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의 두 께
어느 분야에서든
내 마음의 깊이를 이야기했다가 진짜 깊은 진심을 가진 이를 만나면 부끄럽다.
저마다 자기의 진정성과 깊이를 내세우는 요즘 브랜딩의 자극적인 맛이 가끔 싱겁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못한 것도,
너와 나의 언어는 두께가 달랐기 때문임을 안다.
간밤에 내린 빗물 고인 웅덩이를 호수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해 뜨면 영 말라 버릴 마음을.
두꺼운 껍데기를 자르면 속이 훤히 비어있는
피망 같은 말들을 소중히 여겨주는 게 아직 어렵다.
17년을 기다려 이제 막 태양을 본 매미 앞에서
아기 참새 한 마리가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건 시일까 철학일까 코미디일까.
적어도 딱 나만한 글을 쓰면,
어느 날 준비 없이 맞닥뜨린 깊은 진심 앞에서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를 마주쳐도 내가 부풀린 마음 때문에
후회하고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난 나를 위해 다짐한다.
풍성하게 자란 나무 하나를 수풀이라 말하지는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