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Review #Horror Movie #Ari Aster
"당신의 과거, 고통, 꿈 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되었습니다. 하지 축제(Midsommar)에 들어선 순간부터."
감독 : 아리 애스터 (Ari Aster)
개봉 : 2019.7.11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장르 : 공포, 스릴러
국가 : 미국, 스웨덴
러닝타임 : 147분
다들 안녕하신가? 모두들의 삶이 매우 바쁘고 힘들겠지만, 때때로 2~3시간 씩은 본인만의 루틴과 휴식으로 숨 좀 돌리시며 사시길 바란다. 필자의 휴식인 영화 감상 및 리뷰의 특징은 순전히 일반인인 나의 시선에서 느끼고, 고민한 관념적이며 모호하며 비전문적인 지점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미 온라인 상에 충분히 존재하는 스토리 요약 리뷰들과는 가려는 길이 다르고 퀄리티는 낮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우리 서로 지나쳐가는 사이이지만, 마음의 거리가 조금은 좁혀진 상태에서, 편하게 이 여담을 읽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굳이 존대를 하지 않는 점은 양해 부탁한다.)
필자는 공포 영화를 꼭 늦은 밤~새벽 시간에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신도 그러한가? 영화를 보기 전, 자신의 마음가짐과 환경을 영화의 코드와 일치시킬 수 있다면 더욱 높은 몰입감을 가지고 영화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생이 부쩍 힘겨울 때는 인물 영화를, 여가 시간 중 지루함에 못 견디고 있을 때에는 킬링 타임용 액션 영화를, 좀비물이나 공포물은 으스스한 밤 시간대를 선택해서 보고 있다. 각설하고, 하기에 영화 리뷰 전 알면 좋을 정보 3가지를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리뷰만 훑고 싶은 사람들은 #1로 바로 넘어가시면 되겠다.
*물론 이 글이 스포일러 범벅인 점은 꼭 주의하도록 하자.
*아리애스터 (Ari Aster) : 2008년 단편 영화이자 첫 연출작인 <Herman's Cure-All Tonic>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아리 애스터 감독은 유전(2018)으로 해외 및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가 개봉하기도 했다.
**예전에 아리애스터 감독의 '유전'을 지나가듯이 봤던 기억이 있다. 사실 유전은 연출적인 측면에서 나에게 불쾌하고 참신했지만, 무섭지는 않은 영화였다. 두 편을 모두 본 지금, '가족'에 대한 감독만의 생각, 고통, 가치관, 해결 방향 등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기본적으로 두 영화는 공포 영화로 분류 되지만, 그 밑바탕에는 가족과 사랑의 고통과 상실 그리고 회복에 대한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느낀다. (여기서의 회복이 밝고 긍정적인 회복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포크 호러(Folk Horror, 민속 공포) : 장르를 나누는 기준으로는 유령이나 연쇄 살인마 같은 기존 장르의 소재가 아닌, 포크(민속, 전통)에 걸맞게 민속과 지역 전통문화를 광신적으로 믿는 외부와 단절된 컬트적인 집단이 등장하여 집단 광기로 극을 이끌어가는 특징이 있다. 주로 고대 인류사에 존재했던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이교도적인 종교가 중심이 되며,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이 희생의 제물이 된다. 영화계에서 대표작으로는 위커맨(영화)이 있다. 닫힌 사회의 속성도 자주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컨셉은 포크 호러 장르를 취하고 있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헬싱글란드)에 위치한 작은 마을 공동체의 축제에 방문한 주인공 일행 광신 문화에 접촉하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의 믿음과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닫힌 사회(Closed Society) : 주로 소수의 인구로 이루어진 작은 지역 또는 공동체를 가리키며, 외부세계와의 교류가 제한되거나 매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통된 가치, 문화, 혹은 신념이 강조되고 공동체에 대한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된다.
**미드소마는 스웨덴의 '호르가'라는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호르가'는 철저하게 '닫힌 사회'이다. 정확하게는 여러 종교가 혼합된 듯한 정체 불명의 종교 의식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작고 폐쇄적인 공동체이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 소수 지역 공동체의 실제 예시로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닫힌 사회 속에서 유지되는 소수 공동체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미국의 아미쉬(amish) 공동체가 있다. 아메리칸 아미쉬는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생활하는 기독교 공동체로, 현대 기술과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제한하며 고유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복장, 농업 중심의 경제 체계, 그리고 자체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외부와의 교류를 최소화하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실제 사례라서 가져와 봤다.
처음부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하면, 아무래도 첫 포스팅이라 힘이 잔뜩 들어갔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상실과 고독
영화 초반부는 본 내용과 별개로 암울하기 그지 없다. 주인공 대니에게는 조울증에 걸린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으로부터 온 의미심장한 메시지에 대니가 불안한 나날을 보낸 지 벌써 며칠이 지난 상황이다. 이후 내용을 보면 소시오패스적 기질이 다분하다고 느껴지는 대니의 남자친구 크리스찬은 이미 그녀에게서 마음이 떠난 지 오래인 것 같다. 단순히 본인의 관성을 벗어나기 싫어서(혹은 용기가 없어서)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술자리에서 여자친구랑은 헤어지고 스웨덴으로 섹스 클럽 투어를 가자는 친구(마크) 얘기에 희희덕 거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 대니의 여동생 테리가 본인의 입에 자동차 배기관을 호스로 연결해 가스 중독으로 자살하였고, 호스를 부모 방에도 연결하여 대니의 부모님도 한밤중에 중독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대니가 통곡하는 장면으로 다소(?) 충격적인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앞서 감독의 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느껴진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니의 주변 관계는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대니의 가족들조차 그녀의 의지, 바람과는 상관 없이 순식간에 그녀를 떠나갔다. 마치 세상이 대니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 1위'에 선정한 듯 하다.
대니와 크리스찬의 연인 관계를 보자면, 대니는 크리스찬을 붙잡기 위해 본인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말다툼을 하고 나면 대화로 풀고 합의점을 도출하고 싶어하지만, 문제를 회피하는 남자친구에게 항상 져 주는 탓에 좀처럼 둘의 관계는 행복해지기 어려워 보인다. 올바른 연애관에 대한 고찰을 하는 세션은 아니므로 연애관에 있어서는 넘어가겠다. 다만, 영화 초반부의 기본 셋업으로 깔리는 대니의 상황은 극단적이고, 무지하게 고독해져버린 상황이다. (필자는 연인 관계를 단순 갑을 관계로 정의하는 것을 싫어한다. 기본적으로 사랑은 연인 둘 모두를 '약자'로 만드는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
*감독이 보는 타자성
영화에서 그녀의 가족 관계는 타자성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극단적으로, '자살과 질식'이라는 방식으로 강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랑의 대상은, 그 대상이 가족일지라도, '나'를 벗어나있기 때문에, 지배하고 파악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대니는 심리학과에 재직 중인 것과 별개로 여러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본인의 심리를 조절하기 힘들어하고 안정제와 같은 알약을 복용하고 있다. 자신의 사랑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대니는 오히려, 강제로 그 마음가짐으로부터 독립 당하게 된다. 그 마음가짐이 영화에서는 가볍게는 알약과 연인과의 전화로 표현되지만, 극단적으로는 자살이자 질식과 같은 연출로 은유되고 있다.
아리 애스터의 영화들에서 사랑과 타자는 별개의 것이지만, 그 둘이 결합된 순간 근본적인 불평등과 비대칭은 따라올 수 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연인 관계, 교우 관계, 가족 관계에서 모두 적용되는 원리이다. 그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당연하고 근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돋보이는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불합리한 사랑을 끊어내지 못하고 지속하고 있는 주인공과 남자친구에 대한 비웃음이 영화 내내 그 둘을 쫓아다닌다. 문득, 내 주변에서도, 실제 세상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비교적 흔한 것 같다고 되돌아 보았을 때, 나는 그 비웃음에 정면으로 도전받게 된다.
확실히, '호르가'의 배경 설정에 들어간 노력이 영화 내내 느껴질 정도로, 구체적이며 사실적이고 애매(?)하다. 애매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마을 내 벌어지는 '희생(자살)', '살인', '의식' 등과 관련되어 있기에 이 단락 끝부분에 서술하겠다.
*호르가의 독특한 윤회 사상
크리스찬의 친구이자, (타살)여행을 주최한 호르가 마을 출신인 펠레는 호르가의 철학인 인생의 순환기에 대해 설명해준다.
호르가에서는 인간의 삶을 총 72년에 걸친 4계절에 빗대어 정의내리고 있다. 탄생 후, 18년을 주기로 성장하는 시기(봄), 탐험하는 시기(여름), 일하는 시기(가을), 그리고 인수인계(?)하는 시기(겨울)라고 설명하며 같은 주기에 있는 구성원들끼리 한 숙소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펠레는 탐험하는 시기(여름)에 속해서, 자유롭게 유학도 다니고, 대마도 피고, 남의 여친에게 집적대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대니에게 7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질문을 받자, 펠레는 그녀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이 때, 화면 밖에서 필자는, 호르가 내 73세의 인간은 없겠구나 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나마 지식인이라고 믿었던 펠레가 음 이 문화는 이런이런 문화들의 영향을 받았군 하면서 감독의 참을 수 없는 설명욕을 대변해주는데, 사실 앞에서 말한 문화들도 생소한 문화들이어서 굳이 필요 없는 장면인 것 같았다.
이 문화의 흥미로웠던 점은, 겨울의 계절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도 명확한 삶의 목표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을을 알차게 보낸 후 겨울을 맞이한 동물들은 다음 한 해를 대비하며, 웅크리기 마련이나 호르가의 노인들은 마지막 계절인 만큼 근엄하고 열성을 다해 호르가 마을의 정신을 일정하게 유지보수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만27세)에게 펠레가 아직 탐험하는 시기라고 위로해주니, 조금 더 삶의 용기를 얻 나도 대마는 안 하겠지만, 조금 더 공부하러 돌아다니고, 여행도 가끔씩 다니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보겠다.
*타문화 수용 어디까지 되는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꽤 사실적이면서도, 기이한 자살 의식 이벤트가 있다. 축제 첫 날, 수저를 들기 전 괴상한 소리를 내던 두 노인이 다음 날 줄 없이 번지점프(*에테스투파)를 해버린 것이다. 자살 의식 속 사실적인 묘사가 징그럽기도 하고, 기이하기도했다.
이는 그들의 윤회 사상과 관련된 중요 이벤트로 자살한 사람들의 이름과 영혼이 다음 태어날 마을의 아이들에게 전승되어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마약도 쉽게쉽게 하던데, 왜 자살은 번지점프로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참신한 문화를 접하러 온 두 청년 그룹은 각자의 방식으로 의문과 불만을 표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은 우리 '호르가'의 전통이자 문화이자 종교의식으로 신성한 것이니 양해해달라는 대답이었다. 해명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진짜 진짜 너무나 억울한 사람들의 표정이어서 필자도 순간, "음 이 정도까지는 문화적 다양성의 범주 내라고 이해해줘야 하나?"라고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이 고민이 불필요해진 순간은 금방 다가왔다.
중반부, 조연들을 항한 무차별 살인이 나에게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느껴져서 아쉬웠다. 예를 들면, 무리 중 그나마 지식인인줄 알았던 펠레가 저작물 불법 복제를 단행하다 퍽치기를 당하는 장면이 아쉬웠는데, 주인공들처럼 그 마을의 문화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포석을 깔고 문화적으로(?) 죽였으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이다. (조연들을 죽인 이유를 후반부에 보여주는데, 그 이유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이런 무차별 살인 덕에 나는 "음, 역시 이 마을은 미친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들로 이루어져 있군. 이해해줄 필요가 없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생각이 빠르게 떠오르며 수용에 대한 애매한 내 태도가 빨리 깨져버린 것이 아쉬웠다. 영화 내내 이 타문화 수용에 대한 '애매한' 선이 아슬아슬하게 지켜졌더라면, 청자들은 내면의 양심과 이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조연들을 제외한 주인공들이 의식에 참여당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사이렌과 울부짖음의 차이점
영화 초반, 대니 가족의 참사가 경찰들에게 발견된 시점에 스산하고 느리게 울리던 사이렌 소리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시점에서 대니는 혼자가 되며, 그녀를 이해해줄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게 된다. (인생은 원래 혼자라지만)
반면에, 마을에서 대니가 남자친구의 외도를 목격한 직후 흐느끼던 곡소리에 맞춰 마을의 여인들이 다같이 울부짖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성스럽고 따뜻하다. 그녀들의 곡소리는 사이렌처럼 단순한 강약이 반복되지만, 합창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대니가 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접하면서 (그녀가 원하지 않았더래도)그간의 외로움을 위로 받고,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일부분을 열게되는 것이 아닐까. 비슷하고 단순한 두 소리의 연출로 이야기의 전,후를 표현한 탁월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사이렌과 크리스찬의 외도 장면 속 흘러나오는 단체 신음 소리는 대니를 점점 더 외비록, 톨이로 만들고, 호르가의 축제는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를 공동체 속으로 흡수한다.
*밝은 자연물과 의식의 조화
보통 떠올리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의식은 그 자체로 어둡고,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다. 공포 술래잡기 게임 '데드바이데드라이트'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잡아다가 갈고리에 걸어버릴 것 같은 이미지다. 결론은 다를 바 없었으나, 미드소마의 공포는 밝음의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터널, 밀실, 집 안 등에서 전개되는 공포물과는 정반대의 배경에서 공포가 생성되고 있다는 점이 잘 알려진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또한 자연친화적인 배경 속에 진행되는 것도 주인공과 관객들이 축제에 몰입하게끔 하는 것에 일조한다. 화관과 하얗고 깨끗한 복장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단체 식사와 춤과 음악들이 어우러져 주인공을 강제로 세뇌시킨다. 이것은 단지 전통일 뿐, 끔찍한 살육의 현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러 사건들을 지나, 5월의 여왕을 뽑는 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대니가 자연스럽게 마을에 동화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사이비 의식에 대한 선입견과 반대되는 여러 장치들이 대니의 정신을 점점 더 혼란스럽게,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가고, 그녀가 크리스찬을 최후의 제물 9명 중 마지막 1명으로 선정하게끔 유도하면서 그녀가 마을에 반강제적으로 포섭되가는 설계가 돋보인다.
*그녀의 마지막 미소에 대한 2가지 해석 :
1) 드디어 외로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호르가 마을의 일원으로써 재탄생한 것에 대한 기쁨과 광기의 미소
2) 자신이 이미 호르가 마을에 깊숙히 관여되어 빠져나갈 수 없게되었음을 깨달은 후 자조적이고 허탈한 미소
어찌되었든, 그녀의 외로웠던 일련의 과거는 더 이상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강제적으로 치료를 한 것은 감독의 의도였을까?
첫 글을 쓰는 시간이 미드소마의 긴 러닝타임보다 길었다. 5일에 걸쳐 나눠서 쓰고, 다시 읽어보고 다른 자료들도 찾아보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최근 영화 리뷰들은 스포일러가 포함된 스토리를 사실적으로 짚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듯해서 필자는 최대한 관람객 입장에서 경험적인 리뷰를 써보고 싶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지도 않고, 평범한 관점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적인 해석 리뷰보다는 다른 독자들도 가볍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했다. 공감과 반론의 여지를 활짝 열어두고 앞으로도 필자가 재밌게 본 책이나 영화 리뷰를 주 1회 리뷰하는 것이 목표이다.
아무래도, 이런 방식과 분량으로 연재하기에는 주 1회라는 기한을 도저히 지키기 어려울 듯 하여, 다음 편부터는 보다 가볍게, 짧고 핵심 위주로 글을 쓸 계획이다.
미드소마를 흥미진진하게 보며 이전에 개인적으로 취향이 맞지 않았던 유전도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서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리뷰는 책 리뷰를 써보려고한다. 리뷰를 빙자한 본인에게 하는 독서 강요이다. 요즘 삶이 빠듯하다. 나 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의 삶도 그러하다.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런 소소하고 창조적인 글쓰기의 행위로 본인을 조금이나마 위로해보고자 한다. 혹시 이런 넋두리까지 꼼꼼하게 읽어주신 독자가 있다면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