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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Mar 03. 2023

<여행의 순간들>4. 여행에도 주제곡이 있다면

여행에도 '주제곡'이 있을까. 음악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주제곡을 들으면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듯, 여행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던 노래가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유럽 여행의 주제곡이 됐다.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가 함께 걸었던 로마의 이름 모를 골목길이 떠오른다. 좋은 음악이 있는 영화의 감동이 더 오래가듯, 아직도 행복했던 여행의 순간들이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

TV 없는 거실에는 늘 음악이 있다. 특별히 듣고 싶은 음악이 없을 때는 'KBS 클래식 FM'이 배경 음악이 된다. 재택근무 중인 아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윤수영의 생생 클래식'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발걸음을 잡았다.


Voces angelorum gloria

(천사들의 영광스러운 목소리여)

Dona eis pacem

(평화를 주소서)


포레스텔라의 'Angel'(원곡: 리베라 합창단). 처음 들은 노래가 아닌데 이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빼앗겼다. 경건한 선율과 아름다운 음성, 이국적인 라틴어 가사들... 여기에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겹치면서 모든 것이 "어서 유럽으로 오라"는 듯 내 귀를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늘 이 음악을 들었다. '1시간 연속 듣기'가 있어 번거롭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지 않아도 됐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아닌데도 주변의 시끄러운 잡음들이 싹 사라졌다. 항공편과 호텔, 가이드 투어를 예약하고 구글 지도로 여행지의 길을 익힐 때까지 수백 번을 듣고 또 들었다.

바티칸 박물관 라오콘 군상

언제부터인가 '넷플릭스'가 음악의 자리를 대신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유행하기 전 어딜 가든 늘 음악이 함께 했다. 잡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는 영화를 본다. '내 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음악을 듣는다. 영화보다 음악에 쉽게 '감정 이입'이 되는 성격이다. 그 순간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KBS 클래식 FM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전기현 씨의 목소리와 여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힐링된다. 가끔씩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곤 하는데 옛 추억에 가슴이 아련하면서도 지금의 삶에 감사하게 되고, 전쟁 같은 생활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찾게 된다.


음악의 '음'자도 모르고,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다. 수백 번 불러본 노래가 아니면 음치에 가깝다. 초등학교 6학년, 음악 실기 평가에서 부른 '겨울나무'는 내가 노래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려줬다. 3년 전 피아노를 독학해 보고자 하얀색 전자피아노를 샀지만 수북이 쌓인 먼지를 닦을 때만 손을 댄다. 음악은 듣기만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투어'를 할 때는 일디보(Il Divo)의 Adagio와 Si tu me amas를 들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둘러봤다. 일디보 멤버 중 한 명,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카를로스 마린'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이유밖에 없다. 필리핀 세부, 시골 버스 차장이 입은 2Pac 티셔츠가 California Love와 All eyes on me를 소환하기도 했다. California Love는 쨍한 세부 날씨와도 제법 잘 어울렸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꼭 음악을 배우고 싶다.

로마 판테온

Where a million angels sing

in amazing harmony

(수많은 천사들이 놀라운 화음으로 노래하는 곳)

And the words of love they bring

to the never ending story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사랑의 말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예요.)


'악마도 성불하고 갈 음성이다.'

2006년 처음으로 국제선을 탄 이래로 여행할 때 이렇게 깊게 와닿은 노래는 아직 없다. 포레스텔라의 음성도, 원곡자인 리베라 합창단의 음성도 모두 천상의 목소리다. Angel은 마치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라파엘로의 성화를 노래로 표현한 듯하다. 이 노래에 달린 댓글 그대로 어떤 이도 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질 것 같다. 복직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여행의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부모님 밑에서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는데, 부모가 되니 '쉬운 하루'도 없는 것 같다. 인생은 쉽지 않지만 가치 있다고 했다. 쉬운 삶을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힘든 삶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We shouldn't pray for an easy life but the strength to endure a difficult one. <영화 'Father Stu'에서>

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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