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행복 가족

우리는 언제부터

by 민서

우리 부모님께 갖고 있는 가장 따뜻한 추억은 몇 살인 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린 그때, 가벼웠고, 많이 웃었고, 서로를 할퀴지 않았으며, 스스럼없이 부모님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그 때다.

좋은 날이었다. 낮이었고, 햇살도 바람도 완벽하게 조화로웠다. 어린 나이에도 그날은 좋은 날임을 알 수 있었다.

왼쪽 손에는 엄마 손이, 오른쪽 손에는 아빠 손이 잡힌 채 “하나 둘 셋” 외치면 펄쩍 뛰어올라 꼭 하늘을 나는 것처럼 시원하고 신기했던 기억. 엄마 손은 조금 작고, 얇았고, 아빠 손에 비해 힘이 덜했다. 아빠 손은 컸고, 두꺼웠으며, 힘이 좋아 붕 그네처럼 뜰 때 오른손에 더 힘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참 든든했던 아빠 손과, 다정했던 엄마 손. 그게 참 좋아서, 두 번, 세 번 계속해달라고 졸랐던 나에게 부모님은 다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나를 들어 올리셨다. 나는 몇 번이나 하늘을 날았다. 우리 부모님 손을 잡고.

그때 우리 가족이 가고 있던 행선지도,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도, 냄새도, 옷차림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순간적으로 느낀 그 따뜻함은 식지를 않는다.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 버린 그때 우리 동네 그 언덕배기에서 아직 젊어 힘이 세고, 큼지막해서 든든했던 부모님의 손만큼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없었다. 그것만큼 다정했던 손잡기는 없었다. 몇 살인 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지만 내가 누린 행복을, 우리 부모님이 체력이나, 관계의 그 어떤 제약 없이 나를 들어 올려 주신 사랑은 흐려지지가 않는다.


새벽, 출근하시는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셔서 그냥 잠들어버린 내 얼굴에서 안경을 살금살금 벗겨 내신다. 그런데도 잠에서 깨버린 나는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낸다.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버린 짜증은 졸린 눈을 비비고 첫 차를 타러 나가시는 엄마의 헌신을 가렸다.

거실, 티브이 앞 껌딱지 같은 우리 아빠의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출근한다. “다녀올게”라는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아서 아무 말없이 현관문을 내렸고 적막한 집 안에는 ‘띠리릭’하는 전자음이 티브이 소리에 섞이며 울려 퍼졌다. 어색해질 대로 어색해져 버린 부녀 사이는 서로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의 노력은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30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더 이상 부모님 손을 잡지 않았다. 어떤 즐거움과 따뜻함도 부모님에게서 찾지 않았고, 부모님의 손을 맞잡기보다 다른 것들을 붙잡고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많은 친구와, 많은 스케줄로 양손에 맞잡았던 부모님의 손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든든함을, 다정함을 대체하고 있었다.

거동이 힘든 우리 아빠, 손을 꽉 잡으면 관절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엄마. 이제는 내가 매달릴 수 없는 우리 부모님의 손을, 부모님처럼 잡아드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죄책감과 분노, 슬픔과 연민, 그리움과 애증 모든 게 한데 뒤섞여 그날의 기억이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날로 돌아가지 못할수록 더 생생 해지는 그날의 기억이 더 쓰라리게 다가온다.


엄마 아빠한테 매달려 하늘을 날았던 그 따뜻함이 선명해질수록, 더는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더욱 선명해진다. 딱딱해지고, 거칠어지고, 주먹을 꽉 쥘 수 없을 만큼 연약해져 버린 우리 부모님의 손은 더는 내가 매달릴 수 없는 손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역전되어 버린 걸까? 보호받아야 했던 나의 어린날처럼, 보호받아야 하는 어른의 날들이 이어지게 된 건 대체 언제부터인 걸까?

우리의 웃음은 언제 멈췄으며, 우리가 손을 맞잡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든든하다고 여겼던 크고, 따뜻하고, 듬직한 그 손을 더는 찾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하늘을 나는 법을 잃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많은 것들이 흐려졌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잊어도 사랑은 지울 수가 없다. 그 사랑은 실제 했으며, 실제 한다. 그 사실을 믿는다.

많은 것들이 흐려지고 묻혔다. 그 속에서도 남아있는 따뜻함, 식지 않는 이 따뜻함의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성숙해질수록, 더 많은 것들을 누릴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수록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가고,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러졌던 우리들의 마음속에 나란히 손잡고 걸었던 그 시간이 잊히지 않는 따뜻함으로 남아 있길. 다시 기억해내고, 그 추억을 향유하길. 그리고, 다시 만들어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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