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雲南).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구름의 남쪽이 된다. 구름의 정중앙이 아닌 남쪽. 어찌 보면 변방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윈난성은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티베트와 경계를 하고 있는 지역이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변방 중의 변방이라 할 수 있지만, 반대쪽에서 생각하면 중국을 처음 마주하고 중국의 문명을 처음 접하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커피와 차, 고원과 호수, 다양한 소수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윈난성. 이 구름의 남쪽에는 두 개의 도시가 있다. 봄의 도시 쿤밍과 물의 도시 리장이다.
리장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동방항공을 타고 쿤밍으로 들어가 기차를 갈아타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쿤밍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는데 한자로 곤명(昆明)이라 쓰고 보니 그리 낯선 도시는 아니었다.
쿤밍에는 춘성(春城)이라는 별칭이 있다. 사계절 내내 봄처럼 따뜻하고 꽃이 많이 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발 1,900m의 고원지대이고 연평균 기온은 15℃. 공항에서 처음 접한 날씨는 다소 쌀쌀했지만 길거리에 핀 꽃들을 보니 우리나라의 이른 봄 같은 느낌이었다.
짐을 풀고 서둘러 도착한 곳이 석림이다. 쿤밍 제일의 관광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질공원. 바다 밑에 있던 석회암층이 지각 변동으로 인해 융기하고, 풍화작용을 거쳐 부분 부분이 깎여 나가면서 생긴 카르스트 지형의 대표적인 곳이다. 인류의 손이 아닌 물과 바람과 세월이 만들어낸 유산이다.
저녁 무렵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중국 관광지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는 풍경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입구에서 볼 땐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대석림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경이롭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 거울의 집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이랄까. 고개를 끝까지 쳐들어야만 하늘이 보인다. 괴석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 여기 아니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 또한 만만치 않게 경이로웠다. 저 숲 어딘가에 정령이라도 숨어 있는 것 같은 신비로움. 수백만 년이 지나 다시 이 자리에 서면 저 장엄했던 숲들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한참을 내려다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야 석림을 나왔다.
오후 한나절만 가능했던 여행이라 시간도 여건도 충분하지 않았지만, 석림을 돌아본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단 한 곳에서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난 태동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석림은 그런 곳이었다.
쿤밍은 리장 여행의 시작이었고, 마무리였다. 돌아와 생각하니 쿤밍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쿤밍을 본 여행지로 잡아 다시 한번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봄의 도시답게 지금보다 더 많은 꽃이 피는 그런 계절이면 더 좋을 것이다.
쿤밍에서 기차를 타고 네 시간. 리장에 들어왔다.
나시족 문자인 동파문자, 박석이라 하기엔 너무나 반들반들한 돌판 길, 선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낮은 기와지붕, 그로 인해 하늘은 활짝 열려있는 곳. 리장의 첫인상이다.
리장의 한자 이름인 여강(麗江)에서 알 수 있듯 리장은 물의 도시다. 이름에 나오는 강은 없지만 강줄기 이상의 수많은 물줄기들이 고성 곳곳을 흘러든다. 위룽쉐산(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성의 수로가 되고, 그 수로 위에는 약 300여 개의 다리가 만들어졌다.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리장고성은 1996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성 곳곳의 상점과 안내판에는 한자와 함께 동파문자가 병기되어 있다. 나시족이 사용했던 이 그림문자는 현재까지도 확인이 가능한 유일한 상형문자다. 동파문자 필사본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여러 갈래로 뻗은 수로와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유독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는 포인트가 세 곳 있다. 고성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대석교' 주변, 고성 여행의 시작인 물레방아, 그리고 나시족들의 공연장이자 모든 골목이 만나는 광장 '스팡제'다.
파도처럼 밀려다니던 인파, 자동차 숫자만큼이나 많아 보였던 오토바이, 탁해진 공기 사이로 흐르던 복잡하고 부산한 바람들이 이제껏 가 본 중국의 모습이었다면, 리장은 맑고 투명한 물길, 적당히 분주했던 골목, 그 골목에서 만난 아주 오래된 감성과 친밀한 느낌의 도시였다. 악기를 두드리는 사람, 문을 열고 라이브 공연을 하는 사람들, 차를 마시고, 민속 춤을 추는 나시족, 그들을 구경하는 관광객. 이 모든 것들의 적당한 조화가 아주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곳, 사람들은 리장을 동양의 베니스라고 하지만, 리장은 그냥 리장이다. 혼자 이름으로도 충분히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