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다시 집으로.

by CITIZEN

집에 돌아오니까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생방송 중이라, 제가 빨리 진행해야 합니다.

제가 레임덕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게, 아무도 제 말대로 안 하네요.


여러분, 자리에 앉아 주세요.

미국 국민 여러분, 최근 몇 주 동안 여러분이 보내주신 수많은 응원과 격려에, 미셸과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제가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릴 차례입니다.


우리가 항상 같은 생각을 했든 거의 동의하지 않았든, 여러분과 나눴던 대화들과 거실에서, 학교에서, 농장에서, 공장에서, 식당에서, 멀리 떨어진 군 기지에서 나눴던 그 대화들이 저를 정직하게 만들었고, 저에게 영감을 줬고, 계속 나아가게 해 줬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여러분에게서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처음 시카고에 왔을 때, 저는 아직 제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를 때였고, 인생의 목적을 찾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서, 저는 문을 닫은 제철소의 그림자 아래에서 교회 단체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거리에서 믿음의 힘을 보았고, 고난과 상실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가는 위대한 노동자들의 조용한 존엄성을 보았습니다.


(군중: “4년 더!”를 연호)

그건 안 됩니다. 바로 여기서 저는 이런 사실을 배웠습니다. 변화를 만드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서, 참여하고, 함께 모여 요구할 때라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으로 8년을 보낸 지금도 저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단지 제 개인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미국이란 생각의 뜨거운 심장, 곧 자치 정부라는 대담한 실험의 심장입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믿음,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된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 권리들은 자명하지만, 결코 저절로 지켜진 적은 없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라는 도구를 통해서 더 완전한 연합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이건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리에게 남긴, 얼마나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생각입니까. 땀과 노동과 상상력을 통해 각자의 꿈을 추구할 자유, 그리고 동시에 서로 힘을 합쳐 더 큰 공익, 더 큰 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함께 우리에게 준 겁니다. 240년 동안 이 나라가 시민에게 건네온 이 부름은, 각 세대의 삶과 일에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그래서 애국자들은 폭정보다 공화국을 택했고, 개척자들은 서부로 향했고, 노예들은 자유를 향한 길 두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선택했습니다.


이 부름은 이민자와 난민들이 대서양과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향해 손을 뻗게 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조직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 부름 때문에 미군들은 오마하 해변과 이오지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바쳤고, 셀마에서 스톤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걸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은 예외적인 나라”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이 나라가 처음부터 흠 하나 없이 완벽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보여왔고, 다음 세대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 왔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진전은 늘 고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일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논쟁적이었고, 때론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궤적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처음의 그 창립 신념을 점점 더 넓혀, 일부가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만약 제가 8년 전 여러분께 이랬다고 해봅시다. 미국이 대공황에 버금가는 불황을 되돌려 놓고, 자동차 산업을 다시 일으키고, 우리 역사상 가장 긴 기간의 일자리 증가를 이뤄낼 거라고. 우리가 쿠바 국민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장을 열고,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고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고, 9·11의 설계자를 제거할 거라고 말입니다.


또 이렇게 말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2천만 명에 이르는 우리 동료 시민들이 건강 보험을 새로이 갖게 될 거라고. 여러분은 제 눈높이가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해냈습니다. 여러분이 해낸 일입니다. 여러분이 곧 변화였습니다. 사람들의 희망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거의 모든 지표에서, 지금의 미국은 우리가 출발했을 때보다 더 나은, 더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열흘 뒤, 온 세계는 우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장면을 보게 될 겁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에요. 자유선거로 뽑힌 한 대통령에게서 다음 대통령으로 평화롭게 권력이 이양되는 장면 말입니다. 저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부시 대통령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행정부가 가능한 한 매끄러운 정권 이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도전을, 정부가 우리를 돕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건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해낼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존경받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젊음, 추진력,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다시 발명해 나가는 무한한 능력 덕분에, 미래는 본래 우리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잠재력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때에만 현실이 됩니다. 우리 정치가 국민의 품성과 선량함을 더 잘 반영할 때에만, 그리고 정당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사람이 지금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공동의 목표 의식을 회복하는 데 힘을 모을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오늘 밤 제가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입니다. 민주주의는 생각과 의견의 일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서로 논쟁하고 다투다 결국 타협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우리도 그렇게 하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가 한 가지 기본적인 연대감은 요구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탔다는 생각, 우리가 함께 오르고 함께 내려간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이런 연대감을 위협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초반은 그런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더 좁아진 세계, 커져만 가는 불평등, 인구 구조의 변화, 테러의 공포. 이런 힘들은 우리의 안보와 번영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시험대에 올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며, 우리의 본토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가 좌우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먼저, 모두에게 경제적 기회가 있다는 느낌 없이는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좋은 소식은, 지금 우리 경제가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임금, 소득, 주택 가격과 은퇴 자금이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빈곤율도 다시 떨어지고 있습니다. 부유층은 세금을 더 공정하게 부담하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실업률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에 근접해 있습니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비율은 역사상 가장 낮습니다.


의료비 상승 속도는 지난 50년 중 가장 느립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 차례 말했고, 지금도 진심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개선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적은 비용으로,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건강보험 제도를 누군가 설계할 수 있다면, 저는 공개적으로 그 계획을 지지하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그거니까요. 점수를 따거나 공을 가로채려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룬 실질적인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게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소수만 잘 살고, 중산층은 정체되거나 줄어들고, 중산층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다리가 사라진다면, 우리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빠르게 성장하지도 못합니다. 이게 경제적인 문제 제기입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불평등은 우리 민주주의라는 이상 자체를 안에서부터 좀먹기도 합니다. 상위 1퍼센트가 부와 소득의 더 큰 몫을 차지하는 동안, 너무 많은 가정들이, 도시 변두리든 시골이든 간에, 한참 뒤처져 버렸습니다.


일터를 잃은 공장 노동자,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웨이트리스와 간병인, 간신히 월급으로 청구서를 막아가며 사는 이들. 그들은 이 게임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고 느낍니다. 정부는 강자들만을 위해 일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감정은 정치에서 냉소주의와 분열을 더 키우는 조합입니다.


이 장기간의 흐름에 대한, 손쉬운 해법은 없습니다. 저도 생각합니다. 무역은 공정해야 하며, 단지 자유롭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요. 하지만 다음에 닥칠 경제적 격변의 물결은 해외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좋은 중산층 일자리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끊임없는 자동화의 속도에서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을 위해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힘을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반영하도록 사회 안전망을 새로 손봐야 합니다.


새 경제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기업과 개인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 준 이 나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세제도 더 개혁해야 합니다. 이 목표를 어떻게 이루는 게 최선인지는 두고 볼 수 있고, 논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 자체를 놓고는 무심해져서는 안 됩니다. 모두에게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이미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 냉소와 분열은 앞으로 더해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두 번째 위협은, 우리나라만큼 오래된 문제입니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탈인종주의(post-racial) 시대의 미국’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 비전은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애초에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인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강력하고, 때로는 분열을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저는 이제, 10년, 20년, 30년 전과 비교하면 인종 관계가 더 나아졌다는 걸,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충분히 오래 살아오며 보았습니다.


그건 단지 통계에서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른 젊은 미국인들의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앞에는 더 많은 일이 놓여 있습니다.

만약 모든 경제 문제를, 열심히 일하는 백인 중산층과 ‘자격 없는’ 소수 인종 사이의 싸움으로만 그려낸다면, 결국 모든 피부색의 노동자는 서로 남은 부스러기를 두고 싸우는 동안, 부유층은 더 깊은 울타리 안으로 숨어 버릴 것입니다.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아이들에게 투자하기를 마다한다면, 결국 우리 자신의 아이들 앞길을 좁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그 갈색 피부 아이들이, 내일의 미국 노동력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경제가 반드시 제로섬 게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미 보여줬습니다. 작년, 모든 인종과 모든 연령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소득이 올랐습니다.


앞으로 인종 문제에 진지하게 임하려면, 우리는 고용, 주거, 교육, 형사 사법 제도 등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건 우리 헌법과 가장 높은 이상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그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사회적 태도는 때로는 세대에 걸쳐 변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점점 더 다양한 사회가 되어 가는 만큼,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미국 소설 속 위대한 인물 애티커스 핀치가 남긴 말을 새겨야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의 피부 안으로 들어가 돌아다녀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진정 이해할 수 없다.”

흑인과 다른 소수 집단에게는, 우리의 아주 현실적인 정의를 위한 투쟁을, 이 나라의 많은 이들이 겪는 도전과 연결 짓는다는 뜻입니다. 난민과 이민자, 농촌 빈민, 트랜스젠더 미국인뿐 아니라, 겉보기엔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경제적·문화적, 기술적 변화로 세상이 뒤집힌 걸 느끼는, 중년의 백인 남성의 어려움에도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백인 미국인에게는, 노예제와 짐 크로 법의 영향이 1960년대에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소수 집단이 불만을 터뜨릴 때, 그들이 단지 ‘역차별’을 하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벌일 때, 그건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들이 약속한,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미국인들에게는, 오늘날 이민자들을 향해 퍼붓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과거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폴란드인들을 향해 거의 똑같은 말로 쏟아졌다는 걸 떠올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미국의 근본적인 성격을 망칠 거라고들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새로운 이민자들은 이 나라의 신념을 받아들였고, 그 덕분에 이 나라는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 간에,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와 정치적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 교포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나라를 우리만큼 사랑한다고, 우리처럼 성실히 일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고, 그들의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 못지않게 호기심 많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런 생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생기고, 우리와 같은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이들만의 울타리 속으로 물러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예배당에서, 그리고 특히 소셜 미디어 피드 속에서 말입니다. 그런 울타리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한 번도 진지하게 도전해 보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노골적인 편 가르기, 경제적·지역적 격차의 심화, 취향별로 갈라진 수많은 미디어 채널의 등장까지, 이런 모든 것들이 이 ‘위대한 분류’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우리 거품 속에서 더 안정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있는 증거를 토대로 의견을 세우는 대신, 우리 생각에 맞는 정보만 골라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 추세는 민주주의에 대한 세 번째 위협을 드러냅니다. 정치는 아이디어의 싸움입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그렇게 설계됐습니다. 건강한 논쟁 속에서는, 각자가 서로 다른 목표를 우선순위에 두기도 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서로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공유된 사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려는 마음, 그리고 상대가 옳은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점을 인정할 자세, 과학과 이성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끝없이 서로 엇갈린 말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공통의 기반을 찾는 일도, 타협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정치를 볼 때 그렇게 자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 중 하나 아닐까요? 유치원 무상 교육 예산을 이야기할 땐 재정 적자를 두고 그토록 분노를 터뜨리는 이들이, 기업에 대한 감세를 논의할 땐 왜 같은 열정을 보이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우리 편 정치인의 비리에는 눈감으면서, 상대편이 같은 일을 하면 달려들까요? 이건 단지 불성실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사실만을 가려 뽑는 선택적 태도입니다. 그리고 자기 발목을 잡는 길입니다. 제 어머니가 늘 말했듯이, 현실은 결국 따라잡기 마련이니까요.


기후 변화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외국산 석유에 대한 의존을 절반으로 줄였고, 재생 에너지 생산을 두 배로 늘렸으며, 이 지구를 구하겠다는 약속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모았습니다.


하지만 더 과감한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기후 변화의 존재 여부를 두고 논쟁할 시간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영향에 대처하느라 바쁠 테니까요. 더 많은 환경 재난, 더 많은 경제적 혼란, 피난처를 찾아 몰려드는 기후 난민들의 물결이 닥쳐올 것입니다. 어떤 해법이 최선인지를 두고 우리는 얼마든지 논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건, 단지 미래 세대를 배신하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이끌어 온 핵심 정신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개척정신과 실용적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우리 건국 정신의 핵심 말입니다.


이 정신, 곧 계몽주의에서 태어난 그 정신이 우리를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키티호크에서 케이프커내버럴까지 날아오르게 했고, 질병을 치료하고, 주머니마다 컴퓨터를 넣어 준 정신입니다. 이건 힘보다 정의를 우선시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대공황 시기 파시즘과 독재의 유혹을 뿌리쳤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민주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세웠습니다.


그 질서는 단지 군사력이나 혈연, 지연에 기대 선 게 아닙니다. 법치, 인권, 종교의 자유와 언론, 집회의 자유, 독립적인 언론이라는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 질서는 지금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는 이슬람을 대표한다 주장하는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그리고 최근에는 자유 시장과 개방된 민주주의, 시민사회를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는 외국의 독재자들에 의해 말입니다. 이들이 우리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은, 자동차 폭탄이나 미사일보다 훨씬 더 넓고 깊습니다. 그들은 변화에 대한 공포를 상징합니다. 다른 모습, 다른 언어,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도자를 법으로 견제한다는 생각 자체에 대한 경멸입니다. 다른 의견과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불관용입니다. 총칼과 폭탄, 선전 기계가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우리 군인들의 놀라운 용기 덕분에, 그들을 지원하는 정보 요원, 법 집행기관, 외교관들 덕분에...

지난 8년 동안, 외국 테러 조직이 우리 본토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보스턴과 올랜도, 샌버너디노, 포트후드에서의 비극은, 급진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하지만 우리 법 집행 기관은 그 어느 때보다 효율적이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만 명에 이르는 테러리스트를 제거했습니다. 그 가운데 빈 라덴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끄는 ISIL에 맞선 국제 연합군은 그 지도부를 제거했고, 그들의 영토 절반가량을 되찾았습니다. ISIL은 결국 파괴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위협하는 누구도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복무 중이든 전역했든,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최고 통수권자로 여러분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지키는 일은, 오직 군인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두려움에 굴복할 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시민으로서 외부의 공격에 대해 경계심을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가치들이 약해지는 것에도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제가 테러와의 싸움을 더 튼튼한 법적 토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 애써 온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문을 중단했고, 관타나모를 폐쇄하기 위해 노력했고, 감시 관련 법을 개정해 사생활과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슬림 미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들은 우리 못지않게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 인권, 여성의 권리, 성소수자의 권리를 넓히기 위한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불완전하든, 그런 가치를 외면하는 일이 아무리 손쉬워 보이든, 그런 가치를 지키는 것이 곧 미국을 지키는 일의 일부입니다. 극단주의와 편협, 종파주의와 배타적 국수주의에 맞서는 싸움은, 독재와 공격적인 민족주의에 맞서는 싸움과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자유의 범위와 법치에 대한 존중이 줄어들수록, 나라 안팎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커지고, 결국 우리 자신의 자유도 위협받게 됩니다.


그러니 경계하되, 두려워하지 맙시다. ISIL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려 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싸움에서 헌법과 우리의 원칙을 배신하지 않는 한, 그들은 미국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경쟁자들도, 우리가 스스로 지켜온 가치들을 버리고, 그저 힘센 나라가 약한 이웃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나라로 전락하지 않는 한, 우리와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길 때마다, 민주주의는 위협받습니다. 정당을 떠나,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 제도를 다시 세우는 일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선진 민주국가들 가운데 투표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된 지금, 우리는 투표를 더 어렵게 가 아니라, 더 쉽게 해야 합니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수록, 우리는 정치 자금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여야 하고, 투명성과 공직 윤리라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의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정치인들이 상식이 아니라 극단에만 호소하지 않도록 선거구를 다시 그려야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참여에 달려 있습니다. 권력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놀랍고도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종이 한 장에 불과합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부여해 줄 때,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우리가, 국민이, 참여와 선택, 우리가 맺는 연대와 동맹을 통해 그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우리 자유를 위해 일어설지 말지, 우리가 정하고, 법치를 존중하고 지켜낼지 말지도 우리가 정합니다. 미국은 나약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향해 걸어온 긴 여정의 성과는, 결코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고별 연설에서, 자치 정부가 우리의 안전과 번영, 자유의 기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와 여러 경로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 진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을 것”이라고도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진리를 “질투하듯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다른 부분과 떨어뜨려 놓으려는 시도, 우리를 하나로 묶는 ‘성스러운 유대’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의 “가장 첫 징후”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이여, 우리가 정치적인 대화를 이렇게나 파괴적인 수준으로 떨어뜨릴 때, 선량한 사람들이 공직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이런 유대를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미국인을, 단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이가 아니라 악의를 품은 사람으로 여길 때, 이런 유대는 약해집니다. 어떤 사람들을, 다른 이들보다 더 ‘진짜 미국인’으로 치켜세울 때, 이런 유대는 약해집니다.


정치 시스템 전체를, 필연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치부해 버릴 때, 우리가 뽑은 지도자를 탓하기만 하고, 그들을 뽑은 우리 자신의 역할은 돌아보지 않을 때, 그 유대는 약해집니다.


민주주의의 이런 진실을 질투하듯 지키는 일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이 위대한 나라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즐거운 책무를 기꺼이 떠안는 것도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은 많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장 자랑스러운 직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직함, ‘시민’이라는 이름입니다.


시민! 그렇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선거가 있을 때만, 혹은 나의 좁은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요. 인터넷에서 낯선 이들과 싸우는 데 지쳤다면, 그중 한 명을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눠 보십시오.


무언가 고쳐야 할 게 보인다면,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나가서 사람들을 조직해 보십시오.

선출된 공직자들에게 실망했다면, 클립보드 하나 들고나가 서명을 받고, 직접 출마해 보십시오.

나타나고, 뛰어들고, 끝까지 버티십시오. 사람들의 안에 선함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건, 때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여러분을 실망시키는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여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특권을 누린 우리로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여러분에게 힘을 주고,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은 다시금 확인될 것입니다. 제 믿음이 그랬듯이요.


지난 8년 동안, 저는 졸업을 앞둔 청년들과 새로 임관한 장교들의 희망에 찬 얼굴을 봐 왔습니다. 답을 찾아 헤매는 유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눴고, 찰스턴의 한 교회에서 은총을 마주했습니다. 저는 우리 과학자들이 한 마비 환자가 다시 촉각을 느끼도록 돕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때는 살 가망이 없다고 여겨졌던 상이군인들이 다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한 지진 이후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도운 의사와 자원봉사자들을 봤습니다. 팬데믹이 번지기 전에 그것을 막아낸 사람들을 봤습니다. 가장 어린아이들이, 자기 행동과 너그러움을 통해, 난민을 돌보고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할 우리의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를 상기시켜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수년 전 제가 평범한 미국인들이 변화를 일으킬 힘을 믿게 되었을 때 품었던 그 믿음은, 제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보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도 그러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든, 집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든, 어떤 분들은 2004년, 2008년, 2012년부터 함께해 주신 분들일 겁니다.


아직도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진짜로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여러분만이 아닙니다.


미셸...

사우스사이드 출신, 미셸 라본 로빈슨.

지난 25년 동안, 당신은 제 아내이자 우리 아이들의 엄마였을 뿐 아니라, 제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당신은 원하지 않았던 역할을 떠맡았고, 그 역할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품위와 강인함, 스타일과 유머 감각으로 해냈습니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두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을 롤모델로 삼는 새로운 세대가, 더 높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자랑스럽게 만들었고,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말리아, 그리고 사샤...

세상에서 가장 낯선 환경 속에서도, 너희는 놀라운 두 젊은 여성으로 자라났습니다.

너희는 똑똑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너희가 친절하고, 사려 깊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년간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 무거운 짐을, 너희는 너무도 씩씩하게 감당해 냈습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시간 중에서, 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바로 너희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조 바이든에게...

스크랜턴 출신의, 거친 소년

그리고 델라웨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된 사람. 당신은 제가 후보 시절에 내린 첫 번째 결정이었고,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당신이 훌륭한 부통령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선택 덕분에 제가 한 형제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질을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당신과의 우정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제 참모들에게. 지난 8년 동안,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저는 여러분의 에너지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매일, 여러분이 보여준 것에 대한 마음, 인격, 이상주의를 제 모습에 비추려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분이 성장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스스로 놀라운 여정을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상황이 힘들고 답답할 때조차, 여러분은 워싱턴이 여러분을 잠식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냉소를 경계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뤄낸 모든 좋은 일보다도, 앞으로 여러분이 여기서부터 이뤄낼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게 더 큰 자부심을 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한, 그리고 화면 앞의 모든 여러분께. 낯선 마을로 옮겨 가 사람들을 조직했던 모든 활동가들,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모든 친절한 가정들, 문을 두드리며 유권자를 설득한 모든 자원봉사자들, 생애 첫 한 표를 행사한 모든 젊은이들, 그리고 변화라는 힘든 일을 숨 쉬듯 해낸 모든 미국인들. 여러분은 누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최고의 지지자이자 조직자들이었고, 저는 여러분께 영원히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정말로 여러분이 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무대를 떠나면서,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이 나라의 미래에 더 큰 희망을 품고 갑니다. 우리가 한 일이 수많은 미국인의 삶을 더 낫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미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여러분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에 인생을 걸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이 세대는 헌신적이고, 이타적이며, 창의적이고, 애국심이 깊습니다. 저는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국을 믿습니다. 끊임없는 변화가야말로 미국의 특징이며, 두려워할 게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힘든 민주주의의 일을 앞으로 계속 이어 나갈 의지가 있습니다. 머지않아 여러분의 수가 우리 누구보다 많아질 것이고, 저는 그 덕분에 미래가 좋은 손에 맡겨질 것이라 믿습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남은 날 동안, 저 역시 시민으로서 여러분 곁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의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8년 전, 여러분이 저를 선택해 주셨을 때 드렸던 바로 그 부탁입니다.


저를 믿으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믿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국 문서에 새겨진 그 믿음을 붙들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노예와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작게 속삭였던 그 생각, 이민자와 개척민, 정의를 위해 행진했던 이들이 노래로 되뇌었던 그 정신, 외국 전장에서부터 달 표면까지 깃발을 꽂았던 이들이 다시 확인해 온 그 신념 말입니다. 아직 쓰이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모든 미국인의 중심에 있는 신념.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did.”

“우리는 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그리고 신께서 계속해서 미국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및 번역참고자료

The New York Times, “President Obama’s Farewell Address: Full Video and Text” (2017.1.10)

POLITICO, “Full text: Obama farewell speech transcript”

경향신문, 「오바마 대통령 고별연설 ‘언제나 여러분 곁에 함께 있겠다’」 – Federal News Service 전문 번역본

& 중앙일보 관련 보도: 영어 전문 및 고별연설 기사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108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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