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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Apr 21. 2021

인터넷 속에 갇힌 피해자들

제 기대보다는 다소 아쉬운 분량이었지만 그래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많이 방송됐던 '알쓸범잡' 3화였습니다. 제가 미처 다루지 못한 인터넷 범죄의 기원에서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특정 사례까지 다뤘으니 말이죠. 아동 성착취 범죄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그 속에는 악플 논의에 힘이 될 만한 논제들도 등장했습니다.


기술의 혁명이나 발전은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갈 수 있다


제 초고에도 담겨 있지만 이곳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우려했었지만 글을 연재하는 동안에도 파괴적인 일들이 꾸준히 벌어졌고, 다급함에 핵심적인 내용들로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방송에도 등장했지만 최초의 인터넷은 전쟁의 산물이었습니다. 한 곳에 국한된 정보를 분산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인터넷입니다. 핵공격 같이 큰 타격으로 모든 정보가 소실된다면 전황이 크게 바뀔 겁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비책이었습니다. 


지금의 인터넷은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해 진화했다고 보는 게 맞겠죠. 그 진화는 빠른 속도로 이뤄져 일상생활의 상당 부분에 스며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향력이 커진 데에 비례해 관련 범죄가 놀라운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김상욱 박사님의 말씀처럼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컴퓨터 관련 범죄가 폭증한 셈이죠.


그렇게 확장된 범죄자들의 세는 줄어들 줄 모르고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산물이다 보니 범죄는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유형의 범죄자들이 체포하기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악성 인터넷 범죄자를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방송에서도 자세히 다룬 '다크웹'으로 인해 전 세계를 거쳐 수사해야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는 세계 각국의 공조 수사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1년 6개월 복역 후 퇴소하다


최근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N번 방' 사건. 이 사건도 현대사의 수치였겠지만 이보다 더한 사건이 이전에 있었습니다. 'N번 방'과 마찬가지로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주범이었고, 이 범죄자의 나이가 체포 당시 고작 23세에 불과했다는 게 씁쓸할 따름입니다.


세계 최대의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던 손정우는 32개국의 공조 수사 끝에 적발됐습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건 이 당시 판결에서 그가 받은 형량이 1년 6개월에 그쳤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는 이미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죠.


출연진들조차 형량을 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나 같이 너무 낮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정재민 심의관님이 당시 판결이 그렇게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는 했습니다만, 초범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다는 허점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판결은 해외에서까지 공분을 샀죠. 심지어 해외 사법부가 손 씨를 추가 징벌하기 위해 인도를 요청했지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앞서서 저도 언급했지만 일부 범법자들에게 가하는 형량이 다소 낮은 측면이 있습니다. 해외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죠. 죄질에 따라 더 강한 철퇴를 내리칠 필요가 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신이 미약했다는 이유로 일정 부분 면죄를 받는 셈이죠. 물론 한 명의 인간인 판사가 내리는 결론이 또 다른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가해자의 인권도 존중돼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죄질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판결 역시 기민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이전 사건의 영향인지 이번 'N번 방' 사건은 적지 않은 형량이 내려졌습니다. 자칫 가벼운 형량은 유사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파렴치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안전망을 더욱 공고히 했으면 합니다.


호기심 때문에 엄청난 피해자가 생길 수 있음에 대한 계몽과 처벌이 필요하다


박지선 박사님은 이야기했습니다. '익명성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범죄를 저지른다', '사람의 어두운 면이 드러날 때가 익명성을 띨 때다'. 우리의 인터넷 환경을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박 박사님은 이를 지적한 것이죠.


비겁한 범죄자들은 익명성이라는 편의와 그 태초의 목적을 짓밟아가며 순수하게 범죄에만 악용하고 있습니다. 악질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익명성에 취해 점차 비겁해지고 있죠.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강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질 범죄자든 단순 범죄자든 그들이 하는 대표적인 변명은 이렇다고 하더군요. "호기심에서였습니다."


호기심으로 덮는다는 건 애초에 그들이 특정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걸 뜻합니다. 우리가 흔히 호기심에 무언가를 한다고 할 때, 이 일들은 통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 것들입니다. 호기심은 미지의 대상에게 품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미지의 대상은 동시에 두려움을 주기도 하죠. 이 두려움을 이기고 탐구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약이 없어야 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적 장치가 있다면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인 호기심을 행위로 옮기기 위해서 어떤 제약이 없어야 합니다. 제약이 있더라도 행위자는 이를 제약이라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용기를 가지고 미지의 대상에 손을 내밀 수 있죠. 지금의 악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호기심이나 재미를 핑계로 다는 거지만, 악플러들은 이를 결코 범죄라 여기지 않습니다. 호기심이라 변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할 수 있겠죠.


이 불편한 사실을 강하게 제한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익명성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누리꾼이 탈선을 반복하고 있는 지금,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 괄목할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윤종신 씨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엄청난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에 계몽과 처벌이 필요하다". 매우 지당한 의견이라 동조하는 바입니다.


익명성 뒤에 숨은 자는 자유의 몸이 되고, 그가 노출한 사람들은 인터넷 속에 갇혔다


인터넷 범죄의 안타까운 피해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터넷 발명의 근원이 그렇듯 어딘가에선 피해 잔재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 착취물 사건 피해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 신상 노출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로 인해 일상에까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악플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리적으로 자신을 향해 공격을 퍼부은 악플러들을 모두 검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형량도 크지 않기에 그들은 재차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죠. 


아이유, 김희철, 김가연 등 악플러 고소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 악플을 또다시 단다는 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잘못 댓글 달았다가는 고소당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들은 또다시 공격을 받습니다. 당사자나 소속사에서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큰 소리를 내도 범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번 공격 대상이 된 이들은 반복적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피해자는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정체성을 침해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겁니다.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 이를 간직하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온전히 이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방송에서는 이런 자막이 등장합니다. '익명성 뒤에 숨은 자는 자유의 몸이 되고, 그가 노출한 사람들은 인터넷 속에 갇혔다'. 우리네 현실이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인터넷 관련 범죄자 상당수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그들은 자신이 끼친 피해에 한없이 미치지 못하는 형량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은 자유의 몸이 됐겠죠. 특히 악플러들은 대부분 그러할 겁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이전과 동일한 범죄를 기획하고 저지르는 사이, 피해자들은 오히려 인터넷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언제 또다시 위협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피해자들은 이전에 겪었던 피해와 아픔을 되새김질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언제 어느 때든 잊힙니다. 우리나라 여론의 부정적 단면을 표현하는 '냄비 근성' 때문이죠. 언론이나 대중 모두 타오를 때는 열정적이지만, 한 번 관심에서 멀어진 일은 쉽사리 잊히고 맙니다. 모든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찬가지일 테지만 인터넷 관련 피해자들 역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피해자들을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지 우리 모두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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