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중독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들의 함정

by KHW

첫 글의 제목치곤 너무 거만하거나 무거운 주제로 시작하는 건 아닐까 하는 지금 나의 자그마한 신경은

살짝 저멀리 접어두고 시작하려 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볼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들로써 가장 솔직해지고 싶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1990년생인 내가 살고있는 2023년은 33년중 가장 혼란함을 가진 시기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 1기인 우리는 IMF를 겪고 2000년이라는 밀레니엄의 시대의 도래를 아주 어둡게 보낸 후

나의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의 영향속에 미치도록 생산성과 안정감을 갈망하며 낭만이라는

단어는 저 멀리 도둑 맞은채 기계처럼 공부하고 경쟁하게 된 첫 시작이 아닐까 싶다.


여담으로 내가 어릴적엔 사람들이 염치가 있었다. 부끄러움을 알고있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사이에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어른들이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imf 앞에서 모든것은 무너지고 생존만을 갈구하며 오로지 성공을 위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개인에게 떠넘긴 사회를 감히 들여다 보지 못한채 서로를 탓하며 살아온 시간탓에 이젠 돈이 없다면 죄인이 된 사회를 남긴것이 아닌가 싶다.


그로인해 시작된 경쟁의 사막속에 한줌 모래알처럼 삭막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것이 그저 하나의 목표인채 달려왔던것 같다.


그렇게 달려오던 시간들 속 시크릿이라는 책의 등장으로 세계도 나의 사회도 시크릿 증후군이라는 말을 남긴채로 다양한 이름으로 변화하며 확언, 지금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말로 탈피한채 꾸준히 달콤한 성공이라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근 3년간 세상은 엄청나게 다른모습으로 탈바꿈 해버렸다.

covid-19라는 재앙앞에 엄청난 호재를 맞은 사람들과 그렇지못한 사람들 그리고 그 호재를 기회로 바꾸지 못하고 추락해버린 사람들에게 사회는 밝은 모습의 성공한 사람들을 앞세워 어두운 이면을 없애버린다.


"가능성의 중독"


힘든 사람들에게 달콤한 유혹과도 같은 가능성이라는 말로 지금의 힘든 시간을 언젠가 보상받고 잘 살게 될것이라는 꿈을 쥐어준채 다른것들을 가려버리고 실패를 겪은 사람들에겐 자신의 모자름을 탓하게 만드는 시간을 강제로 선사한다.


대입에 실패한 삼수생, 취업에 실패한 취준생 그밖에 여러분야의 성공자들의 이면에 있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어버리는 그 말은 너무나 가혹하다.


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나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나의 운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이라는 말로 나를 외면한채 퇴행적인 시간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축쳐진채 그를 지나치게 된다.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면, 사회가 보여주는 성공의 기준이 아니라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다양한 모습을 한채

살아갈 그들에게 찬란한 퇴행을 강제하는 시간들을 마주할때면 먹먹한 가슴을 움켜쥐게 된다.


누구보다 노력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견뎌왔는가, 그저 시간만 보낸것은 아닌가, 남들처럼만 남들만큼만 한건 아닌가 싶은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면 당장 그길을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위에 설명한 질문들은 내가 행복한가 내가 열심히 했는가 내가 만족하는가와 같이 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모두 남과의 비교를 통한 나의 우월감 및 패배감을 자극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다. 하나의 재능을 가진채 태어나 운이 좋게도 그것만을 평생하며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1000개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딱 1가지 내가 못하는 우둔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평생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유튜버도 정치인도 연예인도 교사도 사무직도 기술공도 자신이 맞는 옷일때 빛이나고 행복 할 수 있다.

허나 사회가 보여주는 단면의 성공의 기준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드리게 되는 가능성이라는 말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실패가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 쥐구멍 만큼 통과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시험들의 구조 문제 속에서

합격하지 못한 자신을 처음엔 응원처럼 다음엔 분노로 그다음엔 퀭한 눈을 지닌채 다시 도전하는 챗바퀴 같은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희망 가능성이란 말은 독처럼 나를 죽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실패는 어설픈 재능이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겪어본 나는 그것만큼 가장 뼈아프고 저주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이란 말로 누구보다 자신을 잘아는 그에게 더이상 보이지않는 저 출구를 향해 달려야한다는 코드를 심어주고 뭉개진 다리를 강제하며 뛰게하는 그말은 너무 잔혹하다.

사람들에게 웃으며 다음엔 잘될거야 다음엔 합격할거야 다음엔 성공할거야 라고 말하는 이에게 장난처럼 웃으며 넘긴적이 있는가? 그사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기억과 내 눈에 담고있다면 이제는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생했다고 다음 루트를 제시해주는건 어떨까 싶다.

손에 쥔 모래는 언젠가 다 흩어진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적어지는 모래알처럼 나를 좀먹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번쯤 하면 어떨까?

꽉 쥔손은 다른것을 잡을수가 없다. 그손에 힘을 풀고 쫙 펴야 다른것들을 쥘수있고 걸수있다.

희망은 언제나 밝고 찬란하다. 허나 중독된다면 그것만큼 암울한 것이 없다.


삶은 모두가 원하고 노력하면 성공을 쥘수있는것이 아니다.

가능성을 따라 노력하는 시간을 조금만 바꿔 행복한 삶이라고 고쳐써보면

같은 노력이라도 더욱 값진 보석이 될수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낭만을 원해서 삶을 디자인 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이 글을 끄적대는 나는 쥔것을 놔봤기에 행복을 조금이나마 찾아가고 있다.

중학생꼬맹이가 준수한 재능으로 12년동안 올림픽을 꿈꿧고 그후 사회의 성공을 따라 사업을 시작한후 내가 녹아내리는걸 인지 하지 못한채 달리다 다리가 뭉개졌다.

그때 다시 일어서기 위해 행복할수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보니 지금은 4년차 전업 뮤지션을 하고있다.


매일이 위태롭고 매달이 힘겹다고 생각될때마다. 무대위에 30분,1시간,2시간이 나를 미치도록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