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회사에 출근하면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인사말을 한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잘도 빈말을 한다. 나의 몰골은 전혀 좋은 상태가 아닌데도 말이다.
상사가 “오늘 OO 자료 제출 날인데, 다 했어?”라고 물어온다.
나는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한다. "다 해 가요. 곧 제출할게요."라고. 실상은 시작도 안 했지만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정자씨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온다. 정자씨는 늘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안녕? 밥 먹었어?”라고 물어온다. 밥 먹을 힘도 없어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애써 지친 티를 숨긴 채 “밥 먹었어.”라고 말한다. 표정만으로도 나의 상태를 알아채는 정자씨는 더 묻고 싶은 마음을 숨긴 채 화면 속의 나를 바라만 본다. 유독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면, 정자씨의 얼굴만 봐도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른다. 어렸을 적 힘들 때면 정자씨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던 것처럼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랬나.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된 나는 우는 걸 티 내고 싶지 않아 눈물을 삼키기 위해 허공을 바라본다. 우는 나를 보았다면 통화를 끊고 나서 더 속상해할 정자씨라서, 눈물이 넘쳐흐를 때면 밥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급하게 통화를 끊곤 했다.
어느덧 시득씨와 정자씨가 결혼했던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나는 제법 그럴듯하게 능청도 부리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도 잘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사회인이 되고 나니 나보다도 어렵고도 힘든 시기를 보냈을 시득씨와 정자씨의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남매가 어렸을 적에 시득씨는 퇴근하는 길에 종종 맛있는 음식을 사 오셨다. 어느 날은 치킨, 어느 날은 피자, 어느 날은 호떡, 다양한 음식을 사들고 오곤 했다. 그중에서도 우리 남매는 치킨을 제일 좋아했기에 치킨을 자주 사 오셨다. 맛난 음식을 사들고 올 때면 시득씨는 우리 남매에게 자랑하듯 치킨을 흔들고, 음식을 사 왔다는 핑계로 우리들을 껴안으며 애정을 갈구했다. 주로 딸인 나에게 자주 그랬다. 시득씨가 껴안아 올 때면 말이 포옹이지, 실상은 나와 시득씨는 육탄전을 벌였다. 껴안으려는 자와 밀어내려는 자. 이 육탄전의 승자는 늘 시득씨였다. 끝내 힘이 빠진 나는 밀어내길 포기하고 시득씨에게 쉼 없이 쪽쪽 뽀뽀 폭격을 받았다. 가만히 안겨서 시득씨에게서 나는 바람 냄새와 술 냄새가 후각에 익숙해질 때면 그제야 시득씨가 몸을 일으킨다. “웬 치킨이야?”란 질문에 “그냥. 기분이 좋아서.”라고 답하던 시득씨.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시득씨가 생각난다. 퇴근길에 맛있는 음식을 사 온 시득씨는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고된 하루를 보냈던 건 아닐까. 시득씨가 맛있는 음식을 사 왔다는 핑계로 가족을 껴안은 건 어쩌면 가족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시득씨의 나이가 되어 사회생활을 해보니 시득씨의 말속에 숨겨진 진심을, 시득씨가 보낸 하루가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시득씨의 애정표현을 밀어내지 말고 같이 껴안아줄걸. 치킨만 반가워하지 말고 시득씨도 반가워할걸.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대도 무뚝뚝한 나는 똑같이 시득씨를 밀어내고 치킨만 반가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