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어릴 적 내 기억 속에는 온통 피아노 소리로 가득했다.
피아노 원장님인 엄마의 영향으로 나는 자라오면서 들었던 첫 음악 소리는 피아노 일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라서 그런가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거 같다. 초등학교 하교를 하면 어김없이 학교 앞 피아노 학원에 달려 들어가 가방은 던져 곧장 놀이터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처음 보는 아이들은 다 내 친구가 되었다.
"안녕? 나는 낙이야."
라고 하는 단순한 인사도 없이 우리는 그냥 모두가 원래 친구였던 마냥 놀았다. 계속 뛰어놀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던 적던 상관없었던 어린 날의 우리 모두는 자유로웠고 자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맞다. 나는 그런 자유를 느끼며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 당연히 저 아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겠지만 오산이다.
그 아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표정이 없어졌다.
내가 혼자라고 확신한 순간은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나와 유일하게 친구였던 유희는 컴퓨터실에서 편지지 한통은 자랑했다.
"이거 봐! 은비가 생일 초대장 준거 너무 귀엽지 않아?"
"초대장? 무슨 초대장?"
"은비가 반 애들한테 초대장 돌렸잖아! 너 안 받았어?"
은비는 우리 반에서 밝고 인기 많은 아이였다. 웃는 모습이 예쁜.
어린 날의 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그 생일 파티에 초대 됐다고 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나의 행동이 어디 부족했었나? 내가 말실수를 했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가서 차가운 바닥에 누워 펑펑 울었다.
지칠 정도로 펑펑 울었다. 그 차가운 바닥이 더욱 나를 서럽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뒤에서 나를 안아주셨다. 시간이 지나도 나는 그 따스한 엄마 품이 기억이 난다.
한참 지나 대충 이유를 알았다. 내가 소심하고 말이 없어 음침하다는 이유였다.
아, 사람은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아도 미움을 받을 수 있구나.라고 그때 처음 깨달았다.
모두 나와는 대화를 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그 무렵 빼빼로 데이는 나에게는 최악의 기념일이라 할 수 있었다. 빼빼로 데이가 너무 싫었다. 왜 그런 걸 챙기는 걸까.라는 생각에 머리는 복잡하고 불안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전날 엄마와 같이 마트에 가서 빼빼로 3개를 구매했다.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감을 안고.
다음 날 간 학교에서는 내가 더 작아지는 계기가 됐다. 가방 안에 있는 빼빼로 3 박스를 본 반 친구가 큰소리로 말했다.
"너 3개나 받았네? 많이 받았다! 부러워!"
순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너네를 주려고 가지고 온 거라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빼빼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을 했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엄청난 거짓말이었다.
"응, 맞아! 너는 많이 받았어?"
라는 어색한 말로 반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어떻게 말을 했어야 맞는 거였을까. 당시 너무 소심하고 기죽어있던 나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
도로 가지고 간 그 빼빼로는 거짓말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나는 먹을 수 없었다.
다른 반 친구에게 던지듯 나는 많다고 주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작고 소심해진 나는 더더욱 세상이 무섭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던 거 같다. 하교한 뒤 가방을 던져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그 아이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내가 말이 없어질 때쯤, 엄마는 나의 학교 생활을 물어보지 않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못났다. 그 아이는 참 못났다. 못나서 미안하다 더 아껴주지 못해 미안했다.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