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키울 결심

by 카인드마마

올해 3학년이 되는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3학년이 되었으니 함께 수학학원에 보내자는 내용이었다.

긴밀하게 공유된 학원 정보와 함께 건네진 선배 맘의 제안은, 거절할 명분이 없어 보일 만큼 완벽했다.

상의해 보고 연락을 다시 주기로 하고, 생각에 잠겼다.


아이는 이미 꽤 많은 사교육을 하고 있다.

태권도, 수영, 피아노, 미술.

초등 저학년답게 예체능 학원을 정석처럼 깔아놓았다.

아이는 이 루틴을 2년째 즐겁게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3학년이 되면 예체능을 줄이고 영어와 수학 학원을 세팅하는 것이 당연한 다음 스텝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교육관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이 루틴을 아이가 그만하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지지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


“혹시 지금 다니는 학원 중에 그만하고 싶은 것이 있니?”


“아니! 다 계속하고 싶어.”


“00이가 수학 학원에 같이 다니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가장 친한 친구잖아. 네 생각은 어때?”


“절대 싫어!”


아이는 가슴팍에 엑스표시를 그리듯 팔을 교차했다.

확실한 거절이었다.

이로써 더 이상 고민할 이유는 없어졌다.


마침 아이는 집에서 ‘스스로 하는 공부’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던 중이었다.

우리는 인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강 역시 아이에게 샘플강의를 보여주었고, 아이가 해보겠다고 해서 시작했다.

수학 개념 학습을 위해 시작한 인강이었지만,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아이는 수학보다 한국사와 고전에 빠져들었다.

들었던 강의를 듣고 또 들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갔다.

3학년 때 배우지도 않는 한국사에 힘을 실어가는 아이에게 수학에 조금 더 신경을 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몰입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 몰입의 경험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계산이나 암기는 이미 AI의 영역이다.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세상이다.

창작의 영역마저 빠르게 잠식해 가는, 무시무시한 시대다.


이런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과연 당장의 수학문제 풀이일까.

아이의 수학성적이 항상 아쉬운 내게, 그것은 중요한 물음이었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는 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과, 외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철학.

예측 불허한 AI시대에 그보다 더 중요한 역량이 또 있을까.


그 힘의 기초는 역사와 고전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역사는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고, 고전은 가장 현대적인 마음의 지도다.

아이가 수학보다 역사와 고전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엄마보다 훨씬 현실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이것이 성공이다, 저것이 행복이다"라고 떠들어도,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지켜낼 수 있다면,

"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되물을 수 있다면,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면,

그 무서운 세상은 오히려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와 더 넓은 무대를 내어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이의 결정을 더 존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학 점수까지 대견하길 바라는 엄마의 속내는 자꾸만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엄마를 만족시키는 수학점수보다,

자신을 더 ‘나다운 방향’으로 이끄는 진짜 공부를 선택한 아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다르게 키울 결심.

나는 여전히 아이의 수학점수에 연연하고, 때로는 불안해한다.

그럼에도 이 결심을 후회하거나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일에 대문자 엑스를 그을 수 있는 그 태도처럼,

아이가 계속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 선택 뒤에 따라오는 책임까지도 감당하며,

자신만의 멋진 삶을 만들어 가기를.


아이에게 두 손 모아 기도와 사랑을 보낸다.


오늘도 수학 문제집 정답지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믿어보기로 한다.


집집마다 그 반짝임이 지켜지기를,

모든 '다르게 키울 결심'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