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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May 01. 2024

누가 알리

매력

내 가슴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까지.

어떤 사람때문에 지치고, 또 지치기를 반복되는 하루를 견티며 보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속에 처음보는 손님이 찾아왔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루해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흥미가 없어졌고,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수다에 웃어도 잠깐일뿐.

나보다 엄청 유쾌하게 오래 웃고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고도 살짝 부럽기도 했다.

새로운 일에도 욕심없고, 날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와도 그러려니하며 ..

매사에 늘 긍정적인 내가 왜 언제부터 재미가 없어졌을까?

맞다, 내 마음속에 어떤 손님이 찾아왔었지

그 손님은 바로 번아웃이었다.

번아웃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어차피 매일 똑같이 보내는 하루를 아깝게 허비하지말자며

나름 노력을 하려고 했으나 운이 나쁜건지 안 좋은 일이 계속 연달아 생겨버리니

힘들고 지쳐 눈물이 흘리고 흐르다못해 말라있던 마음 속에, 어느 구석에 반듯하고 예쁜 구슬이 윤기도 나고 있었다면, 이 날은 산산조각이 날 직전의 위태한 상태였는데 몹시 말라 그만 와장창  깨버리고 만 것이다.

긍정의 손님은 그래도 부정의 손님을 말릴 수 있었지만, 번아웃이란 손님은 너무나도 단호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나는 긍정의 손님하고 헤어지고 부정의 친구들만 잔뜩 사귀며 주어진 하루를 꾸역꾸역 받아들이며 보냈다.

그런 나에게 엄청난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참에, 공연일정으로 프랑스까지 날아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저 많은 연습을 했었으니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에게 최고의 최선이었다.

어쩌면 긍정의 손님이 포기하지않고 계속 찾아온 덕분일 수도 있겠지.

예쁜 친구와 함께 잠깐 시간을 짬내어 일탈을 했던 덕분에 순간순간 밝아지는 내 모습을 찾아볼 수있었지만, 혼자 남겨지면 또 다시 고독에 갇혀 어둠 속으로 들어가있곤 했다.

그렇게 알차고 알찬 스케줄을 다 소화해내고, 미련없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생각치도 못한 프랑스의 친구가 자기동네에 소개시켜주고 싶다며, 호텔까지 잡아줄테니 몸만 놀러와도된다는 유혹같은 초대에 마음을 당최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으리.

그래 나는 완전 극P의 소유자니까 뭐 비행기야 연장하면 되지

그러고선 그 친구의 초대에 승낙을 했고, 나는 남은일정이 따로 있어 이틀 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마 그 때가 처음으로 흥미로워졌던 걸 수도있겠다. 예상치도 못한 당첨된 이벤트의 선물과도 같았으니까.

남은 일정까지 완벽하게 끝이 나고, 이제 진짜 혼자가 된 나는 프랑스에서 남동부쪽에 위치한 샹베리를 가기위해 홀로 기차를 타고 갔다.

잘 가고 있는게 맞나 문득 살짝 두렵기도 했지만 사실 프랑스는 두번째의 방문이라 이미 한번 와봤다고 아주 여유롭게…

사실 어딜가나 친철하게 알려주는 안내원이 계셨기에 든든하게 잘 찾아갈 수 있던거지..

달려가는 기차안에 1인석 자리를 편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데 내 온몸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게끔 반겨주던 제주와 많이 닮아있는 풍경이었다.

먼나라의 프랑스에도 제주와 같은 풍경을 가지고있구나 신기했다.

제주를 참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프랑스에서 보게 될 줄이야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그렇게 한참을 지나 도착한 모나코역에서 만나 샹베리까지 차로 이동하기로 했어서 친구가 어디에 있나 찾으며,

나와 아예 다른 색깔을 가진 색종이를 밟기라도 한듯 낯선 곳에 사람들도 많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침내 친구의 격한 환영의 포옹을 받으며 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는 신이 났는지 상당한 업된 상태로 이곳 저곳 소개해주면서 손만 바쁘게 계속 쉬지를 않았고, 나는 구경하랴 그 친구의 손을 보랴 눈알만 바빴지만 왠지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사람이 한명도 없는,

아는 사람이라곤 그 친구뿐인 아예 모르는 낯선 땅에 혼자 왔지만 꽤나 또 흥미로웠단말이지!

그리고 모나코에서부터 쌩쌩 달려 샹베리로 들어서는 순간 유럽에서 여태 봐온 것과 다르게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딱. 내 스타일이었다.

제주와도 닮은 듯하면서도 정겨운데 고급진 분위기로 풍기면서 엄청난 건물들이 굉장히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내가 영화 속 동네처럼 작고 예쁘고 고풍스러웠다.

눈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계속 구경하느라 바쁜 사이, 나는 그 때 조금씩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걸수도 있겠다.

너무 예쁜 동네에 나도 신이 나서 오두방정을 떨며 동네에 방방 돌아다녔다. 업된 기분으로 그 친구를 따라가다보면 한우 스테이크와 맛있는 맥주에 마무리로 호텔까지 그의 준비된 플랜은 아주 퍼펙트했다. 다음날 조식까지 예약해준 친구덕에 종일 배고플 틈이 없었다.

그리고 생에 태어나서 본 것중에 가장 제일 최고의 절경으로 보여준 에그벨레트 호수는 정말 감동이었다.

그 다음 날에도 친구가 어떤 플랜이 준비되어있건 말건 나는 무조건 또 가고싶다고 가야된다고 호수에 하루종일 있어도 된다고 흥분에 부푼 내 고집에 못 이겨 결국 또 갔던 곳이다.ㅋㅋ

너무나도 예쁜 호수와 맑은 하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태닝까지. 너무 더우면 시원한 맥주를 사다 마시고, 쉬고 구경하고 편안함과 자유로움의 그 자체였다. 그렇게나 너무 좋고 잊을 수 없는 황홀했던 샹베리에서 마지막 날까지 잘 보내게 해준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담아 찐한 포옹과 함께 헤어지고 다시 돌아온 프랑스에서 진짜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또 나의 즉흥의 촉이 멈추질 않았으니..

번아웃의 손님으로 인해 나는 분명 재미가 없다 흥미가 없다 여행은 안할 것이다 원래의 일정대로 마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의 감성은 사라진지 오래됐다 라고 했던 내 모습은 어디론가 희미해져서 사라지고, 흥미에 또 흥미에 얹어서 또 다른 자극을 원했던 나는 비행기를 또 연장의 추가금을 더 내고 독일행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3주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에서 아직까지 무언가의 위로와 쉼이 필요했는지 남은 1주일의 휴가를 또 즉흥적으로 제주로 떠났다.

늘 그렇듯 아무 계획없이 무작정 제주의 땅부터 밟았다. 그리고 어디서 묵을지 고민하다 그냥 동쪽이 끌려서 동쪽에 있는 게하를 알아보다가 파티 게하도 있다길래 사실 말성이였지만 새로운 자극을 너무나도 원했는지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내키는대로 질러버렸다.

파티 게스트하우스라함은 말 그대로 게하에서 밤에 파티를 연다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혼자 와도 친구랑 같이 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가면 당연히 나 혼자 농인일텐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소통도 어려울텐데 괜찮을까? 심지어 파티라 술도 마실텐데 정신없지않을까?

새로운 경험을 원했다. 새로운 만남도 기대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배려를 해주신 덕분에 다 같이 재미있게 소통을 할 수 있었다.

4일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다시 한번 돌아볼 수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있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하루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멍 때리면서 한참 걷거나, 바다를 가만 바라보는 것도 너무나도 위로가 되었고 진짜 아무 것도 하지않아도 너무 행복해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래.. 너 정말 잘 살아왔어 잘 벼텼어 잘 벼텨줘서 고마워 넌 정말 멋있어’

그 순간 메말라 산산조각이 났던 흔적들은 번아웃의 손님과 함께 사라졌고 또 다른 구석에 반듯하고 예쁜 구슬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새파란 하늘과 솜사탕같은 흰 구름에 에메랄드 빛깔을 빛내는 바다를 사랑하기까지도 하고

제주라는 곳도 내가 몇년 전부터 좋아하고, 사랑했던 곳이니까

여기에 있기만 해도 나는 이렇게 행복해질 수있는거구나. 몸소느낀 이후로 한달에 한번씩 제주로 갔다.

7월, 8월, 9월 ...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근황 이야기를 하는데 제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눈이 너무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제주에 살아야되는 거아니냐는 말들을 하나둘씩 듣기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마음이 갑자기 반짝반짝.

‘그럴까...? 진짜 제주에서 살까?’ 말도 안된다듯이 의심스러우면서도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계속 질문을 하면서 제주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말 행복해보인다고 눈이 반짝거리다못해 얼굴까지 반짝 빛나보인다는 주변 지인들의 말에 조금씩 용기를 얻게 되었다.

행복이 주는 힘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그만 둘 용기가 생겼다.

10월 .. 11월이 될 무렵 그때서야 제주에 가서 살 집을 발품 팔기 시작했고, 일자리도 미리 알아보고 알아보다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하나 구하게 되었고, 일자리도 구하게 되었다. 차까지 운좋게 생겼고. 제주 갈 운명이라듯이 계획이 착착 잘 되어갔다.

산산조각의 투성뿐인 힘듦과 슬픔에 갇혀 어둠의 속에 있다 나온 만큼, 더 단단해진 구슬을 통해 감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알게되고 감사함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 모든 것이 감사뿐이었다.

이 때 마음 속의 구슬 속에 에메랄드 빛깔의 윤슬과 수 많은 예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서 모든 일정을 다 마쳤다. 12월 27일이었다. 그리고 제주로 떠났다.

아주 행복하게. 이렇게 될거라곤 누가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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