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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Mar 15. 2021

새삼 웹툰, 웹소설 작가의 위대함을 느낀다

어리석었다. 조금은 예상했었는데, 역시나 현실이 되고 나니 어리석었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이게 사람의 일이라지만 항상 반복되다 보니 이젠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언제나처럼 난 그저 의욕만 앞서 달리다 발이 꼬이고 말았다.


현재 주력으로 연재 중인 '제발 악플 달지 마'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염두에 뒀던 콘텐츠다. 이걸 글이나 책으로 펼 것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었지만, 악플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10년 전부터 가져왔었다. 조금씩 해결을 위한 그림을 그리던 중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했다. 당장 내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다른 걸 신경 쓸 틈이 있을까. 사태가 장기화되고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초반에는 무기력에 휩싸이기도 했다. 살면서 눈앞이 막막해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리 마음이 무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이 감정은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남아도는 시간을 의미 있게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현실은 잠시 접어두고, 묵혀뒀던 프로젝트를 시도해보자는 의지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고를 준비했다. 기자 명함을 가지고 있었을 때엔 연예기획사에 연락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인맥이란 인맥은 총동원하고, 발품도 팔았다. 우여곡절 끝에 반년여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막연하게 책을 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었다. 그래서 투고도 해보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루는 내용도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이 프로젝트는 순수하게 사회에 기여한다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니까. 그러던 중 브런치가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여러 누리꾼의 지지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계획이니 무료로 연재하면서 몇몇의 지지라도 얻는 게 더 적절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확신과 함께 의욕이 차올랐다. 어떻게 글을 올리는지 기능을 파악하던 중 연재 형식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초고가 갖춰진 터라 부담도 없었다.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제약 없이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니 나와의 약속을 하면 나름의 동기부여가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매일 글을 올리면 악플이라는 크나큰 문제에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듯했다.


첫 주에는 악플에 대한 이야기로만 연재했다. 무거운 글을 매일 마주하다 보면 쓰는 사람부터 지치더라. 그래서 평일에는 악플, 주말에는 에세이를 적어보기로 했다. 글을 업로드하면서 에세이를 쓰니 잠시 쉬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몸에 이상이 있었다는 걸 간과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첫 책을 준비했을 때의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초 몸이 많이 망가졌다. 건강에는 항상 자신이 있었는데 급속도로 컨디션이 나빠졌고, 급기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이후에는 컨디션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활동량이 큰 폭으로 줄다 보니 더더욱 몸은 나빠졌다.


다른 작가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원고 준비할 때 건강이 나빠지더라.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첫 출간을 준비를 끝내고 난 뒤에 다짐했다. 당분간은 글을 쓰지 않기로 말이다. 몸이 회복된 뒤에 새롭게 도전해보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이를 앞당겼다.


첫 책 초고를 쓸 때보다 긴 시간 동안 여유를 가지고 준비를 했었고, 짧은 호흡으로 연재하는 거라 큰 무리가 없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삽시간에 컨디션이 떨어졌고 이상 징후들이 생겼다. 이렇게 불편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목, 허리, 손목 통증이 나를 괴롭혔다. 신진대사 역시 원활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넉다운되고 말았다.


며칠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열하게 살면서도 번아웃을 겪어본 적이 없는데 코로나 블루가 겹치면서 더 그랬나 보다. 회복에 주력하면서 문득 웹툰이나 웹소설 연재하는 작가분들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소설은 많이 보지 않았지만 웹툰은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기 전부터 봤었다. 포털 사이트 서비스 초창기에는 양대 포털에 연재된 웹툰 전체를 다 보기도 했다. 그만큼 오랜 기간 봐왔지만 작가분들의 노고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인내가 수반되는 과정이니 어렴풋이 힘들겠거니 여기기만 했다. 한 달여만에 퍼지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노력이 보이는 듯했다.


그저 글 몇 단락 적는 것뿐이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초고가 준비된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금세 몸까지 망가질 만큼 연재라는 건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었다. 매일 작품으로 마주하는 작가분들이었는데 왜 이제야 그들의 노고를 느꼈을까.


내가 했던 작은 분투에 비하면 웹툰, 웹소설 연재는 말도 못 할 수고가 들어간다. 시간적으로도 그렇겠지만 많은 인원을 투입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그만큼의 수입이 있으니 그걸 바라보고 참아낼 수도 있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수입으로 그들이 받는 중압감을 다 가릴 수 있을까?


악플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보니 그들이 매주 선보이는 작품은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악플을 평가라는 숭고한 단어에 포함시키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작가분들 중 상당수가 이 역시 평가라 여기고 있다. 간혹 기사 등을 통해 몇몇 작가분의 생각을 듣노라면 악플을 100% 의식하지 않을 순 없나 보더라. 그렇다면 다음 연재분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큰 스트레스에 시달릴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내 짧은 경험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피와 땀이 습관처럼 보는 작품들 속에 스며들어있었다. 혼자만 가지고 펼치던 의욕이 넘쳐 고꾸라지고 나서야 조금은 느껴진다. 앞으로는 진실된 감사와 함께 감상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짐. 이제는 겪을 만큼 겪었다. 이런 내 성격, 알만큼 알았다. '과유불급' 네 글자를 절대 잊지 말자. 목표했던 시기까지 연재를 마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만큼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만큼만 풀어내자.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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