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릿
모처럼 반가운 연락이 왔다. 며칠 뒤 약속한 날 저녁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도란도란 떨었다. 수다 삼매경에 푹 빠져 시곗바늘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모를 정도였다.
친구 뒤에 저 멀리서 슬그머니 움직이는 생명체가 내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 갈색 유니폼을 입고 하얀 마스크를 쓴 채 한 테이블씩 옮길 때마다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가 일어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점차 가까워지더니 우리가 있는 테이블 쪽을 향해 똑같이 꾸벅거렸다. 허리를 숙였다가 일어나는 찰나에 직원의 마스크가 들썩거리는 듯했다. ‘우리한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입 모양에 의지하던 나와 친구까지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순간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말씀해 달라고 부탁하기엔 죄송했다. 나와 친구만 아는 무거운 정적이 몇 초간 흘렀던가. 직원이 열 손가락을 활짝 펼쳐 강조하듯이 앞뒤로 흔들었다. '아, 여기 카페는 밤 10시에 마감하나 보다.' 직원에게 알아들은 척, "아~ 네, 알게씀니다."라고 말하고 친구와의 대화를 마저 이어갔다.
5분도 안 지났던 것 같다. 주변을 의식해서 둘러보니, 매장 안에서 손님은 나와 친구 둘뿐이었고, 뒤늦게 뜨거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그제야 10시에 마감하는 거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알고 보니 직원이 "마감 10분 전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으니, 직원이 의아하게 쳐다볼 만했다.
사실은 알아듣지 못했는데 한 번 더 말해달라고 부탁할 자신이 없어서, 한 번 더 말해줘도 앞뒤 상황을 전혀 몰랐기에 단번에 알아들을 리가 만무해서, 간혹 귀찮아하는 듯한 상대방의 표정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대충 알아듣는 척하고 제 딴에는 숨이 막히는 그 순간을 휙 넘겨버리는 버릇이 있다. 그 때문에 종종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수십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열심히 구축해왔다. 오로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한 번은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 개찰구를 나가는데, 직원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길을 막았다. “장애인이세요? 복지카드 보여주세요.”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고 직원의 쌀쌀한 태도에 얼어붙은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직원이 내게 말을 걸어오면 알아듣지 못해도 지갑을 열고 복지카드를 꺼내 보여드리곤 했다. 종만 울려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키오스크가 없는 카페에 가면 보통 받는 질문이 네 가지다. ‘핫/아이스’, ‘사이즈’, ‘포인트 적립’, ‘영수증’. 또 편의점에서는 ‘비닐봉지’, ‘1+1 이벤트’. 심지어 길거리에서는 내게 길을 물을 때가 있다. 넙죽 알려드리고 싶은 본심을 애써 숨기고, 그저 손사래를 치며 “모르게씀니다.”라고 어눌한 발음과 함께 대답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해야만 서로가 덜 민망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럼에도 수십 년간 쌓아온 나의 데이터베이스는 미봉책에 불과한 일화가 무색하게 계속 생기는 것은 거의 불가항력이었다. 누구에게는 별것이 아닌, 어떤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내 뇌가 쉴 새 없이 바빠진다. 내 눈앞에만 보이는 매뉴얼을 쫙 펼쳐서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 상황에 적절한 답을 고르고 행동에 옮기는 과정을 매분 매초 겪는다. 마치 내가 자아에 대한 의식이 없이 살아가는 로봇처럼 변해가는 기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방전이 돼서 먼지를 묻은 채 씻지도 않고 벌렁 누워버린다. 내겐 청결보다 충전이 절실했다. 들어오면 제발 좀 바로 씻으라는 엄마의 한결같은 잔소리와 함께 갓 지은 집밥을 먹으며 아쉬운 마음에 남은 하루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게 쓰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마저 충전한다. 나는 밖보다 집, 그리고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참 좋다. 타의에 의해 선택하고 제약에 부딪혀 마음과 다른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을 잠깐 겪어도 되지 않아서다. 그런데 야속하게 나를 위한 이 밤이 너무나도 짧다. 어둠이 점차 지워지는 하늘을 애써 붙잡고 있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밤을 지새운 게 허다했다. 밤이 나를 삼킨 듯 제법 짙어진 눈 밑의 그늘과 함께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