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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Dec 28. 2022

가을_4. 영탁과 어머니의 시간①

어머니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오셨다. 결혼 후 10년 만이다. 우리는 고속 열차를 타면 2시간 채 걸리지 않는, 왕복 4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 1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4시간을 빼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산술적으로 0.0045%, 10년 중에 0.1%도 안 되는 시간인데 말이다. 우리의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내 친구들은 아내에게 '명예 며느리'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어떻게 시어머니를 10년 만에 집으로 모실 수 있느냐'는 의구심과 부러움이 배어 있다. 어머니의 쿨한 성격과 집안 막내인 나의 위치 때문에 아내는 자의 반 타의 반 '명예 며느리'가 됐다. 결혼 8년 차 때 혼자 고구마 삶기를 완성한 아내에게 "정말 장하다!"라고 감격할 정도이니 명예 며느리가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덕분에 어머니 댁에 가는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어머니는 40년 넘게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아버지와 함께 일군 가게인데, 14년 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에도 꿋꿋이 일하신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시장에 나가시고 저녁 9시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신다.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에게 그곳은 밥벌이 이상의 공간이 됐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고 얘기하는 곳이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곳이다. 

"시장 일을 그만두면 뭐 하고 먹고살지?"

'가게를 접으시라'라는 삼 남매의 잔소리에 어머니가 되물었다. 굶는 것 그 이상의, '사람으로서 삶을 살 수 있느냐'는 뜻이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된 일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일상에 무작정 가게 문을 닫고 서울에 오시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어머니가 4년 만에 서울에 오셨다. 트로트 가수 '영탁'을 보기 위해서다. 전국 투어를 마친 영탁이 지난가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앵콜 공연을 했다. 어머니는 안동 공연을 보셨고, 그전에는 대구 공연도 보셨다. 코로나19 사이에 영탁의 '찐 팬'이 되셨다. 영탁은 내가 10년간 못했던 '어머니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어머니에게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탁에게 감사했다. 이번에는 꼭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가 서울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도 되지 않았다. 새벽 장사를 마치고 올라와서 다음날 장사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내려가셔야 했다. 열차표를 예매하고 공연 시간과 이동 동선을 감안해 점심 및 저녁 식사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있었다.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다.

2018년 추석,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어머니와 형 가족, 누나 가족, 그리고 우리 세 식구 등 총 13명이 2박 3일 동안 서울 도심을 누볐다. 명동에서 버스를 타고 남산에 올라가 서울타워를 보고 충무로로 내려와 한국의 집을 둘러봤다.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다시 서울시청으로 걸어 다니며 명절 연휴로 한적해진 서울을 구경했다. 청명했던 가을 밤하늘, 서울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문화공연을 보며 즐겼던 그 여유로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우리 집은 공사판이어서 사촌 처제가 근무하는 시내 호텔에 어머니를 모셨다. 호텔 위치 덕분에 대부분 도보 관광이 가능했다. 형은 숙소를 마련해 준 사촌 처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 날에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식사하는 일정으로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서울 투어는 마무리됐다. "롯데월드타워에 올라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저녁 늦게 자가에 도착한 형이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언제 또 오실 수 있을지 모르는 어머니에게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심전심.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야속하게도 롯데월드타워(서울스카이)는 서울 어디서나 보였다.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 짐을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4년 만에 왔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아들 키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꼼꼼하게 일정을 짰다. 그런데 돌연 어머니는 '당일치기'를 말씀하셨다. 다른 팬들과 함께 '영탁 버스'를 타고 움직이겠다고 했다. 막내아들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배려였을 테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희 집에 안 오시면 저희 정말 섭섭해요."

"막내아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한번 봐야지."

"영탁만 보고 오면 막내아들이 섭섭해해요."

아내와 누나, 형수가 어머니를 설득했다. 구구절절한 호소에 어머니가 물러섰다. 나도 양보했다. 어머니는 애초에 영탁 공연을 함께 보자고 하셨다. 표 예매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옆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나에게 영탁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고, 현장에서 표를 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트로트에 관심 없었던 나는 "비서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당일 치기'를 말씀하시는 바람에 나도 고집을 꺾고 영탁 공연을 보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가 나보다 영탁을 더 좋아해도 상관없다. 어머니를 모실 기회만 있다면!

가을_4. 영탁과 어머니의 시간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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