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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에밀리 부틀

by 채수빈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즈피드(Buzzfeed)가 한 때 폭풍성장했던 비결 중 하나는, 남들과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심리테스트'에 있었다. '나와 닮은 해리포터 캐릭터는?' '나를 상징하는 단어 1개는?' 버즈피드에서는 이런 오락용 심리테스트를 마음껏 해볼 수도 있고, 직접 설계할 수도 있다.



나 역시 한 때 버즈피드의 심리테스트에 엄청 중독되었던 적이 있다. 이 얼토당토않은 테스트들이 주는 오락성이, 꽤나 자극적이다. '나를 증명하는 것들'이 아주 쉽게 나오기 때문에 쾌감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한 단어와 한 줄로 표현해 주는 각종 상징들. 타인이 말해주는 자아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포착하는 것 같다. 즉, 나에 대한 '큐레이션'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나를 발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버즈피드는 요즘 유행하는 '자기탐구트렌드'를 일찍부터 캐치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mbti'처럼 말이다. 우리는 왜 이런 답을 찾길 원할까? 이것은 '진정한 나'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완벽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진정한 것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진정성도 사실 완벽만큼이나, 끝내 닿을 수 없는 환상은 아닐까? 이 질문을 고민하던 차에 집어 들게 된 책이었다.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책임 없는 진정성을 꼬집다


이 책은 진정성을 세 가지로 나눈다.

1. 사물의 진정성 - 어떤 것이 진짜인가? 그것이 표방하는 바와 일치하는가?

2. 질적 진정성 - 유기적이고, 공감 가능하며, 소탈한가?

3. 자아의 진정성 - 나만의 고유한 진리와 삶의 기준이 있는가?


저자는 사물의 진정성과 그 질적 척도를 말하기 위해 인플루언서들의 예시를 든다. 욕망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그들의 '진정성'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꼬집는다. 그리고 브랜드들 마찬가지로 각종 서사를 갖추며 일종의 자아를 가질 때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게 됨을 말한다.


저자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건 마지막, '자아의 진정성'이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하는 '고백'과 맞닿아 있다. 정신 분석학적으로 고해는 '내가 나 자신에게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가톨릭적으로 고해는 '타인에게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다.


이는 무의식과 의식의 차이, 내적 자아(이드)와 외적 자아(에고)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진정성은 내적 자아에 가깝다. 그러나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빌미로 자신의 추악함을 계속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즉, 저자는 진정성 자체가 최종적인 미덕과 도덕으로 여겨지는 실태를 꼬집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상담을 받지만, 정작 상담을 받을 땐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질문과 자주 마주한다. 그래서 상담에선 정답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불확실함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지금 나의 선택과 행동이 타인의 기대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질문해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만을 추구하지 않도록 내 욕망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책임진다는 건 성실함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진정성을 '서구 문화를 잠식해 버린 과잉 자본주의의 개념적 해독제'라 부른다. 동의한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돈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닌 진짜 소통을 바라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연기'라는 개념이 자주 생각났다. 모방이 관찰된 타인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이라면 연기는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하며 내 안에 있는 타인을 꺼내보는 과정이다.

이것은 '진정성 있는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다. 내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되거나, 캐릭터 안에 나를 투영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명배우의 연기를 보며,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탄한다. 페르소나를 쓰는 것이지만, 그 페르소나에 완벽히 자신을 바치는 성실함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이 책은 서두에서 진정성과 성실성의 차이를 짚으며 시작했다. 성실성(sincerity)은 '남을 향해' 정직하게 살라는 개념이다. 진실하게 살아라, 남을 속이지 말아라. 이는 사회적 지위, 계급, 직업과 연결된다. 반면 진정성(authenticity)은 '나에게' 진실하라고 한다. 낭만주의의 태동, 개인의 자기표현, 예술운동과 함께 떠오른 개념이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고유하고도 진실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진정성은 ‘자신을 소유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본래 자유를 추구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교리가 될 때 오히려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이 바로 진정성의 역설이다. 진정성을 종착지로 생각하는 순간, ‘진짜 나여야 한다’는 강박은 또 다른 불안과 억압이 된다. 끝도 없이 결핍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의 상담 선생님이 에너지를 바깥으로 써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게 생각난다. 그래서, 어쩌면 진정성의 척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타인을 향한 성실성'인지도 모르겠다.



최적화의 함정


근래 많이 회자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추구미'다. 개인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말한다. 비슷한 개념이 해외에도 있는데, 바로 ‘aesthetics’이다. 특히 핀터레스트에서는 특정 키워드에 aesthetics를 붙여 감각적인 비전 보드를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특히 ‘that girl aesthetics’는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루틴을 실천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소위 ‘갓생’에 대한 동경이 담긴 aesthetics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삶이 꾸준히 이상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치 이 책처럼, aesthetics라는 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 ‘나를 하나의 aesthetics로 가두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은 유튜브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떤 단어로 자신을 정의해 버리면, 정작 진짜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흥미로운 파생어가 등장했다. 바로 ‘도달가능미’이다. ‘도달가능미’란, 추구미가 분명히 보이지만 어딘가 아직은 어설프고 덜 다가간 모습일 때 쓰는 단어이다. 밈으로 시작한 단어지만, 오히려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는 듯하다. 현실적으로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느낌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그것이 바로 '진정한' 개성이기 때문이다.


추구미가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말한다면, 도달가능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진정성이란 결국 “왜?”에 대해 얼마큼 정직하고 성실하게 답을 할 수 있는지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그것은 내 욕망인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착각한 것인가? 욕망에 솔직한가? 목적에 솔직한가?

우리는 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말이 앞뒤가 맞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느낀다. 그 설명이 위선이 아닌, 성실함으로 증명될 때. '추구미'와 '도달가능미'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최적화의 함정'도 여기에 있다. 무언가를 추구하다가 번복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흔들린다. ‘일관성을 잃는 건 아닐까?’ ‘내가 했던 말이 박제되어 버리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솟는다. 그렇지만 진정성은 도달가능미처럼 완벽한 답이 아니라, 답을 향한 질문을 붙잡고 살아가는 태도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보자.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모두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진정성은 매우 미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 뜯어볼 요소가 많은 개념이다. 다만 이 책을 보기 전 가장 궁금한 질문은, '진정성이란 무엇인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조금대로 내려보았다. 책을 읽기 전 나에게 진정성은 ‘최선의 선택’, ‘최선의 말’, ‘최선의 행동’을 의미했다. 지금도 생각은 비슷하다. 다만, 선택 자체가 진정성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진정성은 끊임없이 이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 일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든지 종착지를 내가 다시 설정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일 뿐이라고.



진정성에 대하여,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프로필 사회> - 한스 게오르크 묄러 , 폴 J. 담브로시오

나는 프로필 사진을 고르느라 30분이 걸린 적이 있다. 프로필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진정성에서 프로필성으로'.



<배우라는 세계> - 신용욱

강동원, 원빈, 한지민, 한효주, 이준혁 등 수많은 배우들을 지도한 신용욱 배우의 저서이다. 그가 30년간 연기를 가르치며 생각한, 연기를 지도하는 마음과 자신의 연기 철학을 담은 책이다. 페르소나를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건 충분히 '진정성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문화는소통이다 #art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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