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취미 생활, 책
당장 읽지 않을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거울수 있다면 그것 나름데로
꽤 괜찮은 취미생활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취미를 가져야겠다 마음 먹은건 아니지만..
책 자체를 좋아하다보면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의미보다 어느 순간
책이 그득한 서점을 산책하듯 어슬렁대고, 책을 고르고, 그것을 내 공간에 두는 일까지의
일련의 행위를 하나의 취미처럼 여길수 있게 되는것 같다.
다른 취미나 소비생활에 비한다면 책 몇권 정도는 비교적
사치스러운 일도 아니고, 적절히 관리만 한다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서점 가는 것만으로도 뭔가 지적인 문화생활을 하는 느낌도 들고..
시간과 돈의 가성비로 치자면 그만한 취미생활도 잘 없을테니까.
외부 일정 보다가 딱히 시간 떼울 장소가 없을때도 서점은 좋은 장소다.
책이 가득한 서점에 일단 들어오면 책을 즐기는 사람이든 아니든 매대에 놓인 책을 들춰보게 된다.
그런식으로 예정에 없던 책을 사들이고,
더러는 딱히 사려는 책이 없는데도 산책삼아 큰 서점을 가서 배회하는 짓을
꽤 오랜 시간 하다보니 사놓고 안보는 책이 한권 두권 쌓이다가 마침내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일종의 개인적 취향이 되었다.
당장 읽지 않을 책이므로 곧바로 읽어야할 부담이 없다.
그때그때 기분 따라 조금 엉뚱한 장르나 평소라면 관심없을 분야의 책을 고르기도 한다.
때로는 책 보다 책을 쓴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예전에 사서 읽지 않고 책장 어딘가에 있는 책을 또 사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줄치며 두세번 읽었던 책을 또 사는 경우도 있다. 깨끗한 책으로 다시 읽고 싶어서.
이렇게 책을 몇권 사들고 집에 오면, 다음 할 일은 적당한 자리에 책을 꽂는것인데..
서점 산책으로 충분히 지쳐있다면 아무데나 꽂아놓고 며칠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마침 체력도 남아있는데 새 책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으면 당장 읽지 않을 새책들이
놓일 적당한 자리를 만드느라 책장의 일부, 혹은 전체를 뒤집기도 한다.
납득할만한 자리, 어울릴만한 책 주변에 꽂혀야 뭔가 만족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상 못한 재미 또 하나가 있는데,
새책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존 책의 위치를 바꾸고 정리 하다가
예전에 사놓고 안읽은 책들, 이미 읽었던 책들을 들춰보게 되는 것이다.
아 이 책이 있었지.. 반가운 마음에 조금 읽어보다가 어 재밌겠는걸,
하며 읽게 되기도하고 이미 읽은 책은 줄 쳐진부분, 접혀진 페이지를 읽어보며
과거의 내가 체크해놓은 인사이트를 만나기도 한다.
좌우지간 그렇게 새 책 몇권이 우여곡절 끝에 내게 와서
둥지를 트고나면 한두발 떨어져 새책과 그 주변의 책들을
조금 넓게 조망하며 혼자 흐뭇해한다.
서점의 매대로부터 내 손에 이끌려 내 집의 책장으로
이주한 존재들과 나와의 인연, 그 사이의 애틋함을 헤아리며.
한달후일지 몇년후일지 모를 책읽기의 날을 상상해보면서.
.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모여든 책들은
왠지 물건처럼 느껴지지 않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잠깐 스쳐지났던,
언젠가 다시 만나 아 우리가 한번 본적이 있던가요?
하며 얘기를 시작할지 모를 어떤 인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