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에 있는 내내 쨍하고 맑았던 하늘 덕분에 투명한 옥룡설산을 매일매일 볼 수 있었다. 리장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보였던, 어쩌면 리장의 북극성일지도 모를 그 산.
옥룡설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나시족의 영원한 성산이다. 해발 5,596m, 13개의 봉우리가 마치 은빛 용이 누워 있는 것 같다 해 붙은 이름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4,506m 지점에서 내리면 정상까지 약 200m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숫자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그 거리가 모두 계단인 데다 산소까지 부족해 두 개의 난관을 초인적인 힘으로 가까스로 극복하고서야 정상에 올랐다.
리장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보였던 그 산의 형체를 눈앞에 마주한 감격이란. 눈에 담긴 감격이 오롯이 사진에 담기지 못하는 아쉬움, 머리와 가슴속에 일었던 감격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능력의 부재를 절실하게 깨닫는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니 산줄기들이 바다처럼,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세라는 것이, 기운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흑룡담공원의 호수에는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물이 담겨 있다. 위룽쉐산과 더불어 나시족을 호위하고 지탱해 주는 곳이라 하겠다. 청나라 건륭제는 맑은 물속에 비친 위룽쉐산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였는지 친필로 옥천공원(玉泉公園)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리장고성 안에는 목부(木府)가 있다. 원나라와 명나라, 청나라를 잇는 동안 중국은 토사(土司)라는 행정제도를 만들어 소수민족 지역을 간접 통치했다. 리장의 토사는 명나라가 들어서면서부터 줄곧 목씨 가문이 이어왔다. 22대 470년. 목부는 바로 그 목씨 가문이 세운 행정관청이다. 중층 지붕, 긴 회랑, 전각 앞에 화려하게 조각된 답도와 석물, 마당마다 가꿔 놓은 수목들. 사람들은 목부를 리틀 자금성이라고 부른다.
수허고성의 입구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반짝이는 바닥돌이 반겼다. 맑고 투명한 수로와 그 위로 놓인 각각의 다리들, 바람에 흔들리는 등롱, 알록달록한 꽃과 다육 식물. 천천히, 느리게, 서두를 것도 바쁠 것도 없는 여기는 지구 밖 어느 다른 행성에 있는 마을은 아닐는지 생각해 보았다.
걷다가 멈춰서 하염없이 물속을 바라보는 연인들처럼, 손님이 불러줄 때까지 마냥 쉬고 있는 나귀처럼, 모두의 일상이 이처럼 느긋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면 좋겠다.
리장의 밤은 충의야시장에서 마무리했다. 7시가 넘으면 점포를 실은 수레들이 줄지어 들어서기 시작한다. 마치 퍼즐처럼 제자리를 딱딱 찾아가 난전을 펼치는 상인들. 가게가 열리면 곧바로 조리에 들어간다.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게마다 나는 음식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왔는지 금세 사람들이 몰려든다. 느리게 흐르는 도시 리장에서 유일하게 바쁘게 돌아가는 공간이다.
여행 닷새째에는 호도협과 차마고도를 걸었다.
윈난의 차(茶)는 티베트로, 티베트의 말(馬)은 윈난으로 향했던 차와 말의 교역로, 차마고도. 애초에는 상업적·경제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닦인 길이었겠지만 훗날 이 길은 동서양의 문화와 풍습, 사람, 언어가 함께 오갔던 이른바 문명의 교역로 역할을 했다. 해발 4,000m 이상의 험준한 산속에 놓인 좁고 외진 길, 5,000km에 달했던 이 길 위에서 동서양의 문명은 풍요롭게 꽃 피었다.
호도협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 마치 지하를 뚫고 다른 세계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네 번을 갈아타고 내려가니 비로소 호랑이의 포효처럼 쿵쾅대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에 비해 물색은 고운 편이다. 짙은 갈색의 흙물이 쉼 없이 몰아치는 한여름의 물빛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겨울 호도협은 에메랄드다.
차마객잔에 오르니 바로 눈앞에 훅하고 나타난 설산과, 발끝 아래 까마득한 곳에서 흐르는 에메랄드 물줄기. 지금 서 있는 이 길이 험준한 산과 그 산들 사이의 협곡 위에 만들어진 차마고도구나, 라는 것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설산의 위엄, 호위무사처럼 멀찍이서 나를 따라오는 협곡의 물길,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먼 데서 온 이방인들의 바쁜 걸음이 수없이 교차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