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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재 Apr 08. 2024

인터스텔라 - 항성과 항성, 마음과 마음 사이 (1)

철 지난 영화 분석



  자신들만의 독특한 작품성으로 화자되는 영화들이 있다. 놀란 감독의「인터스텔라」도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종종 호출되는 영화이다. 볼 때마다 새롭다. 그래서 오랜만에 「인터스텔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영화에 포함된 천체, 물리학 얘기들이 영화를 어렵게 만들고, 그 탓에 영화를 관람했음에도 지금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들도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리뷰는 해설의 성격을 띄고자 한다. 플롯에 대한 설명은 물론 영화에 쓰이는 물리학 이론들도 아주 간단하게 짚어보겠다. 지금은 물리학이 섞인 이야기를 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다수의 SF 소설에도 물리학 이론들이 섞여있고 얼마 전 물리학자의 일대기를 다룬 「오펜하이머」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물리학이 조금이나마 대중들에게 친숙해졌다는 생각이다. 물리학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이해를 포기했던 이들이 마침내 이 영화를 100%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다.

  10년이 된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새삼스럽지만,「인터스텔라」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또 해설이 필요한 제법 어려운 영화라는 생각이다. 볼 사람들은 다 봤다고 생각하는 만큼, 스포일러는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하겠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지금 아빠는 네 유령이 될 수 없어. 존재해야만 하니까."
-조셉 쿠퍼


  이 영화의 핵심은, 궁극적으로「인터스텔라」는 딸(머피 쿠퍼)과 아버지(조셉 쿠퍼)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요소들, 디스토피아, 먼지폭풍, 우주여행, 행성, 테라포밍, 웜홀, 중력과 블랙홀, 상대성이론, 중력파 등 영화의 배경이자 종종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무대를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인 것이다.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딸과의 약속을 어긴 아버지'이다. 다만 무대가 기깔날 뿐.

  인류에게 우주는 거대한 흥밋거리이지만 동시에 장벽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여러 천문학적, 물리학적 이론들이 들어가 있기에 영화가 어렵다. 나는 천체물리학도가 당연히 아니기 때문에 역부족일 것이고 틀린 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보고자 한다. 일단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영화에 적용된 몇몇 이론들이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웜홀) 덧붙여 인터스텔라는 물리학자 킵손의 자문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적 표현을 위해 허용된 것들도 많다.


  사실 관객의 이해를 위한 노력은 이미 영화가 하고 있다. 웜홀을 통과하기 전, 왜 웜홀을 원으로 그리냐는 쿠퍼의 질문에 동료 천문학자가 답하는 것이 좋은 예시이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겐 인식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개념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3차원에 몸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X,Y 좌표만 존재하는 2차원에서는 Z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4차원,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시공간은 또 하나의 물리적인 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간은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중력에 의해 구불구불하게 놓여있다. 그렇다면 공간이 격하게 휜 끝에 주둥이가 좁은 U자를 그릴 수도 있다. 공간과 공간이 맞닿은 그 주둥이 지점에 구멍이 있다면, 구멍을 통해 반대편 공간으로 U자를 따라가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사과에 벌레구멍(웜홀)이 뚫려 웜홀을 통해 사과 겉을 훑는 것보다 더 빨리 사과의 반대 면으로 갈 수 있는 것처럼. 구멍은 3차원에서 ‘구’이고 2차원에서는 ‘원’이다. 따라서 그림으로 그리면 웜홀은 원이 된다. 주인공 쿠퍼와 인듀어런스 호 대원들은 웜홀을 통과해 먼 외부은하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영화에 담긴 이론들과 그 이론에 따른 어려움이 이런 '상대성'에서 시작한다. 시간과 공간은 상식과는 달리 상대적이다. 즉, 고정된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경험하고 체감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빠르게 공전하는 인공위성은 지구와 시간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해준다고 한다.) 강한 중력은 빛도 휘게 한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은 빛을 빨아들이고 시공간에 구멍을 낸다.

  시간과 공간이 불변하는 진리라는 상식을 깨뜨리고 나와야 상대성을 이해할 수 있다. 머리가 아픈 관객의 모습은 재밌게도 아인슈타인이 처음 가져온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을 듣고 뇌정지가 왔을 당대의 과학자들과 닮아있는 것 같다. 


  놀란은 똑똑하게도 본격적으로 개판이 벌어지기 전에, 플롯이 복잡해지기 전에 쿠퍼 일행이 처음 도착하는 행성인 밀러행성에서 시간의 상대성을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수십 년 전 '밀러'는 거대한 블랙홀 가르강튀아 주위를 공전하는 밀러 행성에 도착해 행성에 물과 유기물이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쿠퍼 일행은 그 신호를 믿고 밀러 행성으로 향한다. 가르강튀아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블랙홀이기 때문에 가르강튀아를 공전하는 밀러 행성도 덩달아 고속으로 회전을 하고 있다. 때문에 밀러 행성에선 시간이 지구보다 60000배 느리게 흐른다. 밀러의 1시간은 지구의 7년이다. 인듀어런스 호 대원들은 밀러 행성이 밀러의 보고대로 인류의 새 터전으로 적합한지 확인해야만 한다. 시간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대원들은 인듀어런스 호를 밀러행성에 공전하도록 띄워놓고, 소형 비행정으로 20분 안에 행성에 다녀오기로 한다. 일행은 밀러의 보고대로 지면에 깔린 물, 그리고 저 너머의 산맥을 보고 기뻐한다. 그러나 밀러는 어디에도 없고 밀러의 비행선의 잔해만 찾아낸다. 곧 산맥이 땅이 아니라 거대한 해일임을 알아차린다. 밀러 행성은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으로 인해 1시간 간격으로 쓰나미가 생기는 행성인 것이다. 일행은 침수된 엔진을 고치고 대원 하나를 잃어가며 탈출에 성공하지만, 인듀어런스 호로 돌아가니 시간은 23년이 지나 있었다.

  일어난 일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자. 밀러 행성에 도착한 밀러는 풍부한 물과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보고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다는 정보를 지구로 보냈다. 직후, 해일이 덮쳐 밀러를 죽이고 밀러의 비행선을 파손시켰다. 이 일이 벌어지는 2~3시간 동안 밀러 행성 밖에선 수십 년이 지났다. 2~3시간 후 인듀어런스 호 대원들이 밀러행성에 착륙하고 사고를 당한다. 이들은 겨우 생존해 돌아가지만 그새 3시간이 지났다. 행성 바깥에선 이미 20년이 지나있다. 밀러 행성의 시간으로, 밀러가 죽은 후 인듀어런스 호 대원들이 밀러 행성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십분일 것이다. 왜냐면, 시간은 상대적이니까. 밀러 행성의 중력을 피한채로 행성 주위를 공전하며 그들을 기다린 대원 로밀리는 나이든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해결책을 찾겠죠, 늘 그래왔듯이"
-조셉 쿠퍼

  쿠퍼는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딸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다. 쿠퍼는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고 간절하다. 그러나 잔혹한 우주는 순간의 판단미스로 23년을 날려먹게 만든다. 쿠퍼에 감정이입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놀란은 시간의 상대성과 시간지연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의 두 편의 상대성 이론 논문이 발표되고 천문학계는 좌절에 빠졌다. 언젠가 기술이 발달해 로켓의 속도가 빨라지면 먼 우주로의 여행 역시 가능하리라 믿었건만. 시간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서, 빛의 속도로 여행하고 돌아오면 내 아들, 딸이 노인이 되어있을 거라고? 그 당시 학자들의 충격을 놀란은 관객에게 재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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