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무책임한 호모 데우스? 또는 멋진 신세계의 노예?

인류의 지향점에 따라 달라질 법규범

by 정관영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운명은 더 이상 노력이나 의지로 결정되지 않는다. 유전공학으로 완벽하게 설계되어 태어난 ‘우성 인자’들은 사회의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고, 자연 임신으로 출생한 ‘열성 인자’들은 잠재적 질병과 결함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사회의 하층민으로 살아간다. 주인공 빈센트는 심장 질환 확률 99%, 기대 수명 30.2세라는 유전적 판정을 받은 ‘신의 실수’이지만, 우주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유전자를 빌려 자신의 운명에 맞선다. 이렇게 영화 《가타카(Gattaca)》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도전과 성장 플롯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지만, 이와 같은 미래가 정말로 도래한다면 그런 세상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때 공상과학의 영역이었던 이 세계는, 이제 인공지능(AI)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경이로운 발전과 함께 우리 문턱에 당도한 현실의 질문이 되었다. AI는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하여 한 개인의 잠재적 능력과 기대 수명을 확률적으로 예측하고, 유전자 편집 기술은 ‘결함’으로 간주되는 유전자를 사전에 제거하거나 우월한 유전자로 대체할 가능성까지 열어 보이고 있다. 그렇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행복’과 ‘불멸’이라는 가장 오래된 욕망을 기술적으로 실현할 힘을 손에 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힘은 우리를 문명사적 갈림길, 즉 두 개의 극단적인 미래 앞에 세운다. 하나는 스스로를 신(Deus)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소수의 ‘호모 데우스’가 지배하는 미래이며, 다른 하나는 시스템이 설계한 안락함 속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멋진 신세계’의 노예가 되는 미래다. 이것은 인류가 질병과 고통이라는 오랜 숙명에서 벗어날 위대한 기회인 동시에, 《가타카》의 세계처럼 인간을 유전적 등급으로 나누는 가장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질문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인생의 고통과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성 자체를 재설계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술에 고삐를 채울 것인가?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인류의 지향점에 따라 달라질 미래 법규범의 모습을 탐색해 보자.


신들의 청사진인가, 노예의 계획서인가? ― 인류가 결정할 미래


1. 두 갈래 길 ― 증강하는 소수와 통제되는 다수


AI와 생명공학이 인류에게 제시하는 첫 번째 길은 유발 하라리가 명명한 ‘호모 데우스’의 길이다. 이는 인류가 자연선택의 굴레를 벗어나 지적 설계를 통해 스스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는 미래다. 질병과 노화를 정복하고 사실상의 생물학적 불멸을 이루며, 영화 《메트릭스》에서 묘사한 것처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¹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지식을 습득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 미래다. AI 기반 유전자 편집 기술은 치료의 영역을 넘어 지능, 외모, 신체 능력까지 맞춤 설계하는 ‘증강’의 시대를 열고, 이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부와 권력을 넘어선 궁극의 불평등, 즉 생물학적 우위까지 부여할 잠재력을 가진다.²


두 번째 길은 올더스 헉슬리가 묘사한 ‘멋진 신세계’의 길이다. 이곳은 안정과 효율, 보편적 행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소멸된 세상이다. ‘소마’라는 약을 먹으면 언제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 모든 고통과 불안이 원천적으로 제거되고, 모든 시민은 부모 없이 국가의 배양으로 태어나 국가가 설계한 역할에 최적화된 삶을 살아간다. 인간들은 포드주의 ³ 식 자동화로 동일하고 반복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노화 현상 없이 젊음을 유지하고 난교를 하면서 살다가(혼인제도가 없음) 60세가 되면 급작스런 노화로 고통 없이 사망한다. 이 길에서 인류는 고통에서는 해방되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의 부품이자 ‘행복한 노예’로 전락한다.


두 미래를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는 인생의 ‘고통’과 삶의 ‘불가피성’을 대하는 인류의 지향점에 있다. ‘호모 데우스’의 길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질병 내지 기술적 문제로 간주하고 ‘능력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반면 ‘멋진 신세계’의 길은 고통과 갈등을 인간 불행의 근원으로 보고 기술로 이를 제거하여 ‘행복의 최적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결국 이 선택은 자유와 함께 오는 고통스러운 책임을 감수하고(또는 책임을 방기하고) 무한한 성장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반납하는 대가로 고통 없는 안락함을 얻을 것인가의 문제다.


AI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지향점을 모두 실현 가능한 공학적 목표로 전환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AI의 막강한 분석 능력은 생명의 비밀을 해독하여 ‘호모 데우스’로 가는 길을 열고,⁴ 동시에 사회 전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통제하여 ‘멋진 신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⁵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일 수 있으나, 그 기술을 어떤 지향점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라질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개의 극단적인 시나리오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안에서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기술 발전의 비용과 접근성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기에, 값비싼 증강 기술의 혜택은 소수의 엘리트에게는 ‘호모 데우스’의 삶을, 기술 발전으로 소외된 다수의 프레카리아트⁶에게는 ‘멋진 신세계’의 통제된 안락함을 제공하는 양극화된 미래로 귀결될 수 있다. AI라는 동일한 기술이 지배계급에게는 신이 될 힘을, 피지배계급에게는 행복한 노예가 될 안락함을 각 제공하며, 인류를 두 개의 다른 종으로 나누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정의가 흔들리다 ― ‘인간’을 전제로 한 낡은 법전의 딜레마


‘호모 데우스’와 ‘멋진 신세계’의 등장은 ‘인간’이라는 개념이 안정적이고 보편적이라는 대전제 위에 세워진 현재의 법과 윤리 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든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권의 기본 원칙은 ‘인간’의 정의가 명확할 때만 유효하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강화된 인간, 뇌와 기계가 결합된 트랜스휴먼이 등장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보고 인권을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현재의 법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⁷ 이는 법과 권리·의무의 주체 자체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근본적인 위기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역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만약 개인이 스스로를 비인간적인 존재로 업그레이드할 자유를 ‘선택의 자유’라고 주장한다면 국가는 어떤 명분으로 이를 막을 수 있을까?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자유주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또한 기술적 업그레이드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인류는 지능과 수명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생물학적 카스트(biological caste)로 분화될 수 있다.⁸ 이러한 상황에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이 지점에서 법은 더 이상 중립적인 규칙이 아니라, 특정 가치를 사회에 강제하는 운영체제(OS)이자 인류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강력한 ‘알고리즘’으로 변모한다. ‘호모 데우스’ 시나리오에서 ‘유전자편집 허용법’이나 ‘증강인간⁹ 권리법’ 같은 법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합법화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벽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멋진 신세계’ 시나리오에서 ‘사회안정 유지법’이나 ‘데이터 의무제출법’ 같은 법은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일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모든 시민을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한편, 이 같은 변혁의 중심에는 AI 기술 패권 경쟁을 둘러싼 지정학적 체스게임도 자리 잡고 있다. 각 진영이 만들어갈 미래 사회의 모습은 그들이 가진 고유의 정치체제와 문화적 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 혁신을 중시하는 미국은 소수의 엘리트가 인류 진화를 주도하는 개인주의적 ‘호모 데우스’ 모델로, 국가 안정과 사회 조화를 우선시하는 중국은 강력한 중앙 통제에 기반한 집단주의적 ‘멋진 신세계’ 모델로 각 나아갈 수 있다. 이 경우 AI 기술 패권 경쟁은 미래 문명의 운영체제와 규범을 누가 선도할 것인가에 대한 ‘체제 경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어떤 법규범을 선택하고 설계하느냐의 문제는 각 국가가 어떤 미래상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선언이 될 것이다.


3. 새로운 사회계약 ― 존엄을 위한 법규범의 재설계


이처럼 AI가 가져오는 거대한 기술적 파고가 ‘인간’의 법적 정의마저 흔드는 전대미문의 도전 앞에서, 우리는 그저 법의 무력함을 한탄하며 기술적 불가피론에 굴복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법의 역할을 소극적인 사후 규제에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으로 재정의해야 할 때다. 강대국들의 대결로 말미암은 기술의 폭주에 법과 윤리의 고삐를 채우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법전의 딜레마’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법적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이 기술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조절하는 조향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자율적 의사결정 능력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AI 시스템이나 인간을 유전적으로 계급화하는 기술의 연구 및 사용을 국제 협약을 통해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인간’의 정의가 유동적인 시대를 대비하여 인권, 평등, 자유와 같은 핵심 법의 이념을 재해석하고 확장해야 한다. 법은 모든 존재를 생물학적으로 동일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핵심 기술에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할 수는 있다. 이는 기술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초지능·인공일반지능의 출현에 대비하여, 생물학적 호모 사피엔스에 국한된 ‘인간’ 중심적 법이념을 넘어 자율성과 지성을 가진 다양한 존재를 포괄하는 ‘인격체’ 중심적 법이념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모색 또한 필요하다.¹⁰


‘멋진 신세계’의 도래를 막기 위한 핵심은 기술의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시민의 권리와 민주적 절차가 침해되지 않도록 견고한 방파제를 쌓는 것이다. 가령 EU의 인공지능법(AI Act)처럼 고용, 복지 등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 시스템에 대해서는 알고리즘 영향 평가(Artificial Intelligence Impact Assessment, AIIA)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시민이 자신에게 불리한 자동화된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 이유를 설명받으며, 인간의 검토를 요구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여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시민의 손에 쥐어주어야 한다. 이는 ‘무책임한 호모 데우스’¹¹의 출현을 막는 강력한 법적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


기투(企投)한 인간, 존엄을 지키다


AI가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앞에서 우리가 마주한 선택은 명확하다. 기술의 힘에 이끌려 무책임한 신이 되거나 행복한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술에 민주적 통제의 고삐를 채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책임감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을 갈 것인가? 이 선택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존재로 남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정치와 철학의 문제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기술은 운명이 아니다. 기술철학자 자크 엘륄은 기술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발전하는 ‘자율적인 힘’이 되어 인간이 저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기술 결정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으나,¹² 그의 의도는 우리 인간이 체념하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기술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기술이 움직일 미래는 우리가 지금부터 어떤 법규범을 쓰고, 어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영화 《가타카》의 세상에서 인간의 운명은 출생 시의 유전자 코드에 의해 결정되고 개인의 의지나 노력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지만, 주인공 빈센트는 자신의 꿈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유전자가 새겨놓은 운명의 선을 넘어선다. 그의 삶은 ‘인간의 정신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기술이 아무리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고 규정하려 해도 최종적인 선택의 주체는 우리 자신임을 보여준다.


인류가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져(企投)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위대한 여정 속에서,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치열한 고민 끝에 합의한 가치가 기술의 방향을 이끄는 사회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다가올 AI 시대를 유토피아로 이끌 유일한 길일 것이다. 미국식 기술 자유지상주의와 중국식 기술 국가주의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인간 중심의 기술 혁신 생태계라는 제3의 길을 개척하는 선도국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¹ 뇌신경계로부터 발생한 신경신호를 측정·분석하여 컴퓨터 또는 외부기기를 제어하거나, 사용자의 의사·의도를 외부에 전달하기 위한 기술을 통칭한다. 한양대학교 계산지능 및 뇌공학 연구실, 「Brain-Computer Interface: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 뇌와 컴퓨터(기계)를 연결한다」, http://cone.hanyang.ac.kr/bbs/board.php?bo_table=Topics&wr_id=10 (최종 방문일 : 2025. 10. 3.)

² 김지은, 「유전자 연구·아바타 구상 등 영생 꿈꾸는 IT 큰손들」, 한겨레, 2015. 4. 12.,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globaleconomy/686525.html (최종 방문일 : 2025. 10. 3.)

³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고안한 제조 방식으로, 차량을 제작하는 공정을 분업화하고 단순 노동으로 환원하여 대량생산의 기초가 되었다.

⁴ 임대준, 「허사비스 CEO, '알파폴드'로 노벨 화학상 수상...이틀 연속 AI 분야 수상」, AI타임스, 2024. 10. 9., 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064 (최종 방문일 : 2025. 10. 3.)

⁵ 박정한, 「중국 AI가 아프리카를 '디지털 감옥'으로 만들고 있다」, 글로벌이코노믹, 2025. 7. 28., https://www.g-enews.com/article/Global-Biz/2025/07/202507271725222991fbbec65dfb_1 (최종 방문일 : 2025. 10. 3.)

⁶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위키백과 「프레카리아트」, https://ko.wikipedia.org/wiki/%ED%94%84%EB%A0%88%EC%B9%B4%EB%A6%AC%EC%95%84%ED%8A%B8 (최종 방문일 : 2025. 10. 3.)

⁷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로의 진입에 대비하여 인간의 개념을 바꾸거나 확장하는 등 법적 규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김성용·정관영, 「트랜스휴머니즘 시대 이식형 의료기기의 법적 위험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고려법학 제105호(2022년 6월) 참고.

⁸ 유발 하라리는 “새로운 기술이 부유층이나 특정 국가의 사람들에게만 제공된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여러 생물학적 계급(different biological castes)으로 분열될 것”이라고 경고한바 있다. Anderson Cooper, 「Yuval Noah Harari on the power of data,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 of the human race」, CBS News, 2021. 10. 31., https://www.cbsnews.com/news/yuval-noah-harari-sapiens-60-minutes-2021-10-31/ (최종 방문일 : 2025. 10. 3.)

⁹ 인간의 신체적, 감각적,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기술을 적용한 인간을 일컫는다. IGM 세계경영연구원, 「[시금치] CES 2025로 살펴보는 증강인간 기술」, IGM 인사이트, 2025. 1. 17., https://igm.or.kr/insight/426 (최종 방문일 : 2025. 10. 3.)

¹⁰ 피터 싱어는 ‘자의식’과 ‘미래 개념’을 가진 존재라면 ‘인격체(person)’라 불러야 하며, 동물이라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예 : 원숭이 종) 인격체이고, 그런 능력이 없는 갓난아기나 정신 장애인은 인격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싱어가 갓난아기나 정신 장애인을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생명만이 절대적이고 신성하다는 믿음에 회의(懷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을 덜 신중하게 고려하자는 뜻이 아니라 인간 외의 다른 존재(인격체인 동물)를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최훈, 『벤담&싱어: 매사에 공평하라』, 김영사, 2013년, 199-205쪽을 참고; 필자는 이런 피터 싱어의 주장이 미래에 인간 이상의 자의식·미래 개념·감정을 가진 AI가 출현했을 때 우리가 그런 AI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고 생각한다.

¹¹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을 닫으며, 기술의 힘으로 신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 힘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자신의 욕망과 능력 증강에만 몰두한 채,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신’이야말로 인류가 마주할 가장 큰 위험임을 역설한 것이다. 즉,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우리 자신이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년, 588쪽.

¹² 자크 엘륄은 ‘현대 기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기술은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신이 목적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 사회에서 인간은 선택권을 잃고 기술이 자동으로 산출한 선택을 그저 수용할 뿐이며, 인간이 할 일은 기술에 적응하고 기술윤리의 질서에 복종할 뿐이라고 말한다. 엘륄의 이 같은 주장은 오늘날 자율성을 가진 AI 출현을 예언한 것만 같아 놀랍기 그지없다. 자크 엘륄의 ‘기술의 자율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손화철, 『토플러 & 엘륄 : 현대기술의 빛과 그림자』, 김영사, 2006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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