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냥 따뜻할 거 같지만, 칼날 같은 추위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관계-
이제, 2025년 3월
오늘 점심 산책은 '봄'을 만끽하기 위해 회사 앞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안에는 따스한 바람이 불었고 , 나무 꽃들이 본인들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춥고 긴 밤이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과 다정한 바람이 부는 봄이 왔다.
봄이 오면 파견 근무 때가 생각난다.
5년 전,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사무소로 파견되었다. 근무지가 집 앞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나에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업무는 물론이고 본청에서 잘 해내지 못했던 육아도 잘 해내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도 너무 좋았고, 업무의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만족
도가 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슨 회사의 법칙처럼 업무의 난도가 높지 않으면 사람들은 본인의 에너지를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쏟아낸다. 옆 동료의 사생활, 앞 직원이 무심하게 던진 말의 의미 등등 본인들의 소중한 시간과 관심이 타인을 향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일의 난도가 높지 않으니, 그 동료들의 관계에 집중했던 거 같다.
동료들에게 '난 사회생활도 잘하는 직원이야' , 지금 생각하며 무던히 쓸데없는 곳에 애를 썼다.
아침에 아이가 없는 동료들끼리 커피 타임을 가지는데, 그 모임에 끼고 싶어서
아이를 좀 더 일찍 유치원에 보내고, 그들과 탕비실에 앉아 상사부터 거래처 사람들까지 험담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런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고 나면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선물로 받는 거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았다. 쏟는 마음만큼이나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회사생활이
따뜻한 봄날 같았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에 깁스하게 되었다. 허벅지까지 오는 통깁스하고 한 달을 집에 누워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친동생 친언니처럼 걱정해 주었다. 그때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한 달이 되어가면서 점점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일을 대신해주고 있을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목발을 짚고 회사에 출근하였다.
다시 돌아온 첫날
나만 느끼는 기운이었지만, 미묘하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정확한 이유를 몰랐지만 그래도 나에게 따뜻한 선배 후배가 있어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선후배가 하는 내 험담을 듣기 전까진,
그들의험담 내용은 내가 쉰 한 달 동안 일을 나눠가져 본인들이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해맑게 출근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믿었던 봄날 같은 선배도 후배 그곳엔 없었다.
따스한 봄 같았던 관계에서
일 또는 이익으로 묶인 사이는 늘 꽃샘추위가 도사리고 있다
그 칼날 같은 추위가 내 등 뒤에 서있을지 모른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