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왜 하니? 시간 아깝게

나에게 완벽한 신은 ‘나’였다

by 유라


내 나이 서른.
소개팅을 할 때마다 늘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첫 번째, “이름이 뭐에요?”

두 번째,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리고 세 번째,

“혹시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

이 세 번째 질문이 늘 마음에 걸렸다.


종교를 왜 묻지?

그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하나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솔직히 다 비슷한 거 아닌가.

(알라만 아니면 된다고, 농담처럼 넘기기도 했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이 질문은 결국 ‘결혼’을 염두에 둔 거라고.

제사를 지내는 집인지,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명절에 어떤 역할을 할 사람인지.

결국 삶의 방식이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평범한 한국 가정이다.
설과 추석이면 성묘를 가고, 제사를 지낸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 가서 등을 달고 소원도 빈다.

그렇다고 해서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다.
불경을 외우지도, 절을 자주 찾지도 않는다.

그냥… 제사를 지내니까 ‘불교’라고 말하는 정도.

그래서 나도 늘 이렇게 답했다.
“믿는 건 없는데, 절에는 가끔 가요^^”


사실 나는,
원하는 건 어떻게든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했고,
이루고 싶은 건 밤을 새워서라도 이뤘다.

그래서일까.


기도를 한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다.

교회 가자고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기도할 시간에 노력이나 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신이 뭔 줄 알아?”
“바로 ‘나’야.”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절대 속일 수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확신했다.

신이라는 건,
결국 약한 사람들이 기대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라고.

교회는?
그저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너를 위해 기도해줄게.”
그 말조차도,
그저 착한 척으로 들렸다.


그랬던 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

모태 크리스찬.


처음엔 그 말이 낯설었다.
그리고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태어날 때부터 크리스찬이라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부모의 선택으로 신앙을 갖게 된다는 것.


내 눈에는 그저
어른의 이기심처럼 보였다.


그때까지의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신은 없다.

그리고, 내가 곧 신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 확신이 어떻게 깨지기 시작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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