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올해 초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온 뒤 추석 연휴를 전후해 2주 일정으로 미국 여행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로스앤젤리스(LA)로 들어가 미국 프로야구(MLB)를 직관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에서 놀다가 뉴욕으로 건너가 자유의 여신상과 MoMA(현대미술관), 자연사박물관을 보면 딱 맞겠다 싶었다.
태국 파타야 쇼핑몰 터미널21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인천-LA-뉴욕-인천 비행기 값은 성인 1인 130만 원 내외였다. 소아를 포함하면 2인 240만 원 정도면 충분했다. 미국에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항공권 예매를 미뤘다. 치앙마이 한달살기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뒤 다시 미국 항공권을 검색했다. 같은 코스로 성인 1인 기준 190만 원, 두 달 사이에 46%나 폭등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달러 환율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일단 치앙마이 여행에 집중하기로 하고, 비행기 값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태국 방콕 짜오프라야강에서 본 페닌슐라 호텔
하필 학교 같은 반 친구가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왔다니... 아들이 미국에 가자고 조르진 않았다. 그래도 아들에게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비수기인데 미국행 비행기 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략 숙소는 1박당 10만 원, 식음료비는 1일 5만 원으로 잡고 12박을 지낸다고 가정하면 180만 원이 든다. 항공비까지 더하면 2주 여행 필수 경비만 5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태국 치앙마이 매림 지역 카페 랩어빗(Rab a Bit)
태국 치앙마이 매림 지역 카페 랩어빗(Rab a Bit)
아들과 첫 해외여행 행선지를 태국 치앙마이로 바꾼 이유 중 하나는 '물가'였다. 태국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가 푸껫이고, 방콕과 파타야가 그 뒤를 잇는다. 치앙마이는 푸껫 물가의 절반 수준. 치앙마이는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 중 가장 싼 물가를 자랑한다. 항공료를 제외하더라도 숙박비, 식음료비, 교통비 할 것 없이 모든 게 저렴했다. 체감적으로 서울보다 30% 이상 쌌다.
실제로 치앙마이에서 제일 좋은 로컬 호텔이 1박당 7만 원이고, 유명한 유기농 식당 1인 식사값이 1만 3000원이다. 치앙마이에서는 그랩(Grab) 중 가장 비싼 SUV 차량을 불러 40~50분을 달려도 1만 5000원도 안 나온다. 그렇게 3주를 풍족하게 지내면서 쓴 비용은 120만 원 채 안된다. 물론 골프 비용은 제외.
태국 치앙마이 유기농 레스토랑 오카주(Ohkajhu)
태국 치앙마이 유기농 레스토랑 오카주(Ohkajhu)
*식음료비: 약 75만 원
조식은 호텔에서 해결했다. 점심식사는 아들은 학교에서, 나는 그때그때 간단히 챙겨 먹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호텔에서 늦은 조식을 먹었고, 점심식사는 간식으로 대신했다. 식음료비의 대부분은 저녁 식사 및 간식이었다.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혹시나 배탈이 날까 봐 길거리 음식을 자제했다. 위생적으로 믿을 수 있는 쇼핑몰 내 식당이나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식사+간식+음료 비용으로 하루 800~1000밧 정도 쓴 것 같다. 치앙마이에서 한 끼 식사값이 300밧 정도면 질적으로, 양적으로 괜찮은 음식/식당이다. 치앙마이에 8살 아이와 함께 온 한국인은 아무리 안 써도 하루 1000밧 이상 쓴다고 했다. 치앙마이 여행을 계획한다면 하루 식음료 예산으로 1000밧을 잡으면 적절한 것 같다.
태국 치앙마이 유기농 식당 진저팜키친(Ginger farm kitchen)
태국 치앙마이 유기농 식당 진저팜키친(Ginger farm kitchen)
*교통비: 약 30만 원
주로 치앙마이 중심가에 묵었기 때문에 차를 탈 일이 별로 없었다. 아이를 학교에 픽업-드롭하거나 둘이서 소풍 갈 때, 그리고 골프장 갈 때 택시(그랩)를 탔다. 택시비는 하루 400밧(1만 5000원) 이상 쓴 적은 없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택시를 탈 일이 없었고, 운이 좋을 때는 차가 있는 한국인 여행객이 태워주기도 했다. 숙소를 옮길 때는 짐 때문에 SUV를 불렀고 300밧 정도 들었다. 교통비는 넉넉히 30만 원 정도 썼다. 차를 빌린다면 차량 종류와 보험 유무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하루에 2만 5000원은 내야 한다. 본인의 여행 루트에 따라 차를 빌릴 것인지 택시를 탈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태국 방콕-파타야 블루망고(Bluemango) 투어 차량
*여행비: 약 10만 원
아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둘이서 '1일 1 소풍'을 다녔다. 여행비는 우리가 다녀온 관광지의 입장료와 체험료다. 이중 코끼리 먹이 체험 비용이 가장 비싼데, 둘이 합쳐 1500밧, 5만 6000원 정도 들었다. 꽤 비싸지만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아들과 함께 간 관광지(치앙마이동물원/히든빌리지/타이거킹덤)는 1인당 200~300밧이면 입장할 수 있다.
*골프 비용: 약 20만 원
치앙마이에서 오로지 나를 위해 쓴 돈은 골프다. 아이가 학교 간 시간에 골프를 쳤다. 3주간 머물면서 퍼블릭 18홀 4회, 9홀(X2) 1회, 파3 1회 라운딩을 다녔다. 퍼블릭 18홀 4회 비용은 그린피+캐티피+카트비+캐디팁을 합쳐 17만 원, 9홀(X2)은 1만 3000원, 파3는 7500원. 음료 비용까지 포함해 넉넉히 20만 원을 썼다. 한국은 또 캐디피가 올라 15만 원을 줘야 한다. 카트비는 10만 원 내외. 한국 골프 카트비로 치앙마이에서 꽤 괜찮은 퍼블릭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두 번이나 즐길 수 있다. 치앙마이에서 골프 칠 때 3만~5만 원도 아까워 절절맸는데, 왜 그렇게 했나 싶다.
태국 치앙마이 란나골프코스 라운딩 티켓
'가성비'가 눈에 딱 들어오는 마당에 미국 여행을 계획하기 쉽지 않다. 3주간 총 경비 460만 원으로 국제학교를 다니고 호캉스를 하며 풍족하게 살았던 치앙마이 대(VS) 2주간 필수 경비만 500만 원이 훌쩍 넘는 미국. 과장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싼 도시와 가장 비싼 도시의 차이다. 성수기인 연말로 접어들수록 미국행 항공권은 더 비싸진다. 과연 우리가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