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귤귤

by 핸드스피크


난데없이 흐르는 콧물과 마주한 적이 있는가. 속절없이 나오는 콧물을 휴지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손가락으로 막아본 적이 있는가. 조용한 공간에서 킁킁 코를 먹거나, 자신도 모르는 새 구슬픈 피리를 불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구슬픈 피리의 원인은 꽉 막힌 콧구멍 사이로 숨이 힘겹게 빠져나가면서서 나는 소리였다.


만성 비염인의 고통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잠을 잘 때 양쪽 코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으로 숨 쉬느라 입이 건조해지는 건 일상다반사다. 혹 콧물이 반짝이고 있지는 않은지, 시간이 흘러 메마른 코딱지가 콧구멍에 붙어있는 건 아닐지 수시로 거울을 꼭 확인해야 한다. 민영을 가장 슬프게 한 사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머리통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는 오랫동안 입으로 숨을 쉬다보면 머리가 커진다는 가설에 기반했다. 민영은 늘 모자를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널널한 모자가 민영에게는 꽉 끼기 때문이다. 오늘도 모자 쇼핑에 실패한 민영은 그 가설을 더욱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민영은 비교적 큰 자신의 머리통을 비염 탓으로 돌리며 툴툴거렸다.


안타깝게도 민영의 코 주변은 언제나 헐어있으며, 외출 시 주머니에 휴지가 없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유 없는 불안은 없는 법. 그 불안들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등학생 민영을 만날 수 있다. 지금보다 키가 더 작았던 민영은 평소와 같이 선생님의 입 모양에 집중하며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한쪽 콧구멍으로 숨 쉬다가 다른 콧구멍마저 막히더니 심상치 않은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민영은 예감했다. 아. 이 콧물은 쉬이 멈추지 않겠구나. 교복 치마를 급히 찾아봤지만 휴지가 없었다. 일단 손가락으로 급한 불부터 껐지만 이미 시작된 콧물은 아마존 강물처럼 범람하여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차마 손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민영은 결국 수업이 끝날 때쯤 양쪽 옷소매가 모두 촉촉해지고 말았다. 비염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모조리 무너졌던 날이었다. 다음에는 옷소매까지 동원하여 코를 닦는 불상사만큼은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민영은 이 일을 기점으로 휴지를 꼭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가방이든, 호주머니든, 어디든.


그래서 친구들은 민영의 외투를 빌려 입거나, 외투를 빌려줄 때 민영이 사용할 예비 휴지나 코 묻은 휴지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민영은 촉촉 내지는 축축한 휴지를 들킴으로써 코흘리개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지만 휴지가 절실히 필요한 친구들에는 더 이상 코흘리개가 아니게 된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거나 무언가를 흘려 닦아야 하는 친구들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며 그동안의 코흘리개 취급에 이를 갈기라도 한 듯 생색을 내기 시작한다. 이러니까 내가 휴지를 들고 다니지! 덕분에 민영은 코흘리개에서 코찔찔이 일등 공신으로 승격한다.


이제 민영은 휴지와 함께하는 인생을 겸허히 받아들인 듯 하나, 용길과 미현은 그런 딸의 비염을 여전히 애달파했다. 유달리 오래갔던 코감기가 비염으로 변하더니 어느 날은 야간자율학습을 못 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져 퉁퉁 부은 눈과 코로 집에 온 딸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하더니 이제는 비염이다. 매일 밤 손수 알로에를 반으로 갈라 아토피 부위에 올려 겨우 진정시킨 것처럼 반드시 비염을 물리쳐주고 싶어 했다. 한의원에서 한약을 달여오고, 비염에 좋다는 오미자와 우엉, 양파즙을 매일 같이 끓여주었다. 하지만 민영의 비염은 차도가 없었다.


지금도 미현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비염에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가 나오면 유심히 보다 어느 날 민영에게 프로폴리스 영양제 등을 사준다. 민영은 엄마의 사랑을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하나 깜빡하고 먹지 못한 날도 많았다. 용길은 민영이 휴지로 코를 풀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들어 휴지는 먼지가 많으니 대신 물로 헹구거나 손수건으로 처리하라고 이야기하며 본격적인 잔소리 행진곡을 시작한다. 민영은 다시금 시작되는 그의 연주에 속절없이 눈을 질끈 감는다. 그것이 잔소리를 멈출 길이라 생각했으나 눈을 떠도 여전히 용길길은 연주에 한창이다. 보아하니 최소 10분 이상이다. 그 와중에 훌쩍거리는 코는 눈치도 없이 협주를 시작하여 용길의 연주에 박차를 가한다. 미현과 용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민영의 비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머물러있다.


인디언은 낭만적인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다. 통상적인 성과 이름이 따로 없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수식어를 적절히 보태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짓는 전통이 있다. 민영은 12월에 태어난 것과 늘 콧물을 흘린다는 특징이 있다. 만일 민영이 인디언으로 태어났다면 필시 매우 반짝이는 코라든지, 코로 피리를 부는 12월의 아이 등의 이름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 시대에도 모두의 측은지심을 사며 콧물을 닦기 위한 나뭇잎 따위를 늘 가지고 다녔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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