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등원하고 집에 돌아온 순간,
하루 중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오지만 동시에 무기력이 몰려온다.
아침에는 다섯 식구의 식사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나가려면 잡생각을 할 틈이 없다.
남편은 둘째, 셋째의 어린이집 등원까지 함께 해 준다.
아이들이 원에 들어가면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잔씩 들고 걸어오며 짧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남편은 회사로 출근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남은 커피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청소를 시작한다.
나의 무기력은 청소가 끝난 그 시점부터 스멀스멀 다가온다.
첫째 아이가 하교하기 전까지 순수하게 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은 3시간 정도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바랐건만,
텅 빈 공기는 그 자유시간을 고통의 터널로 만들어 버렸다.
SNS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소란스러운 TV소리에 정신을 빼앗기고, 계획했던 일들은 미뤄 둔다.
그러다 스스로 한심하다 여긴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
계획한 공부도,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할 회사 일도.
그런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면 나를 가차 없이 비난했다.
30대까지도 잘 몰랐다.
'나 우울해.' '나 무기력해.'
이유보다 내 마음의 상태에 집중했다.
상태에 집중하면 그 상태에 더 빠져들었다.
더 우울하고, 더 무기력해졌다.
반복되는 유산과 출산, 육아로 30대를 보내고, 40대에 들어서야 깨달았다.
감정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원인은 대개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이 상태에서 벋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과 시도 끝에, 답은 단순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는 것.
독서는 나의 생각의 전환을 도왔고,
글을 쓰는 행위는 나의 마음 상태와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었고,
운동은 근육을 쓰고 땀을 흘리며 살아 있다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세 가지 중 단 한 가지만 해도 나는 살아났다.
반대로 어느 것도 하지 않은 날, 무기력은 나를 집어삼겼다.
세 가지를 모두 한 날, 나는 온 세상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래서 아이들이 눈치채기 전에 내 상태를 빨리 알아차리고 뭐라도 해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엄마라 우울하지도 못해?' 잠깐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보니,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
엄마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려고 셋이나 나에게 왔으니 말이다.
나는 엄마라서 무기력했지만, 엄마이기에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글을 썼고, 무기력을 이겨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작은 노력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글을 읽어주는 당신 덕분이라는 것을.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 나는 충분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