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종식은 없고 같이 가는구나
코로나 시국 2년,
코로나가 시작된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제주도에서 보름 살기를 하고 올라와 짐 정리하던 때가 아주 멀지 않은 일 같은데 2년이 지나간 것이다. 한 몇개월만 고생하면 될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결국 종식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다 같이 고생하면 없어지고 좋은 날이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백신 2차 접종률이 77%를 향해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확진자는 줄어들 생각이 없다.
오히려 델타 변이, 란마 변이 등 각종 다양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돌파 감염이 드러나고 있다. 솔직히 주변에 확진이 되어 엄청 고생한 사람들을 보지 못한 터라 보이지 않는 공포와의 싸움이었던 거 같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도 간간히 확진자가 나와 쉬기도 했지만 바로 직격탄을 맞지 않은 것이 감사하면서도 때론 확 체감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된 일 년 20년도는 정말 조심하면서 일체의 일상생활의 필요한 외출을 빼고는 웬만하면 나가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을 일 년간 명절, 생신 때 조차도 찾아뵙지 못하고 그렇게 일 년을 보냈던 거 같다. 첫 명절을 그렇게 보내고 며느리들 입장에서는 좋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시월드의 명절살이가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일 년이 지나 다시 21년도에 그렇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나는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뭐 시월드 명절살이가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도 않았고 시어머니가 그렇게 잔소리하며 힘들게 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워낙 평소에 편하게 대해 주셔서 사실 나는 보고 싶기도 하였다.
21년도 추석에는 총 8명이 모일 수 있게 되어 각 가족 대표만 각출되어 시댁을 찾아 방문했다. 나는 가지 않았는데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 또한 올해가 마지막이겠지 하며 넘겼다. 곧 11월 9일이 되면 정부적으로 위드 코로나를 시행 것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가 된다고 한다 해도 마스크는 벗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종식되지 않았고 확진자의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마스크 없던 일상으로 되돌아가긴 틀린 것 같다.
위드 코로나가 되면 현재 21년 11월 전면 등교를 시행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사회성이나 전업주부나 워킹맘들의 워라벨을 위한 시간을 생각하면 좋기도 하지만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기도 하다.
전업주부도 아이들이 학교 간 그 시간이 자기 계발도 하고 조금이라도 숨 쉴 수 있는 시간이기에 너무도 갔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이 시국에 '꼭 아이들이 갔으면... '하고 생각하는 게 과연 엄마로서 특히나 전업주부로써 할 생각인가 하는 죄책감도 들기도 한다. 결국 답이 없는 숙제같은 질문이긴 하다.
득도한 엄마이고 싶다
아이들은 우리 몸을 거쳐 왔을 뿐,
아이들은 우리가 가볼 수 없는
아득한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을.
그저 뜨거운 믿음으로,
애타는 사랑으로,
이 지상에 잠시 동행하는 기쁨을 허락하기를
- 박노해-
집콕이 길어지면서 책을 많이도 읽었던 것 같다. 처음에 도서관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주식책을 대출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질적 욕망 '돈'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도 시들하고 비트코인으로 돈도 날리고 보니 역시 우리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박노해 시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의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집에서 아이들을 감시하기 급급했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저 뜨거운 믿음으로, 애타는 사랑으로 이 지상에 잠시 동행하는 기쁨을 허락하기를 이라니... 말이야 쉽지 전업주부로 하루 종일 같이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게임중독이 될까 학업이 뒤쳐져질까 어찌 속이 안 쪼그라들까? 그래도 시인의 철학은 나를 조금은 느긋하게 아이를 바라보게 해주었다.
물론 득도한 엄마들이야 뜨거운 믿음과 애타는 사랑으로 그저 안아주고 격려하고 아름다운 부모 자식관계를 맺고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가를 생각해본다면 바로 대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엄마라고 묻는다면 정말이지 부단히도 노력하는 엄마라고 큰소리로 대답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10번의 잔소리 중 5번은 그냥 침묵을 하거나 아니면 "엄마가 정말 사랑해"라는 말을 그냥 지나다가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웃어준다.
깊게 더 깊게 생각하다 보면 뭘 그렇게 안달복달 하는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하는 마음에 다다르기도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에 대해 또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래도 도전을 멈출 수 는 없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긴 것 같지만 엄청 할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 버리기 일수였다. 눈을 뜨고 하루 세끼를 하면 하루가 뚝딱하고 가버리는 것이다. 뭐 성장기 아들 세명을 키우면서 나 자신을 돌본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긴 하다.
아침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 반찬거리를 사는 나 자신을 깨닫기 때문이다. 뭐 몇 번은 대충 배달을 시켜 먹거나 외식도 하겠지만 어찌 매일 그렇게 하겠는가? 돈도 돈이지만 솔직히 배달 음식은 질리기 때문에 매일 먹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이렇게 관리하지 않는 시간은 정말 속절없이 흘러 금방 하루가 가고, 또 금방 주말이 오고 하는 일 없이 한 달이 가서 벌써 일 년이 다 갔네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러다 11월쯤 '아! 이번 연도에 뭘 한 게 있나...' 생각을 하면 별 것이 없어 허무해지고 괜스레 아이들만 키우다 내 30대가 가고 아직 다 보내지 못한 40대까지 반납할 생각을 하면 맥없이 기운이 빠지고 만다.
아이들은 나와 '그저 긴 인생 같이 가기 위한 즐거운 동지'라는 박노해 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도 안 되겠지만 아이 한 명 한 명 키워내는 게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솔직히 아들 세 명 키우면서 웬만한 육아서적을 다 읽고 삶에서 산전수전공중전 다 체험해 본 나는 나름 노하우를 가득 장전한 엄마이지만 그래도 아이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마 코로나 시국이 오지 않았다면 나의 40대도 그저 아이들 학교 갔을 때 취미생활도 하고 마음 맞는 엄마들과 만나 하하호호 수다를 떨며 또 10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 수다의 시간이 너무나 달콤해서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에 아마 그 습관을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근데 코로나 시국되니 저절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 그저 집에 틀어 박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면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붐이었던 주식도 매일 하고 N잡러가 되겠다고 티스토리 애드센스도 달지 않았는가, 그리고 매일 산으로 가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늙어갈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색하고 겁이 나서 선뜻 브런치의 글만 보고 작가 신청을 하지 못했던 나는 생각보다 쉽게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렇게 공모전도 준비하며 글을 쓰고 있다.
50대까지 방전되지 않기
이제 50대까지 9년의 시간이 남았다. 30대에는 나의 모든 온 시간과 영혼을 다 바쳐서 아이들을 키워 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나만의 시간이 하루에 5시간 정도 생긴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동기부여 강사들처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아이들 케어하는 시간에는 아이들 케어에 집중하고 줌 수업 때 잠깐 산으로 운동 갔다 와서 다시 아이들 케어하고 다시 저녁식사 차려주고 잠시 주식 장마감 시황 확인하면서 주식 블로그도 하였다.
하지만 몇 달을 해본 결과 그렇게 지내니 체력적으로 따라주지 않고 과부하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여성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수다의 시간도 없이 독방에 갇힌 것처럼 그렇게 사니 처음에는 고상한 작가님이 된 것처럼 그 분위기와 기분을 만끽하다 결국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아들 세명을 키우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열심히 해서 50대의 나에게 멋진 모습을 선물해 주고 싶은데 평소에 그렇게 살지 않은 나는 따라 주지 못했다.
그래 놀면 뭐 어때! 계속 달릴 순 없자나?
그리고 초반에는 열정이 만수르급으로 많다가도 몇 달 지나고 현실에 안주하다 보면 결국 다시 꾸준히 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몇 달을 열정 만수르로 달려온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만약 그렇게 되면 '에고 내 주제에' 하며 결국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40대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면 주저하지 않고 쉬었다.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동네 엄마들과 매일 수다의 시간도 갖고 할 말이 없어질 때까지 왠지 이 시간들이 아쉽지 않을 때까지 어떠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몇 달 동안 달려온 나에게 선물을 주듯 열심히 놀았다.
사실 삼형제를 키워내고 이 가정을 아름답게 지키고 있는 전업주부인 나에게는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제적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 '아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치킨값과 커피값은 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상처럼 주어진 시간들은 몇 달은 족히 놀 줄 알았지만, 결국 2주를 못 가서 다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게 하였다. 다시 아침 주식 시황을 들으면서 주식 블로그도 하고 아이들 삼시세 끼, 학업 관리, 살림하면서 그리고 주말에 몰아서 브런치에 글쓰기도 하고 산에 갈 때 동네 친한 언니와 말동무하면서 하루 할당량의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운동한다. 그러다 생리하는 주간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못 봤던 드라마도 달린다. 지금 이렇게 사는 루틴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딱히 큰 시간관리가 있나 싶다. 하루하루 같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몸과 마음의 컨디션 따라 꼭 다 해내지 못한 상황들도 있다. 그럴 땐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면서 이 상황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거의 40대 퇴사해서 사는 삶을 약간씩 누리는 기분도 들었다. 육아와 학업관리만 빼면 거의 비슷한것 같은데 그것이 만만치 않은 것이라. 그냥 하루에 3시간정도 퇴사한 사람마냥 사는것에 만족한다.
50대까지 남은 시간들을 모두 다 알차게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차다는 의미도 빽빽하게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기 보다 그냥 나에게 알맹이 있는 시간이라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너무 안주하는 것도 10년 후 나에게도 실례되는 행동인 것 같다.
왜 그렇지 않은가? 30대에 한 시간만 시간 내서 주식공부를 좀 했다면 40대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아님 30대에 1시간씩 운동을 했다면 뱃살이 조금 덜 나왔을 텐데 하는 아니면 30대에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더라면 비단 책을 내지 않더라도 10년 후 40대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텐데... 하는 후회를 좀 하지 않는가?
그런 후회들이 모여 "20대 이것만은 꼭 해라", "30대 이렇게 살면 40대가 달라진다."아니면 "40대준비하면 노후가 달라진다"식의 동기부여 책이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유토피아같은 아지트를 위해
나는 50대의 나에게 줄 선물을 지금 꿈꾸고 있다. 친구와 함께 꾸는 꿈인데 조금 구체적이다. 둘 다 어떻게든 50대 정도에 나만을 위한 자금을 무조건 모으는 것이다. 취업을 하든 아니면 주식투자로 아님 알뜰살뜰 모으든 그렇게 둘이 모아 그 돈으로 사무실 하나를 사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한강 전망이 나오는 곳도 좋을 것 같다. 요즘 해방타운이라는 TV프로를 보면서 50대 정도에 저렇게 살아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지트 같은 사무실에서 딱히 큰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서로의 독자적 일을 하면서 출퇴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취업을 할 필요가 없으니 경단녀의 제한도 걸림돌이 없을 것이고 내가 사장이고 매매로 샀으니 월세 걱정도 없고 약간의 부동산 투자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이다.
물론 꿈이다. 한강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어떤 방해도 없이 회사원처럼 출퇴근하며 글을 쓰고 원하면 아무 때나 퇴근을 하고 언제든지 휴가를 쓸 수 있는 꿈의 직장을 갖는 것이다. 전업주부로써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출퇴근의 로망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시간의 출퇴근은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사장이 되고 어떠한 부담이 되지 않는 그런 사장님이 되는 것.
아! 거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꿈이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설레이고 짜릿한 꿈이다. 일단은 너무나 원하는 꿈이 있어야 목표가 되고 구체적 계획도 짜 보고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50대의 나에게 좋은 선물을 하기 위해 아이들 오전에 줌수업할때 주식공부도 매일 하고 블로그도 올리고 주말엔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50대의 나'는 참 좋아할 것 같다. 그리고 '40대에 뭘 좀 할껄' 하는 후회는 조금만 하지 않을까? 오늘도 알차게 살아낸 나에게 "오구오구 잘했다."하고 우쭈쭈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