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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Nov 15. 2022

귀여운 외모 뒤에 섬뜩한 상상 : WALL-E

귀여운 외모 뒤에 섬뜩한 현실을 담은 SF 영화 : WALL-E


          

좋은 SF 영화는 미래 인류가 높은 확률로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 중 하나를 보여준다.


SF 영화를 보는 관객이 흔히 기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실현 불가능한 놀라운 미래기술에 대한 묘사, 그런 기술들로 꽉 찬 화려한 미래도시 경관, 그 문명을 살아가는 미래 인류의 생활상까지.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기대합니다. 영화 속 모습들이 얼마나 개연성을 갖추었는가입니다.     


대부분의 SF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상상력은 또한 현재의 세상을 바탕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현재의 인류, 문명,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미래에 대한 상상과 그 상상에서 출발한 SF는 높은 개연성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에 잘 만들어진 SF 작품은 예술적 가치를 넘어 미래학,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관점의 가치를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좋은 SF 영화는 개연성이 잘 갖춰져 미래의 인류가 높은 확률로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픽사가 2008년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WALL-E>입니다. 픽사는 1995년 <토이스토리1>을 시작으로, 동화적 요소가 다분했던 디즈니와는 달리 어른도 문제없이 즐길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그려냈습니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장르적 편견을 깨고 당당히 영화 장르의 하나로 등극시켰습니다.     


제가 픽사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의 캐릭터와 배경들이 정작 너무나 상반된 우리네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WALL-E> 그 가운데서도 가장 냉철한 현실분석과 미래예측이 담겨있는 영화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라 설명이 불필요한 분들이나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줄거리는 글 맨 하단에 적어놓겠습니다.          



1. 미래 인류는 모두 초고도비만?     


이동식 침대 위에서 모든 의식주와 공적, 사적 사회활동을 모두 해결한다.


모든 귀찮고 어려운 일을 기술에게 맡긴 결과가 초고도비만?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각기 목적에 따라 인간을 보필하는 다양한 로봇들이지만, 반면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바로 인간에 대한 묘사입니다. 영화 속 인류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고 황당합니다.     


비만이라는 범주를 넘어선 비대해진 신체로 모든 필요를 해결해주는 이동식 다기능 침대 위에서 생활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지인과도 영상통화로 대화를 나누고, 모든 액티비티한 활동은 가상 게임으로 대신합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까지도 로봇이 대신 수행합니다. 심지어 영화 막바지 나오는, 인류에게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온전히 자기 두 발로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신기술은 당대의 인간에게 가장 귀찮고 어려운 작업을 우선으로 대체합니다. 구석기시대 칼, 도끼 등은 맨손으로는 어려운 사물의 가공을 대신하기 위함이었고, 최초의 컴퓨터는 인간에게는 너무나 오래 걸리는 수의 계산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핸드폰이 보급된 이래 인간은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되었고, 최근 신혼 가전 필수품목에 추가된 건조기와 식기세척기는 설거지와 빨래 널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고 있지요.     


그렇게 모든 귀찮고 어려운 일을 기술에 맡긴 결과가 바로 이 영화 속 미래 인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환경이 그들을 더욱 수동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기술에 여타의 행위를 의탁함으로 확보되는 에너지 및 사고기능의 여유로 다른 창조적인 일을 더 많이 수행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저 정도 신체가 되어도 질병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만큼 의학 기술 역시 발전한 결과라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영화 속 인류의 모습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AI는 사고할 수 있다?     


자동순항프로그램 : 오토파일럿. 실질적인 선장. 하지만 그 권한을 부여한 것도 인간이다.


사실은 전부 인간과 인간의 싸움.


이 영화는 우리가 미래기술, 특히 AI에 가지는 대표적인 공포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합니다. AI가 언젠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사고’의 기능까지도 따라잡지 않을까 하는 공포이지요.     


우주선의 오토파일럿은 인간의 지구귀환을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인간 선장과 육탄전까지 벌이죠. 귀여운 그림체로 포장되기는 했으나 이 모습은 충분히 인간을 통제하려는 기계, AI의 무서움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토파일럿의 그러한 행동은 제조사 회장으로부터 ‘지구는 영원히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절대 지구로 돌아오지 마라’라는 마지막 명령에 따른 것이었지요.     


"지구 귀환 계획은 취소한다! 절대 지구로 돌아오지 마!"


반대로 이에 저항하고 인간에게 조력하는 로봇들도 있습니다. 그 로봇들은 주체적인 ‘사고’에 따라 행동한 것일까요? 오히려 ‘지구에 돌아오지 말라’는 명령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최종 명령을 듣지 못했으니 직전의 명령 즉, ‘지구의 환경이 생존에 적절해지면 귀환하라’는 명령을 이행한 것이지요. 고로 영화 속 사람과 로봇에 싸움은 사실 사람과 사람의 싸움인 것입니다.      


저는 AI 기술의 발달에 있어 더 고난도의 문제는 ‘사고기능의 발전’보다는 ‘욕구의 발현’이라 생각합니다. 사고하는 기능은 인간의 사고체계를 얼마나 상세히 묘사하여 구축하느냐에 따라 유사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AI가 그 만들어진 목적과 주어진 명령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욕망하도록 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간이 가진 욕구의 원천조차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3. 지구는 버려질 수 있다?     



우주로 떠나 수백 년 동안 생존할 기술은 있어도,
정작 지구의 환경을 정화할 능력은 없을 지도.


이 영화의 시작 지점이자 가장 무서운 설정 중 하나는 바로 ‘인류가 자발적으로 지구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미래 인류에게 우주로 떠나 수백 년 동안 생존할 기술은 있어도, 정작 지구의 환경을 정화할 능력은 없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끝내 지구를 정화해낸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간’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인류의 기술 발전은 가능한 모든 문제를 빠르고 쉽게 해결하는데 그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지구, 자연,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무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마치 다이너마이트나 핵폭탄과 같이 파괴하는 기술의 발전은 빨랐으나, 폭발이나 방사능 피해로부터 인류와 자연을 보호할 능력은 갖추지 못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지요. 지금 인류와 지구가 겪고 있는 대자연의 위기는 모두 발전된 기술이 그 피해까지는 미처 예상하고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잡초가 자라는데 700년이 걸렸다.


지금까지 귀여운 그림 뒤에 섬뜩하리만치 현실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화를 숨긴, 영화 <WALL-E>였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나 작품을 색다른 관점에서 소개하는 글들을 종종 적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영화 관람 되세요.        



            

※ 영화 <WALL-E> 줄거리 요약     

영화 속 미래 인류는 증가하는 인구와 그 이상으로 증가한 쓰레기 처리 문제 및 환경 오염 문제로 인해 지구에서의 생존이 불가한 지경에 이릅니다. 이에 세계 최대 기업 BnL은 정부와의 협업으로 ‘우주 이주 프로젝트’와 ‘지구 청소 계획’을 실행합니다.     

현재의 크루즈여객선과 같이 생존과 생활을 위한 모든 인프라를 갖춘 우주 유람선에 모든 인류를 태우고 우주로 여행을 떠난 사이, 지구에 남겨진 청소 로봇들이 지구를 청소, 청소가 끝나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며 거대한 규모의 계획이었습니다.     

영화는 당초 BnL의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700년 동안 지구에 남아 활동했던 청소로봇 중 마지막 남은 개체 WALL-E(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 폐기물 처리 화물 운반기계–지구사양)와, 지구의 생태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찾아온 로봇 EVE(Extraterrestrial Vegetation Evaluator : 외계 식생 평가기)의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EVE의 임무는 지구가 생물의 생존에 적합해졌다는 증거 즉, 살아있는 식물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한창 WALL-E와 친분을 쌓던 중 식물을 발견한 EVE는 식물 샘플을 자기 안에 보관하고 우주선에 신호를 보낸 뒤 작동을 중지합니다. WALL-E는 그런 EVE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지요.     

시간이 흘러 우주선에서 EVE를 수거하고, 그런 EVE를 따라 WALL-E도 우주선에 탑승합니다. 난생처음이자 인류로서는 700년 만에 살아있는 식물을 본 우주선의 선장은 곧바로 지구로의 귀환을 명령하지만 사실상 우주선의 전체를 통제하는 AI 오토파일럿은 BnL 회장이 남긴 마지막 명령 ‘지구는 영원히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다. 절대 지구로 귀환하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 선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오토파일럿을 작동 중지시킨 선장은 우주선을 지구로 향하게 하고, 인류는 다시 지구 땅을 밟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에서 파손되었던 WALL-E를 EVE가 지구의 부품으로 수리해주고, 인류와 로봇들이 협력하여 다시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가꾸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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