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난 중학교에 올라가 말이 더 없어졌고, 친구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걱정을 뒤로하고 친구는 생겼다.
나와 친한 가영이는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그 남자아이는 빛났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며 툭툭 챙겨주는 모습에 아마 그 친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을 거 같다.
물론 나도 그 아이를 좋아했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좋아하기에 사실 나도 좋아한다고 어쩌면 너보다 더 먼저 좋아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소심한 나에게 남자애들은 말을 잘 안 걸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늘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고 안경을 바꾸거나 머리 스타일을 바꿔도 늘 먼저 알아주었다. 사소했지만 그게 너무나도 설레었던 거 같다. 순수한 설렘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듯.
몰래 그 아이를 훔쳐보았었다.
책상 위에 놓인 탁상 거울로 그 아이를 훔쳐보기도 했고 그 아이가 움직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을 주었다. 다른 걸 바라지는 않았다. 단지 그 시절 나는 그 마음을 혹여나 들킬까 걱정했던 거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아이는 내 앞에 털썩 앉아서 말을 걸었고 지나가면서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런 작은 행동이 작아졌던 나의 마음을 조금은 크게 만들어준 거 같다. 물론 그 아이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평범하고 말 수없고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그 아이가 나에게 하는 건 단순 장난과 친구로서 용기정도 주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누구라도 그럴 거라 생각했고 자신감 없던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1년이 지나 학년이 올라가기 전 우리 반은 롤링페이퍼를 적었다. 친구들의 잘하는 점과 칭찬을 적는 거였다. 당시 나의 별명이 있었다. 낙이(별명)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낙이(별명)는 피아노를 잘 친다.'가 전부였다. 아쉬웠지만 별명을 써준 거에 만족했었다.
_아 뭐야!
가영이가 소리를 쳤다.
_무슨 일이야?
나는 다가갔다.
그 남자아이가 가영이에게 쓴 글 때문이었다. 분명 그 롤링페이퍼는 친구의 칭찬을 적는 거였다.
'낙이(성 빼고 실명)랑 친해서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너무 떨려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친구가 좋아하는 걸 알기에 티를 내지 않았다. 터벅터벅 가영이는 종이를 들고 남자아이에게 갔다.
_다시 써. 이거 내 이야기가 아니잖아.
_그래, 줘봐.
남자아이는 다시 종이에 써서 가영이에게 줬다. 가지고 간 가영이는 다시 그 글을 보고 아무 말 없이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 뒤로 가영이는 그 남자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그 친구가 보여준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낙이랑 친해서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정말"
학년이 올라 그 아이와는 다른 반이 되었다. 자연스레 멀어졌고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다른 여자 친구가 생겼다나?
용기가 없었고 그 시절 나는 감정을 숨겨야 된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거 같다.
그때 그 아이는 왜 그렇게 종이에 적었던 걸까? 내 종이도 아닌 내 친구의 종이에. 만약 친구가 그걸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난 평생 그런 글을 쓴지도 몰랐을거다.
3년, 그 아이를 짝사랑 한 시간이 3년이다. 졸업을 하고 다른 학교로 나뉘면서 소식조차 듣지 못했지만 성인인 지금도 나는 그 아이를 기억한다.
그 시절 그대로의 키가 나보다 조금 작고 까무잡잡했고 눈은 작았지만 웃을 때는 반달이 되는 그 아이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길 다시 찾아보고 연락하면 만날 수 있지 않아?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르다. 이미 시간은 너무나도 흘렀고 흘러간 그 시간은 추억으로 남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낙이의 소중한 감정을 간직하는 것처럼 말이다. 첫 설렘, 첫 짝사랑, 첫사랑으로만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아니다. 상처가 많고 모든 게 어려운 그 시절 낙이에게 따뜻함을 주었기에 기억에 남아있는 거다.
글에 사용된 이름들은 모두 가명입니다.
•실제 그때 그 롤링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