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민주주의와 자유는 양립 가능할까?

기술공화국과 정치적 의사결정의 자동화

by 정관영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¹ 실리콘밸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투자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의 이 도발적인 선언은, 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재편하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한때 자유의 가장 굳건한 수호자로 여겨졌던 민주주의가, 어째서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 선 이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지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인공지능(AI)과 같은 가속화 기술이 인류의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시대에, 사회 공동체의 ‘제어’ 시스템으로서 법과 민주주의의 역할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틸의 관점에서, 규제와 재분배를 통해 현상 유지를 지향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는 기존에 없던 가치를 창조하는 ‘수직적 진보’²의 자유를 질식시킨다. 특히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AI의 등장은 이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AI의 개발과 확산은 기존의 사회 구조와 노동 시장, 심지어 인간의 정의까지 파괴하고 재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파괴적 창조의 과정 앞에서, 민주적 합의라는 느리고 점진적인 제어 장치는 과연 유효할까?


이것은 단순히 기술 발전의 속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술 엘리트가 이끄는 혁신적 자유와 다수 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적 통제 사이의 권력 투쟁이자, 미래 사회의 운영체제를 누가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다. 피터 틸이 던진 이 위험한 화두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AI 시대에 법과 국가 그리고 개인의 관계가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서늘한 통찰과 마주하게 된다.


알고리즘의 왕좌, 텅 빈 인민의 주권


1. 차가운 철인(哲人)의 강림 ― 기술공화국의 청사진


‘기술공화국(Technological Republic)’은 기술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자, 기술이 서구 민주주의와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기술공화국》의 저자들은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면서, 사용하기에 따라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수도, 파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므로,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맨해튼 프로젝트(new Manhattan Project)’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한다.³


알렉스 카프가 ‘기술 관료나 AI로 민주주의를 대체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또한 ‘중립적이지 않은 기술’이 권위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사용하기에 따라 AI 기술이 인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기술의 ‘자율적인 힘’⁴ 즉 기술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발전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술공화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피터 틸의 도발적인 선언을 따라가면, 대의제에 따른 민주적 합의를 기술적 의사결정으로 대체하고 시민들은 그 대가로 완전한 자유를 얻는 세상 ― 어쩌면 멋진 신세계 속 행복한 노예의 세상 ― 이 기술공화국의 유력한 시나리오로 떠오른다. 이 시나리오에서 기술공화국은 국가의 중대사가 시민의 민주적 참여가 아닌,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기술 관료와 AI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이 체제에서 최고의 가치는 효율성과 합리성이며, 복잡한 사회 문제는 가장 최적화된 데이터 기반의 해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다.⁵


이 새로운 공화국의 심장에는 단연 AI가 있다. AI의 경이로운 연산 능력은 기술공화국의 등장을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으로 보이게 한다. AI는 인간이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마치 신의 시선처럼 모든 현상을 조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나아가 AI와 온톨로지(Ontology)를 결합한 AI 플랫폼은 정부·군(軍)·관료조직·기업 등 일체의 조직 개념과 그 조직이 보유한 정형·비정형 데이터 간의 의미적 연결을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해당 데이터가 자동화된 의사결정과 실행까지 이어지게 함으로써 실시간 디지털 트윈을 구현한다. 이론적으로는 장관·장성·최고경영자 휘하에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만 있으면, 중간 관리자 없이도 자동화된 의사결정으로 모든 조직을 운영하고 아우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AI는 정책 입안의 보조 도구를 넘어 스스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주권자’의 지위로 격상될 위험을 내포한다.


AI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자동화’는 이미 현실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AI가 범죄 위험도를 예측하여 경찰력을 배치하고, 금융 데이터를 분석하여 복지 수급자를 자동 선정하며, 전염병 확산 경로를 예측하여 도시의 봉쇄를 결정하는 것은 정책 결정 자동화의 서막에 불과하다.⁶ 더욱 교묘한 것은 여론 형성의 자동화다.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접할 정보와 뉴스를 미리 선별하여 우리를 ‘필터 버블’ 안에 가두고, AI가 생성한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축제여야 할 선거를 여론 조작의 전쟁터로 변질시킨다.⁷ 이처럼 정부의 정책부터 시민의 인식까지 자동화되는 과정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둥을 뿌리부터 흔든다.


나아가 결정 과정이 불투명한 ‘블랙박스’인 AI의 통치는 시민이 그 이유를 묻고 따질 수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⁸ ‘설명할 수 없는 권력’은 민주주의의 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AI가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보이지 않게 유도하는 ‘넛지(nudge)’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⁹ 시민이 자율적인 주권자에서 시스템이 관리하는 예측 가능한 객체로 전락한다면 민주주의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술 엘리트들이 대중들에게 선사하겠다고 하는 ‘멋진 신세계적인 자유’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가 맞는지도 의문이다. 기술공화국이 약속하는 완벽한 질서의 대가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조용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2. 기술공화주의자들이 꿈꾸는 철인 독재 정치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은 느리고 비효율적인 관료제나 대중의 비합리적 판단, 즉 ‘정치’를 거치지 않고, 우월한 기술력, 즉 ‘엔지니어링’을 통해 인류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기술과 성장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AI가 인류의 연금술이자 마법사의 돌이라고 믿으며, 자유시장의 역할을 강조한다. 또한,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관료주의 등을 인류의 진보를 막는 ‘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¹⁰ 이런 이들에게 민주주의의 토론과 합의 과정은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는 불필요한 마찰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 진영 논리, 포퓰리즘 그리고 공론장의 붕괴는 이들의 확신을 더 굳건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들이 추구하는 기술적 해결주의(Techno-solutionism)는 기존 국가 시스템의 법과 규제를 넘어, 자신들이 만든 플랫폼과 코드 위에서 새로운 형태의 주권을 추구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피터 틸, 마크 앤드리슨 등의 도발은 바로 이러한 기술 엘리트들의 새로운 정치적 야망을 대변하는 선언인 셈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기술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AI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기술 지식이 권력의 원천이 되는 ‘알고크라시(Algocracy)’, 즉 알고리즘에 의한 통치로 이어질 수 있다.¹¹ AI가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대에 그 AI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사실상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새로운 귀족 계급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AI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자동화가 가져올 심각한 위험이다. AI의 자동화된 결정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책임 정치’의 원리를 파괴할 수 있다.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등 모든 공적 권력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선거나 의회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그러나 AI가 내린 정책 결정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의 사슬은 끊어지고 만다. 법인격이 없는 AI 알고리즘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며, 그 책임이 편향된 데이터를 제공한 기관에 있는지, 알고리즘을 설계한 개발자에게 있는지, 혹은 시스템 도입을 결정한 공무원에게 있는지 가려내기는 극히 어렵다.


이러한 ‘책임의 공백’ 상태는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권력 계급, 즉 ‘기술공화주의자’들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들은 투명한 법률이 아닌 불투명한 코드를 통해 사회를 통치하는 ‘보이지 않는 입법자’이자, 민주주의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새로운 귀족 계급이 될 수 있다.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통제하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코드’에 담아 사회 전체의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를 설계하지만 ‘선출’되지 않았기에 국민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이 일반인의 통념과 동떨어진 부정적인 철학으로 뒤덮여 있는 경우다. 가령 피터 틸은 독일의 결단주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¹²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때문인지 틸의 경영 및 투자 철학은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제시한 ‘주권자’와 ‘예외상태’의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슈미트의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고 질서를 창조하는 유일한 존재다.¹³ 피터 틸이 강조하는 위대한 창업가의 모습도 이와 같다. 창업가는 시장의 혼돈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기존의 경쟁 구도를 ‘완전히 효력정지’시키는 새로운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독점”)을 통해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한다. 《제로 투 원(Zero to One)》은 곧 무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주권적 결단 행위인 셈이다. 나아가 슈미트는 “법질서는 규범이 아니라 결정에 기초”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모든 규칙과 절차에 앞서 주권자의 결단이 선행되어야 함을 뜻한다. 피터 틸 역시 기업에서 민주적 합의나 점진적 개선이 아닌, 미래를 꿰뚫어 보는 창업가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결정’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 점에서 둘의 사상은 일치한다.¹⁴


이러한 맥락에서 틸의 주장 ―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 은 AI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형태의 사회 갈등을 예고한다. 그것은 더 이상 전통적인 계급 갈등이 아니라, AI 기술의 혜택을 독점하고 미래 사회의 규칙을 설계하려는 ‘기술 엘리트’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소외되고 민주적 통제권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대중’ 내지 99.997%에 해당하는 프레카리아트¹⁵ 사이의 갈등이다. 이 갈등은 AI의 개발 방향, 데이터의 소유권, 알고리즘의 공정성 등 다양한 층위에서 폭발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3. 멈출 수 없는 수렴 ― ‘감시 자본주의’와 ‘디지털 권위주의’의 동상이몽


기술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충돌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이는 ‘효율성’이라는 AI의 최고 가치와 ‘숙의(熟議, deliberation)’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AI의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지난한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 절차는 목표 달성을 지연시키는 비효율적인 잡음(noise)에 불과하다. 기실 민주주의의 이러한 ‘비효율성’은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AI는 데이터 분석으로 도출된 단 하나의 ‘정답’을 즉각적으로 실행하려 하기에, 과정의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나아가 AI의 효율성은 개인의 자유와도 불편한 관계에 놓인다. 자유로운 인간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이는 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변수다. 따라서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AI 통치는 개인의 행동을 최대한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전방위적인 데이터 수집을 정당화하고, 예측에서 벗어나는 ‘일탈’ 행위를 교정하려는 감시 시스템을 강화한다. 결국 개인의 자유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라는 제단 위에 바쳐지는 제물이 되기 쉬운 구조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기술공화국으로의 길은 상반된 정치 체제인 미국과 중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에 나타나는 ‘수렴 현상’을 보인다. 미국에서는 구글, 메타와 같은 민간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감시 자본주의’가 그 길을 열고 있다. 이들은 사용자의 모든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여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며, 그 막대한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여론 형성과 정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자본주의시장과 거대 기술 기업이 사실상의 통치 권력을 행사하는 분산된 형태의 기술공화국이다.¹⁶ 반면 중국은 사회신용시스템¹⁷에서 보듯, 국가가 AI 기술과 데이터 통제의 중심에 서서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체제를 강화하는 ‘중앙집권적 기술공화국’을 노골적으로 구축하고 있다.¹⁸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배경에는 ‘AI 패권 경쟁’이라는 제로섬 게임의 냉엄한 논리가 자리한다. AI 기술이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된 이상, 양국 모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사회 통제와 효율성 극대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빅테크와의 유착을 강화하고, 중국은 기술적 우위를 위해 인민에 대한 통제를 더욱 정교화한다. 결국 ‘누가 통치하는가’의 주체만 다를 뿐 ‘데이터와 AI를 통해 통치한다’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가는 역설이 펼쳐진다.


인류의 마지막 담론 ― 숙의민주주의 vs 기술공화국


피터 틸이 제기한 ‘자유 대 민주주의’라는 도발적인 이분법은 AI 시대에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를 드러낸다. 그의 주장처럼 ‘혁신적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술의 속도를 늦춰야 할까?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소수의 혁신가들이 자유롭게 사용하여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야 하는가, 아니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그 발전 방향을 공동체가 함께 결정하고 통제해야 하는가? 결국 이런 대립 구도는 미래 사회의 운영 원리를 둘러싼 철학적 투쟁과 다름없다. AI의 등장은 ‘누가 통치할 것인가’라는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질문을 현세에 다시 던지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딜레마는 명확하다. AI가 약속하는 효율성의 유토피아는 민주주의의 숙의 과정과 개인의 자유를 대가로 요구한다. 기술공화국은 그 목적지가 미국식 ‘감시 자본주의’든 중국식 ‘디지털 권위주의’든, 결국 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설계한 알고리즘에 의해 다수가 통치되는 ‘책임 없는 권력’의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하여 기술의 발전을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AI는 외부에서 들이닥친 불가항력의 운명이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의 필요로 만든 가장 강력한 도구다. 따라서 질문은 AI를 거부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강력한 힘에 어떻게 민주적 통제의 고삐를 채울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법(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결국 틸의 주장은 AI 시대에 법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법은 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AI라는 강력한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기술 발전의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AI의 결정 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확보하고, 시민들이 기술 발전의 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참여의 통로를 열어야 한다. 만약 법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AI 시대의 민주주의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기술 엘리트들이 설계한 알고리즘의 지배 아래 대중들이 살아가는 ‘디지털 봉건주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민주공화국’ 대신 ‘기술공화국’을 외치는 기술 엘리트들의 “반란”에 맞서 민주주의를 재발명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는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참여와 숙의(熟議) 그리고 통제의 방식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고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며, 전 지구적인 협력과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AI 시대 인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법은 이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인류가 길을 잃지 않도록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양자택일의 함정을 넘어, 기술 발전과 민주적 가치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제3의 길’을 설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국 우리 손안에 있다.




¹ “Most importantly, I no longer believe that freedom and democracy are compatible.” Peter Thiel, 「The Education of a Libertarian」, Cato Institute, 2009. 4. 13., https://www.cato-unbound.org/2009/04/13/peter-thiel/education-libertarian/ (최종 방문일 : 2025. 10. 5.)

² 피터 틸은 ‘진보’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수평적 진보’로, 효과가 입증된 것을 카피하여 1에서 n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직적 진보’로,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새로운 일을 하여 0에서 1로 진보하는 것을 말한다. 피터 틸 & 블레이크 매스터스, 『제로 투 원』, 이지연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4년, 15-16쪽.

³ Alexander C, Karp and Nicholas W. Zamiska, 『The Technological Republic』, Crown Currency, 2025, p45-46.

⁴ 자크 엘륄은 ‘기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기술은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신이 목적이 된다고 주장한다.

⁵ 이는 인간 통치의 불완전함을 기술의 완벽함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지혜와 덕을 갖춘 소수의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고대의 현자는 인간의 이성과 공동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통치하지만, 오늘날의 철인 ― 인공지능 ― 은 데이터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패턴을 찾아낼 뿐 정의나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통치의 주체가 윤리적 고뇌를 하는 인간이 아니라 가치중립을 표방하는 차가운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기술공화국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지배구조다.

⁶ 김중권, 「인공지능시대 알고크라시(Algocracy)에서의 민주적 정당화의 문제」, 법조협회, 법조 제69권 제5호(통권 제743호), 2020년, 185쪽. 이 논문은 예측 치안(predictive policing)과 같은 사례를 들며 공공 영역에서 AI를 활용한 의사결정 자동화의 확산 현상을 설명한다.

⁷ Ibid, 185-186쪽. 소셜봇(social bot)과 마이크로 타겟팅(Microtargeting)이 선거 국면에서 여론을 왜곡하고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⁸ Ibid, 189쪽. 자율적 컴퓨터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부분적으로 '블랙박스'와 같아 민주적 귀속 가능성의 문제를 야기하며, 이는 결정 이유를 묻고 따질 수 없게 만들어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다.

⁹ 김준산, 「개인정보 기반 수익화와 감시 자본주의」,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KB지식비타민, 2020년, 6쪽. 감시 자본주의 기업들은 사용자의 행동 예측을 넘어, 보험료 조정 등을 통해 특정 행동을 유도(넛지)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고 있다.

¹⁰ Marc Andreessen, 「The Techno-Optimist Manifesto」, 2023. 10. 16., https://a16z.com/the-techno-optimist-manifesto/ (최종 방문일 ; 2025. 10. 5.); 마크 앤드리슨은 유명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의 개발자로, 현재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라는 세계적인 벤처캐피탈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글은 기술 발전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과 비판에 대해, 기술과 자유 시장 경제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강력한 기술-자유주의적(techno-libertarian) 입장을 표명한 선언문이다.

¹¹ 알고크라시는 다름 아닌 디지털지배이며, 공공의 의사결정과정의 정당성을 위협한다는 설명으로 김중권, 앞의 논문 참고.

¹² 독일의 헌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로, 1888년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태어나 1907년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21년 본 대학의 법학과 교수로 부임하고 1922년 《정치신학》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33년 나치당에 입당하고 베를린 대학교 교수로 취임하면서 국가 법률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미군에게 체포되어 1년여 간 수용소 생활을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되어 방면되었다. 이후 기나긴 은둔생활을 하면서 여러 글을 집필하였으며, 1985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위키백과, 「카를 슈미트」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B%A5%BC_%EC%8A%88%EB%AF%B8%ED%8A%B8 (최종 방문일 : 2025. 10. 6.)

¹³ 칼 슈미트, 『정치신학』, 김항 옮김, 그린비, 2010년, 24-26쪽.

¹⁴ Laura Bullard, 「The Real Stakes, and Real Story, of Peter Thiel’s Antichrist Obsession」, WIRED, 2025. 9. 30., https://www.wired.com/story/the-real-stakes-real-story-peter-thiels-antichrist-obsession/ (최종 방문일 : 2025. 10. 5.) 이 기사는 틸이 2004년 발표한 "The Straussian Moment"라는 글을 분석하며, 그가 칼 슈미트의 '친구와 적' 개념을 인용해 "정치의 정점은 적을 구체적인 명확성 속에서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이라고 주장했음을 보여준다.

¹⁵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처음 쓴 말로, ‘불안정하다(Precario)’는 이탈리어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다. 플랫폼과 AI가 주축인 사회 구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업 상태로 전락하거나 단순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서 나왔다. 윤석만, 「[윤석만의 인간혁명]AI 불평등 ‘프레카리아트’ 계급사회 온다」, 중앙일보, 2017. 11. 1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082398 (최종 방문일 : 2025. 8. 17.)

¹⁶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기업들이 인간의 개인적 경험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활동을 뜻한다. 연합인포맥스, 「[시사금융용어] 감시 자본주의」, 2020. 10. 6.,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0551 (최종 방문일 : 2025. 10. 5.)

¹⁷ 안승섭, 「"중국 '사회적 신용' 시스템, 정치적 악용 우려 커"」, 연합뉴스, 2019. 2. 8., https://www.yna.co.kr/view/AKR20190208067400074 (최종 방문일 : 2025. 10. 15.)

¹⁸ 김준산, 앞의 보고서, 7쪽. 중국의 사회신용시스템을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통제의 사례로 들며,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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