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계시면 오라이~

사라진 것들을 그리워하며..

by JIPPIL HAN

아주 어린 시절 엄마 손잡고 외할머니댁에 가는 날,

버스를 처음 탔을 때의 강렬했던 기억이 있다.


파란 버스가 덜컹거리며 정류장에 멈추자, 뒷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제복을 입은 안내양 언니였다.

빨간 빵모자에 제복, 단정히 뒤로 묶은 단발머리, 짤랑거리던 토큰과 동전가방.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면 “자~어서어서 타세요!” 밝고 우렁찬 목소리가 버스 안에 퍼진다.

처음 타 본 버스 안에서는 휘발유 냄새와 섞인 사람들의 냄새가 있었다.


“다음 정류장은 ○○고등학교입니다! 거기!! 졸고 있는 학생!! 다음에 내려야 돼!!”
그녀가 큰 소리로 외칠 때면 버스 안의 소음도 잠시 멈췄다.

졸고 있던 남학생은 얼른 침을 닦고 내릴 준비를 한다.


잠시 후 버스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내리고 나면

“ 더 내리실 분 안시면 오라이~!” 하고 버스를 두 번 탕탕 치면 버스가 출발한다.


어린 내가 보기에 버스 안내양 언니는 버스 안의 질서를 지키고 사람들을 챙겨주는 총 매니저 같았다.

학생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얘들아, 조금만 조용히 하자.” 하고 주의를 주고,
어르신이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시면 학생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라고 말해주었다.

안내양 언니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참 멋져 보였다.


두 번째 버스를 타던 날은 아침에 사탕그릇에서 사탕 2개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릴 때 안내양 언니에게 사탕을 건넸다.

안내양 언니는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면서

"어머~ 나 주는 거야 꼬마야? 언니 오늘 밥 안 먹도 배부르겠다 너무 고마워~" 하면서 내 볼을 살짝 꼬집는다.


이렇게나 멋진 안내양 언니들은, 승차벨이 도입되면서 1989년~90년 사이에 모두 자취를 감췄다.

이제 버스카드 단말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버스 안의 질서를 책임지던 안내양 언니가 지금도 있다면 어떨까 한번 상상해 본다. 버스가 지금보다 좀 더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지 않았을까.




토요일 오후, 학교 숙제를 빨리 끝내고 동네 비디오 가게로 달려간다.

유리문을 밀면 ‘딩동—’ 하고 종소리가 울리고,
빽빽하게 꽂힌 비디오 케이스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빨간 NEW 스티커가 붙은 신작 코너는 이미 반 이상 비어 비디오 케이스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

미리 예약하기 위한 예약 카드를 꺼내 적으며 “다음 주엔 꼭 내가 먼저 빌려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계산대 뒤의 알바언니는 연체비를 계산하거나 되감기 버튼을 누르며 테이프를 돌리고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비디오 케이스를 품에 안고 영화를 볼 생각을 하면 이미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들떠있다.

오는 길에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영화 보면서 먹을 과자 '비 29와 고소미'를 사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학교 교실엔 늘 분필가루가 흩날렸고 주번이 칠판지우개를 창밖으로 탕탕 털어댄다.

창문 밖으로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쉬는 시간엔 책상과 의자를 앞으로 밀어놓고 뒤에 둘러앉아 공기놀이,

운동장에서는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남자애들은 그 고무줄을 끊고 도망간다.


겨울이면 교실 한쪽 석탄난로에 양은도시락을 올려놓아 도시락 데우는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우고,
석탄이 떨어지면 학급주번 두 명이 양철 바구니를 들고 석탄을 받으러 간다.

방과 후 학급위원들은 다 같이 모여 학급신문을 만드느라 가위질을 하던 풍경이 아직도 머리에 선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따르릉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두꺼운 전화번호부책에서 번호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면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정겹다.

거실 탁자 위에는 재떨이와 팔각성냥이 놓여 있었다.


새벽마다 문 앞에 배달되던 서울우유병, 썬키스트 오렌지주스병에 담겨있는 진한 보리차.

거실 전축에는 턴테이블에서 칙~ 치직하고 돌아가는 LP판 소리..

정각마다 뎅~뎅~뎅 하고 울리는 괘종시계소리..


지금은 모두 사라진 풍경들이다.




듣고 싶은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언제든 들을 수 있고,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는 OTT 클릭 한 번이면 재생되는 세상. 원하는 물건은 새벽배송으로 문 앞에 놓이는 그야말로 '자판기 같은 즉석세상'이다.


이렇게 그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편리함이 현실이 되었지만 나의 행복은 어떠한가?
행복도 자판기처럼 즉석에서 얻고 즉석으로 느끼고 있는가?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더 지쳐있고, 오히려 참을성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드라마 한 편을 제 속도로 보지 못하고 1.5배속, 2배속으로 재생한다고 한다.

한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 하는 세대의 습관이라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그 시절은 모든 것이 느리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느림과 부족함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을 배웠고, 함께 웃는 법을 알았고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가 사랑했던 것은 그 시간 속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웃음과 소통이었다.

그 시절의 기억 덕분에 나는 바쁜 오늘도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사람의 얼굴을 좀 더 오래 바라보고
작은 기쁨에도 미소 지을 수 있다.

빠른 세상 속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의 나만의 느린 시간, 그 시절 나만의 온기를 붙잡고 싶다.



몇 주 동안 저와 추억을 함께 해주시며 댓글로 공감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따뜻한 기억 속에 행복한 나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 최종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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