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특권이었던 평범한 나의 일상
“혹시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교단에서 피를 토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줘요.”
쓸데없이 비장한 목소리에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기꺼이 주먹을 꽉 쥔 채, 리듬감 있게 고개를 끄덕여 주신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수업이 빼곡히 채워진 금요일이다. 아이들 앞에서 원맨쇼를 하는 경우가 많은 특수학교 수업의 특성상, 40분 내내 혼자 말을 이어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4교시쯤 되면, 노래방에서 되지도 않는 노래를 세 곡 연달아 부른 것처럼 목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힘내자, 이번 주까지만.’
다행인 점은 생활부장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수업을 나눠 맡을 시간강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시간강사 P선생님과 수업을 조금 나누게 된다. 첫 통화부터 걱정이 많던 P선생님.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요. 현장 경험이 전혀 없어요.”
학교 경험이 없다는 게 죄도 아닌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시던 선생님. 어쨌든 채용 절차에 지원하셨기에 일정을 잡고, 면접위원으로 모신 두 분의 선생님과 함께 P선생님 앞에 앉았다.
첫 번째 질문.
“앞으로 국어 수업을 맡게 되실 텐데, 첫 주에는 어떤 내용을 지도하실 건가요?”
“……”
아랫입술을 가만히 문 채, P선생님은 한참 뜸을 들이신다. 쉽사리 열리지 않는 입에 면접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 흐른다.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다른 선생님들을 더 붙잡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이미 다음 질문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손끝에 적힌 질문을 읽으려던 찰나. 긴 심호흡과 함께 P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여신다.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사하기, 대답하기, 감사 표현하기 같은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내용을 지도하겠습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과 소통의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아서요.”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커닝하듯 시선을 위로 향하기도 했지만, 자기만의 소신을 담담하게 풀어내신다. 이어진 질문들에도 과하지 않지만 분명한 의도를 담아 자신의 생각을 전하신다.
마지막으로 면접위원들의 개별 질문 시간.
“적지 않은 나이인데, 새로운 도전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말 못 할 감정의 상자를 여는 열쇠 같은 질문이었을까.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며,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으신다. 이곳저곳 원서를 넣어 보았지만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는 이야기. 순수하게 학교 현장을 알고 싶고,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유급 자원봉사까지 지원했지만 그것마저도 탈락해 큰 좌절을 겪으셨다는 이야기.
말을 이어가던 선생님의 눈가에 투명한 이슬이 맺힌다.
“그냥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 이슬처럼 맑은 한마디에, 나와 면접위원들은 어느새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차, 지금 면접 중이지!’
퍼뜩 정신을 차린 우리는 박수를 멈추고, 응원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평가지를 작성했다. 그렇게 P선생님은 다음 주 첫 출근을 앞두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합격 소식을 들은 선생님의 목소리는 불안과 감격 사이, 그 어딘가에서 단단하게 걸어 나오는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반복되어 때로는 힘들고 지겹게 느껴지는 일상 수업.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간절했던 교단에서의 첫출발.
그래서일까.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여섯 시간의 수업이, 오늘만큼은 유독 특권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