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전임강사가 되다
2017년 2월 대학교 졸업 후 2개월 뒤인 4월.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영어학원 보조 강사 역할은 단순했다.
당시 재직 중이던 전임 강사 둘의 원활한 수업을 위해 전임 강사들의 학생들 교재를 제작하고, 보조 자료를 인쇄해 커팅해 놓는다던지,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해놓고, 학생들이 학원에 와서 숙제를 내면 숙제들을 채점하는 일, 그 숙제의 오답을 고쳐주고 설명해 주는 일,
마지막으로 수업 종료 후 책상 청소 및 정리까지 이 모든 걸 3시간의 근무 시간 동안 진행했다.
그러나 그 단순했던 일들을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가며 작은 일이라도 완벽하게 해내 전임 강사들을 보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한 보조 강사여도 학원에 누를 끼치는 일, 민폐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또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그 덕분에 매일 3시간만 근무를 해도, 퇴근길엔 뿌듯함을 느낄 만큼 행복했다.
그렇게 11개월을 일하고, 이사로 인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파트 강사에게도 송별회를 해줄 만큼 서로가 아쉬운 작별이었다.
그러나 인연은 이어지려는지, 이사를 간 후 재직 중이던 전임 강사 중 하나가 결혼으로 인해 퇴직을 하고 원장님은 채용을 고민하고 있었다.
원장님은 신규 강사를 채용하기보다는 '믿고 맡길 수 있는 강사'를 채용하고 싶었고, 보조강사여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을 놓칠 수 없어 멀리 살고 있음에도 부득이하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주셨다.
전임 강사 채용을 제안하시고 얼마간의 고민 후 수락해, 곧바로 점심 약속을 잡고 식사를 마친 후, 학원으로 이동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때 당시의 월급은 최저임금에서 조금 높은 월급이었는데, 25살의 신규 강사인 나에게는 '나의 가치'가 인정받는 순간이어서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한 월급이었다. '여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해서 연봉을 올려가야겠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2018년 9월에 전임 강사로 채용된 이후로 1시 30분에 출근해 9시까지 근무를 했다.
전임강사의 업무는 생각보다 많았다. 단순히 보조만 하면 됐던 보조 강사의 업무와 달리, 초등부부터 중등부까지 모든 학생들의 출결 관리, 교재 관리
성적표 관리, 학부모님들과의 소통, 월별 행사, 월말 평가, 보충 수업, 중학교 내신 대비, 핼러윈 파티 등등 업무가 굉장히 많았다.
그 와중에 파트타임 보조 강사분이 채용되면 보조 강사 교육까지 하고, 원내 시스템을 학원의 사정에 맞게 바꾸고 변경하고 기획하는 일들을 담당했다.
업무는 많았지만 나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메모하고 또 메모하고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어느 하나도 놓쳐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내 사전에 실수란 용납이 되질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말들도 모두 기록해둬서 원장님이 기억이 나지 않을
사소한 정보와 데이터도 그때그때 알려드리고,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내 자랑이 아니라, 정말 내 능력을, 내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나를 채용해 월급을 준다면, '받는 만큼 열심히 해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노력을 기울였다고.
출퇴근도 쉽지는 않았다. 보조 강사 시절에는 집 근처이기 여서 도보로 15분이면 출근이었지만, 이사를 하고서는
환승을 하고 버스를 타야 하니 12시 30분에 출근, 퇴근 시에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서 환승하고 집에 도착하면 10시였으니, 생활 패턴은 망가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회초년생에게 그런 것은 견뎌야 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이라면 다들 해내는 일이니까. 그래서 스스로 발전을 위해 정말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2018년 9월부터 열심히 근무했고, 모두가 열심히 한 덕분에 2019년 학원은 확장 이전을 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2월, 대망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학원계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