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유 전시를 다녀와서
Prologue
김상유는 한국 현대 판화의 선구자다. 동판화, 목판화, 유화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 1970년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으며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세속의 화려함 대신 작업실의 침묵을 택했다.
화려한 수식보다, 그가 평생 작업실의 침묵을 선택했다는 한 줄이 더 오래 남았다.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 동판화부터 목판화, 그리고 말년의 유화까지 — 한 예술가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펼쳐 보인다. 유족이 오랫동안 소장해 온 미공개 작품들도 함께. 단순하고 절제된 화면, 반복되는 선과 면, 비워진 공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오래 보면 볼수록 그 고요함이 조금씩 안으로 스며들었다.
Chapter 1. 이렇게 끝날 수 없다
1960년대 후반. 그가 장례식에서 관을 보았을 때,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검은 화면 속 작고 외로운 인간의 형상. 그것은 "사람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처해 있는 모습"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1970년 동아일보의 짧은 문장이 전시 벽에 걸려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꽤 오래 서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 놓인 인간. 그 보편적인 질문을 작가는 차갑고 단단한 동판 위에 새겨 넣었다. <No Exit>라는 제목이 전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Chapter 2. 한국 동판의 선구자
판화의 불모지, 한국. 그는 국수 기계를 개조해 프레스를 만들었다. 동판 대신 아연판을 썼고, 부식에 필요한 산은 공장에서 구했다.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일이었을지 — 전시장 한 켠의 설명 글을 읽으며 숨이 잠깐 멈췄다.
부식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는 그의 시력을 서서히 앗아갔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집념은 앗아가지 못했다. 한국의 기물과 건축, 문자와 정서를 새긴 그의 판화는 훗날 특급호텔 화랑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 기념품'으로 팔렸다. 아이러니하고도 아름다운 반전이었다.
Chapter 3. 나무, 한지, 먹은 우리 것이라 더욱 좋았다
시력은 흐려졌지만, 손의 감각은 더 또렷해졌다. 그는 차갑고 단단한 금속을 떠나 나무로 향했다. 자연의 결을 품은 재료 위에 자연의 세계를 다시 새기는 일. 1981년 목판화 전시가 열렸을 때, 화랑은 판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의 목판화 앞에 서면, 손끝으로 나무를 더듬는 감각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것들. 그 감각이 화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Chapter 4. 새김을 멈추고 붓을 들다
시력 저하, 어깨를 짓누르는 통증.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었다. 새김에서 빛과 색으로 — 또 한 번의 전환이었다.
그는 카메라와 종이 몇 장을 들고 전국을 떠돌았다. 안동의 고택, 이름 없는 정자, 돌부처의 형상, 기와의 선. 사라져 가는 것들을 눈에 담고, 그것을 다시 화면 위에 되살렸다.
그리고 그의 유화에는 반복되는 인물이 있다. 실내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노인. 작가는 말한다 — 그것은 자신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세상의 시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로 깊이 침잠한 존재. 화면 속 인물의 머리 위로 드러나는 시간의 흔적, 서서히 진행되는 탈모조차 하나의 서사가 된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피식 웃었다가, 이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이라는 전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큰 울림이 있는 전시였다.
그림을 보고 왔다기보다 명상을 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봄 꽃 개화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달떠있는 요즘
가끔은 부산스러운 일상을 접고 마음의 가부좌를 틀어 앉아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인생에서,
조용히 멈추고 싶은 날이 올 때, 그때마다 나는 김상유의 그림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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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장 소 : 서울미술관(석파정)
기 간 : 2026년 4월 1일 ~ 8월 17일
입 장 료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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