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상물의 제목이다. 영상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고 단순했다. 중국어에 대해 자세하게 비판하진 못했지만, 비교적 직관적인 예시를 들며 중국어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과연 이러한 영상들이 우리 사회에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일방적이고 편협적이며, 이미 점령 중인 혐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혐오를 인지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당신은 혐오주의자야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없다. 혐오란 특정 대상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증오에 바로 전 단계인 것이다. 모든 비판이나 지적이 혐오일까?라는 질문에는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근거와 논리에 기반하지 않고 지성적이지 못한 비판이나 지적은 혐오에 범주에 해당한다고 확신한다.
중국이 왜 그렇게 싫은지 묻는다면, 정말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의 만연한 이기주의나 공공시설에서의 행태 혹은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을 따르는 자들의 반민주적인 행동들이라던가 혹은 주변국들에 대한 외교적인 결례라던지 문화적 분쟁거리가 그 답변으로 나올 수가 있다. 나는 이에 동의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사실적 근거와 논리 그리고 지성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답변들이기에 이들의 의견을 탄압해서도 무시해서도 그리고 혐오라고 일방적으로 치부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가야 한다. 이러한 답변에 증오와 혐오가 뒤섞여있다면, 그건 그토록 싫어하는 중국과 다를 것이 없다. 중국이 왜 싫은지 묻는 답변에 허위적 정보를 의도적으로 포함시키거나, 지극히 편협적이고 객관적인 주장이나 1차원적인 강한 비판을 통한 생각 혹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린, 중국을 따라가선 안된다.
일방적인 혐오 속에서 우리의 삶을 낭비해선 안된다. 우리가 중국어를 혐오한다면, 그들이 우리 한국어를 혐오하였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린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혐오와 이기주의, 권위주의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가는 너희보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월감의 차이나 선민의식 따위가 아니다. 우린, 그들에 속삭임에 말려들어가선 안된다. 리베르타스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