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지 못한 어른들에게

작게 꽃 핀 어린 어른을 위해

by KHW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교생선생님은 대학생이라는 걸 인지 못했다.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왔기에 대체로 남자선생님들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내가 사범대에 진학하고 2012년 교생이 되어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한 달짜리지만 뜨거운 사명감이라는 게 느껴졌었다.


작은 시간이지만 맡은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생 선생님의 역할을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 고등학생 때라지만 모교에선 학교폭력이라는 게 선생님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학교였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 명문이라는 학교라는 게 더욱 기이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아 오늘도 맞는갑 보다 하며 학교생활을 견뎌왔고 친구들과의 싸움이나 괴롭힘보다 선생님들의 체벌들이 어땠는지를 평가하기 바빴다.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입학을 한 후 체벌금지가 시행되었지만 난 코웃음만 쳤다.

우리 학교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역시나 3년 정도는 체벌이 존재했고 어떤 사건 이후로 완전히 없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약 70년간의 폭력의 역사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구나를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잡설로 긴 문장을 채운 것은 앞으로 할 얘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의 상향과 교권의 침해. 교권의 추락등

많은 이야기 속에 한국 사회는 혼란해져 갔으며

7월 어느 날 작은 어른이 작은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꿈을 키워주고 가꿔주던 학교라는 작은 세상에서

작게 움츠려 들었다.


학생과 선생 두 관계는 그저 사람의 직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둘 다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폭력이 난무하던 그 시기를 버티던 나도

폭력을 사용하던 그 시기에 선생도

모두 사람이다.


학생의 인권이 올라간다 하여 선생의 인권이 낮춰지면 안 됐고 선생의 교권이 드높다 하여 학생의 인권이 낮춰지면 안 됐다.


모든 잘못은 그저 방관하고 방치한 어른이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본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갑질을 하고 싶어 한다.

내가 당한 만큼 아니면 당하지 않았지만 나의 우월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남을 짓밟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들을 찾아내 나를 견제한다.


아직 확실치 않지만 학부모의 도 넘은 갑질이 원인이라고 세상에서 얘기한다.

정확한 사실이라고 밝혀진 게 없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나는 그럼에도 말하고 싶다.

평등한 사회는 약자와 강자를 동등히 배려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평등을 가장한 약육강식의 시대라고


선생님은 아이의 교육자가 아닌 보모쯤이라고 여기는 벌레 같은 족속들의 갑질 속에 사명감은 저 멀리 내팽개 친 채로 회사원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내고 싶은 많은 학부모들에게 어디까지가 올바른가, 적절한 선인가 깊이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렸지만 어른이고자 했던 선생님을 추모하고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못한 사람들의 못난 모습을

기록한다.


교생시절 속 가슴 아픈 마음속 이야기 하나를 꺼내며 글을 마친다.


선생님은 왜 우리 학교로 교생 왔어요?

우리는 쓰레기들이에요 공부도 못하는 쓰레긴데

선생님들도 우린 구제불능이래요

엄마 아빠도 공부 못하는 저희를 쓰레기라 불러요.


당시에 나는 너희들이 꽃이라고 언젠가 피어날 꿈들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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