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와 시크한 바깥양반
비자발적 전업주부와 시크한 바깥양반
4. 아메리카노와 딸기 요거트 스무디
비록 사고로 시작되었고 다소의 혼란이 있었으나 우리는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 그 관계는 당연히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형태의 것이었고 그 불확실성이 서로에게 민망해지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유야무야 이 관계를 연애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첫 시작은 카페 데이트였다. 이전까지 우리의 데이트는 내 자취방과 학교가 전부였다. 바깥양반은 그러한 루틴을 깨고 싶어 하셨고 그 첫 번째 제안이 바로 카페였다.
바깥양반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카페와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커피는 봉다리 믹스커피가 전부였고 일부러 쓰디쓴 검댕물을 마시는 일이 왜 즐거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데이트의 다양성 확보라는 그녀의 요구는 충분히 당위성이 있었고 나는 거기에 따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며 카페라는 공간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익숙해지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메리카노였다. 그 쓰디쓴 물만은 도저히 맛을 알기 어려웠고, 늘 내 선택은 달고 걸쭉하고 시원한 음료였다. 대표적인 것이 ‘딸요스’, 딸기 요거트 스무디였다.
우리의 주문은 대체로 일관적이었다. 그녀는 아아, 나는 딸요스. 그리고 음료를 서빙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우리의 음료를 반대로 제공해 주었다. 그녀 앞에 딸요스, 내 앞에 아아.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우스워하며 세간의 보편적 인식과 실재 사이의 간극, 너무나 다른 우리의 입맛 따위를 논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신다. 여전히 아메리카노보다는 라떼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딸요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녀와 수십, 수백 번의 카페 데이트를 하며 어느새 내 앞에는 딸요스 대신 커피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만큼, 그녀와의 카페 데이트가 즐거워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마찬가지, 정확히 언제부터 그녀에게 연애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불확실하다.
우리의 연애 초를 돌아보며 공통적으로 내놓은 감상이 있다. 초반 1년은 거의 연애가 아니었다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지도 않았고, 달달하게 썸을 타지도 않았다. 제대로 된 고백도 없었고 그냥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이런 관계가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관계가 로맨틱하지 않다거나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아끼지 않느냐면 그렇지 않다. 다만 우리의 관계와 지금까지의 과정이 흔한 연애 이야기나 사랑 노래의 패턴과는 달랐을 뿐이다.
첫 시작의 모양새가 다소 울퉁불퉁했다고 포기해버렸다면 우리는 지금에 이르지 못했겠지. 딸요스가 아아가 되는 변화도, 순간의 사고가 애틋한 관계로 발전하는 변화도 겪을 수 없었겠지.
첫눈에 반하거나 달달한 썸을 타거나 낭만적인 고백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 만남이 운명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긴 시간을 서로에게 스며들며 다소 거칠었던 우발적 만남을 운명적인 것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 운명은 딸기 요거트 스무디가 라떼로 바뀌듯 천천히 스며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스며들었다.
※ 바깥양반의 한 마디
- 술집에서도 나는 그냥 소주, 너는 과일소주를 주문했지만 항상 반대로 받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