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둘째의 날

by 카인드마마

삼 남매 집에서 둘째로 태어나면, 조금 서럽다.

첫째는 다섯 살까지 외동으로 살다가 동생을 만났고, '첫째의 프리미엄'을 가졌다.

셋째는 평생을 막내라는 이름으로 '귀여움의 특혜'를 누린다.

그 사이에서 둘째의 서러움은 예고된 숙명이었다.

둘째 아이의 욕심과 짜증이 그 서러움에서 온 것인지, 원래의 기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불만족을 채워주는 날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둘째 아이는 올해로 여섯 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드디어 유치원에 간다.

졸업과 입학 사이에는 며칠의 시간이 보상처럼 주어졌다.

그 기간 중에 둘째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틀이 있었다.

그 이틀도 학교 갔다 빠르게 돌아오는 첫째 덕에 오전 시간밖에 쓸 수 없었지만 둘째와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틀은 둘째가 엄마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려 줄 찬스 같은 것이었다.


"오늘은 너의 날이야.

하고 싶은 것 다 하자!"


아이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오빠 없이, 동생 없이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자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생 때문에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슬라임을 실컷 해 보기로 했다.

슬라임카페로 오픈런을 했다.

아이는 고심 끝에 고른 슬라임을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조물조물 만지다 말고 아이의 눈이 자꾸 상품진열대로 향한다.

둘째 아이에게 또 욕망의 신이 강림했다.

슬라임에 이것저것 추가를 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명색이 오늘은 너의 날이라고 선언을 해 주었으니, 웬만한 것은 다 허락해 주기로 한다.

하지만 아이는 한 시간의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사십 분쯤 지나니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역시 엉덩이 가벼운 우리 둘째다.


아이는 슬라임카페 바로 옆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눈여겨두고 있었다.


"엄마, 아이스크림은 안 되지?


우리 집에서 아이스크림은 여름한정 메뉴다.

하지만 오늘은 너의 날이니까.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그래,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정말? 엄마 정말이야?

엄마아아~ 너무 고맙쟈나아아~"


아이가 한껏 말을 늘리며 몸을 배배 꼰다.

좋아하는 맛 두 가지를 고르고, 엄마 것까지 맛있게도 먹는다.


그다음은 쇼핑이다.

옷을 사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자꾸만 액세서리에 눈이 갔다.

얼마 전에 유아용 매니큐어를 사주었는데, 이번에는 손톱에 붙이는 스티커를 사고 싶다고 했다.

300개짜리 스티커를 고른 아이에게 바로 OK사인을 보내자 아이는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어 하더니 곧 무서운 속도로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다.

이러다 아이에게 전 재산을 다 털릴 것 같았다.

정신을 똑바로 붙잡아야 한다.

아이 손을 잡고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엄마~ 저 가방 너무 예뻐!"


반짝이는 보라색 하트모양가방이다.

어쩜 저렇게 실용성 없이 생겼을까.

단정한 크로스백이나, 백팩은 어떠냐고 보여주었지만 아이의 눈은 이미 하트가방에 가 꽂혀있다.

아이들 물건인데 비싸기도 참 비싸다.

첫째가 돌아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더 이상 돌아볼 시간도 되지 않았다.

속으로는 쿨하지 못했지만, 겉으로는 한껏 쿨하게 아이에게 가방을 선물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알지이~?"


이 꼬마 여우는 커서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될까?

지갑이 다 털려도 괜찮을 만큼 귀엽게 눈을 찡긋 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입꼬리가 춤을 춘다.


젤리 구간이다.


"엄마, 이건 안 되겠지?"


평소에 절대 사주지 않던 햄버거 젤리와 지구 젤리다.


"사~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오늘 엄마 최고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오빠와 동생에게 줄 간식도 고르고,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딸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주며 한껏 점수를 땄다.


다음날은 친구와 함께 키즈카페다.

세 시간을 꽉 채워 신나게 놀고 돌아온 아이는 피곤했는지 짜증을 냈다.

오후에는 수영을 가야 해서 아이를 잠시 재워놓고 생각에 빠졌다.


돈으로 산 우리의 시간 끝에 문득 질문이 남았다,

우리 딸이 진짜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어쩌면 아이는 엄마와 오직 둘만이 나눌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엄마와 역할놀이를 하고, 물감으로 끼적이며 그림을 그리고, 재활용으로 만들기를 해보다가 동네 놀이터에 나가 그네를 타고 잡기놀이를 하는 일상.

언제나 오빠 때문에, 동생 때문에 일상에서 엄마를 양보하고 기다려야 했을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의 이틀은 지나버렸다.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

아이에게 엄마와의 일상을 되돌려주어야겠다.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엄마를 충분히 누리게 해 주는 것.

그것은 특별히 시간을 내거나 큰 계획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품에서 책을 읽고, 오늘 그린 그림을 엄마에게 자랑하고, 아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아이가 되는 마법 같은 역할놀이 속에서 충만한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것 말이다.

그것이 어쩌면 둘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드디어 유치원에 가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버스 안에서 연신 손을 흔들고, 손키스를 보내주는 내 딸이 너무 예뻐 눈물이 날 뻔했다.


노란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지는 짧은 찰나.

나는 결심한다.


오늘부터는

아이에게 특별한 하루보다

엄마와 함께 있는 평범한 하루를 더 많이 주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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