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나의 베데스다는 어디인가

by 민서

찬송 소리가 나오는 성전 안과 신음 소리가 가득했던 밖은 차이가 명확했다.

크고 넓고 깊었던 베데스 못에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 사람들은 거기에 희망을 품고 살아갔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면, 그 순간 내가 첫 번째로 그 물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완전히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 순간을 기다리고, 빠르게 그 순간을 낚아채야 했던 사람들이 가득했던 곳이다.

소망이 있다 여겨졌던 곳은 경쟁이 있을 뿐이었다.


은혜가 있는 곳이라면, 내가 나음을 받을 수 있던 곳이라면 그곳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4 계단이나 내려가야 하는, 더 많은 노력을 더 빠르게 이룬 특정한 사람만 누릴 수 있었던 그 나음이 과연 우리가 진정 원하던 나음인 것인가?


38년이라는 인생의 찬란했던 시기를 소망이라 여겼던 베데스 못에 모두 사용했던 병자의 마음은, 감히 추측하건대 자기의 인생은 고침 받을 수 없고, 괜찮아질 수 없다고 여기며 포기하고 마는, 그것이 나의 숙명이며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여겼지 않았을까?


내가 나음 받기 위해서는 저 물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가?(요 5:7)

예수님의 물음(요 5:6)에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경쟁과 패배의 장소에 두고 있다.


예수님은 늘 그 자리에 있던 자에게 일어나 걸으라 하신다(요 5:8). 효율적이어 보이는, 충분히 능력이 있으시다면 물을 움직이신 후에 재빠르게 넣어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고쳐주지 않으신다.

이 말씀은 명령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주장하고 있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권유하지 않고 강권한다.

"네가 가진 게 아닌 말씀대로 살아가라!"라고 하시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해야 한다.

내 문제가 숙명 같은가? 다시 예수님께로 나아가라.

예수님은 내가 짊어지고 있던 문제를 벗어나 걸어가라고 하신다.

자비의 예수님께서, 아픈 곳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나의 베데스다는 이곳이다.

우리의 베데스다는 이곳이어야 한다.

그곳이 우리의 베데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