섞기로 했다. 이처럼 속도가 더뎠던 글쓰기는 처음이었다. 결국 할당된 분량을 채우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찝찝했다. 더 고민해도 답은 안 나오니 별  수 있나. 우선 이대로 들고 가 찾아뵙기로 했다.


초고가 얼마나 수정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코로나 덕분에 찾아온 이 시간이 교복을 입고 있던 시절을 회상할 계기를 선물해줬다. 부끄러운 이 순간이 그 풋풋했던 시절을 다시 곱씹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잠시나마 감상에 젖은 뒤 생각해보니 지금의 학생들은 참 안타까운 시절을 보내는 것 같더라. 


성인들 역시 힘겨운 건 마찬가지다. 아니 더 혹독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부분들이 옥죄여 오는 고통은 감히 어디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에 비할 수는 없다 해도 어린 청춘들에게도 가혹한 시기인 건 맞다. 한창 뛰놀고 친구들과 아웅다웅해야 하는 시기인데, 해야만 하는 걸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모두의 안녕을 위해 강제적으로 거리를 둬야 하는 이 시국을 이해하기엔 그들은 아직 너무나도 어리고, 여리다. 건강한 심리적 성장이 우려될 만큼 갑갑한 환경이다. 여러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코로나19는 사회화 과정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몇몇 기관의 설문 결과를 보면 이 시국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내면은 불안감,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활개 치고 다녔던 내 과거와 비교하면 얼마나 우울할까 싶다.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도 곱씹을 수 있는 따스한 추억이 지금의 아이들에겐 없다. 낙관적으로 봐도 올해까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서로 거리를 둬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만 따져도 지금의 학생들은 나보다 3분의 2만큼 추억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불가항력적인 이 사태가 그들의 미래에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기가 아이들의 인생에 지우고 싶은 순간으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와는 다르게 색다른 추억을 쌓은 계기였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의 어른 그 누구도 겪지 못했던 풍파를 이겨낸 만큼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없이 허술하지만 모교 후배들에게 전해질 글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기운을 얹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조금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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