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여섯 알과 사과 한 마디

by 카인드마마

올해 열 살이 된 우리 첫째.


토요일 밤부터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내렸다가 반나절이 지나면 열이 또 올랐다.

열이 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증상도 없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병원에 갔다.

평소와 달리 아이는 병원에서부터 예민했다.

독감 검사를 해 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의 저항이 심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먹고 등교해도 좋다고 하셨다.

약처방 중에 항생제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가 물약이 너무 먹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는 평소에도 액상 항생제를 먹으면 속이 너무 좋지 않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한 바 있었다.

작은 알약은 잘 먹을 수 있었기에 알약으로 처방을 받았지만, 약 크기가 좀 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의 눈빛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 약이 얼만큼 커?"


"엄마도 잘 모르지. 얼른 약국 가서 약을 받아보자."


처방받은 약이 나오자 아이보다 내가 먼저 놀라고 말았다.

알약의 크기가 큰 것을 물론이요, 한 번에 여섯 알이나 먹어야 했다.

아이가 약을 보더니 망연자실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먹어!"


"아니야. 너 약 잘 먹잖아. 큰 건 엄마가 잘라 줄게. 작은 것 먼저 먹자."


그중 가장 작은 두 알을 먼저 먹고,

그다음으로 반으로 갈라진 약을 받아 든 아이의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약국에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가 얼른 약을 먹어주길 바랐다.

엄마의 재촉에 아이는 억지로 알약 반알을 입에 넣고 삼키려고 시도했다.


"우엑!"


약국 바닥으로 물과 약이 쏟아져 나왔다.


"뭐 하는 거야!"


공공장소라는 압박감이 아이의 고통보다 앞서버린 순간이었다.


"약이 목에 걸렸단 말이야!"


평소에 침착하던 아이가 오늘따라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엄마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아이를 달래 가며 다시 시도해보려 했지만 아이는 결국 등을 돌렸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먹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먹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약과 소지품을 챙겨 약국을 나와 버렸다.

아이는 터덜터덜 뒤따라 걸으며 투덜댔다.


"약이 그렇게 큰 줄 내가 어떻게 알아. 도저히 못 먹겠단 말이야."


"네가 알약으로 달라고 했잖아. 먹기 힘들어도 삼키려고 노력을 해야지, 그렇게 뱉어버리면 어떡해!"


학교로 걸어가는 내내 아이도 나도 뾰족해지고 말았다.

고민 끝에 엄마가 다시 병원에 가서 물약으로 받아오겠다고 한 말에 아이는 다시 한번 언성을 높였다.


"싫어! 물약 진짜 싫단 말이야!"


"그럼 어쩌자는 거야! 약을 먹어야 나을 거 아니야. 물약도 못 먹겠다, 알약도 못 먹겠다!"


"이따 집에 가서 먹겠다고!!!!!"


그러는 사이 학교 근처에 다다르고 말았다.


"엄마가 약을 다시 받아 주겠다고 했는데 넌 싫다고 했어. 네가 알약을 먹겠다고 했으니 네 말에 책임을 져야 해. 점심때 약을 작게 잘라 줄 테니 먹어."


"알겠어.."


터덜터덜 뒤따르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앞서갔다.


"기분 풀고 가!"


아이는 그 말을 무시하고 앞서 걸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엄마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이가 뒤돌아 봤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한번 더 먹어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약국바닥에 뱉어 버려서 화가 났어.

엄마 화난 것만 생각하고 네가 먹기 힘들어하는 건 이해를 못 했어. 기분 풀고 가..."


"...

알겠어..."


아이는 뒤돌아 다시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뒤따라 오지 않는 엄마를 아이가 다시 뒤돌아 봤다.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시무룩하지만, 주머니에 손을 빼서 한번 흔들어 준다.

그제야 따라 올라가며 나도 손을 높이 들고 세차게 흔들었다.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이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해 본다.

남편이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애들한테 사과를 해.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그냥.. 학교는 기분 좋게 가라고..."


이미 상황은 지나가 버렸다.

엄마의 한마디로 아이의 기분이 좋아질 리도 없었다.

남편의 말대로 난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사과를 할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내가 아무 때나, 늘 사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 때, 사과를 하게 된다.

'엄마가 잘못했어'가 아닌 '엄마가 네 마음을 몰랐어'의 의미다.


돌이켜보면 그건 나의 부모와도 맞닿아 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사과가 필요했던 수많은 날들에도, 단 한 번도.


그래서인지

내 부모에게 받지 못한 그 한마디를, 내 아이에게는 기필코 전해주고 싶었다.

내가 아이에게 건넨 '미안해'는 오래전 상처 입은 여덟 살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먹기 힘들 테니 하교 후 집에서 천천히 먹어 보자고 내가 먼저 말해 줄 걸.

반나절 약을 늦게 먹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다행히 오늘은 방과 후 수업이 없어 1시 50분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아이에게 나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속 깊은 아이는 학교에서 내내 생각 할 것이다.

아침에 화가 난 엄마의 얼굴도, 마지막엔 건넨 사과도.


꼭 안아 주어야겠다.


백 마디 말보다

엄마의 품이 먼저 전해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