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이문세는 나의 20대 대학시절 정말 유명했던 가수다.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에는 남다른 품격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노래는 명품가요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게다가 이문세의 노래는 나의 대학시절의 많은 추억이 묻어 있어 나에게는 그냥 노래가 아니다.
20대의 절망과 슬픔과 사랑과 열정의 모든 감정이 묻어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실은 혼란스럽다. 아련히 떠오르는 옛날 내 절망의 모습에 몸서리칠 때도 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던 20대의 열정이 아쉬워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혼란의 모습은 아직도 중년에 접어든 내게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노래와 이 가수에 이토록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일인데, 어느 가을날에 이문세 콘서트에 다녀왔다. 거기에 갔던 것은 내 안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거기에 가면 젊은 내가 있을 것이고,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상처 받은 20대의 나를 다시 만나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지하철로 콘서트장에 다다랐을 때,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벌써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여드는 40대 아줌마들 때문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10대 20대 청년 틈에 내가 서 있을 것이라 상상했었는데, 그 10대들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었던 것이다.
“어쩜, 이렇게 다 아줌마들이니...”
“너도 아줌마야!”
같이 간 친구의 날카로운 지적에 소름이 끼친다.
‘내가 그렇구나....’
‘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 이문세를 만날 수 있을까?’ 괜히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 이문세도 아이돌 스타가 더 이상 아니었다. 멀리서 보았지만 살이 좀 쪘고,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다. 그의 노래는 여전했으나 훨씬 원숙한 남성미가 더해졌고, 세련된 멋이 느껴지는 그때와는 맛이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슬픈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신나는 노래에 펄펄 뛰었다. 비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쇼생크 탈출의 시궁창에서 탈출하고 나서의 장면처럼) 마지막 엔딩 장면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비에 젖은 남자 가수와 음악은 환상적이다.
“어떻게 저렇게 멋있니.”
“그럼, 남편보다 훨씬 낫지.”
친구의 맛깔스러운 리엑션은 나를 현실에 발붙이게 도와주었다.
신나게 놀고 왔는데, 허전하다. 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젊은 날의 나는 없었다. 난 아줌마로서 아저씨 이문세에 감동받고 돌아왔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월 흘러 모든 것이 변했다.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운 경험을 했을 뿐이다. 정말 허전하다. 분명 불쌍한 나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 나는 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었다. 아니다. 지금은 그 내가 내 마음속에 조차 없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었는지 모른다. 그 어디에도 없는 그 나를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의식하면서 살아온 것일까? 그 젊은 내가 내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다른 질문이 더 많아진 요즘이다.
지난 20년간 내 젊은 나는 나를 많이 괴롭혔다. 처음에는 그 나를 만나지 않으려고 그의 흔적을 피해 다녔다. 졸업 후 처음으로 대학을 방문하던 때의 그 떨림과 두려움이 생각난다. 내 젊은 나를 대면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 당당하게 대면하려 하는 이 순간 그는 사라지고 없다.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이제 그는 나를 어찌하지 못할 것 같다.
이문세 콘서트는 현재의 나의 모습으로 현재의 이문세를 만나 20대의 나에게 현실을 가르쳐주었다.
‘넌 지나갔어.’
한편 이렇게 젊은 나를 떠나보내는 허전함과 더 건강하게 살아오지 못함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그러나 오늘 이문세의 프로그램을 들으며 그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설렘이 있다. 또한 이문세보다 비주얼은 떨어지지만 늘 내 곁에 있는 남편이 기쁘다.(울 남편은 내가 성장할 때마다 겪는 진통으로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어 더욱 고맙다.^^)
이제 진정한 이문세 팬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