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언니들을 찾아서〉 리뷰

극단 ‘문지방’의 한 번 더 도약을 바라며

by 여백



연극 〈언니들을 찾아서〉는 여성의 결혼, 임신, 출산이라는 공감 가능성이 높은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를 충분한 극적 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한 채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언니들을 찾아 나선다’는 설정 자체는 유효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리얼리즘적 문법을 지향한다면 최소한의 기승전결과 서사적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러나 극은 언니들을 차례로 만나는 과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며, 점차 지루함을 자아낸다. 특히 절정으로 기능해야 할 ‘사이비 언니’와의 만남마저 어떠한 충격이나 쾌감 없이 무미건조하게 소모된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볼풀’의 오용이다. 인물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볼풀 속으로 숨어드는 연출은 서사를 견인하기보다는 연출적 편의에 기댄 선택에 가깝다. 볼풀이 결코 서사의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음에도, 이를 반복적으로 도피처로 활용하는 방식은 극적 논리를 흐린다. 이러한 문제는 ‘꼬모라 228번’이라는 인물에게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초반의 참신한 등장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이 인물이 결국 출산되었는지, 혹은 ‘228번’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했는지조차 불분명해지며, 급기야 명확한 이유 없이 볼풀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인물의 서사적 기능마저 상실된다.


주인공과 남자친구의 관계 서사 또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회피하던 전형적인 태도를 보이던 남자친구가, 주인공의 여정이 끝난 뒤 별다른 변화의 계기 없이 갑작스럽게 화해하는 전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결혼하지 않는 결말을 선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갈등의 심화나 결별의 과정이 제시되어야 마땅하나, 극은 이를 충분히 구축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마무리된다.


차라리 주인공의 위치를 서사 바깥으로 한 발 물리고,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관찰자 혹은 매개자로 기능하게 했다면 극의 중심은 더욱 견고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법한 ‘언니들’의 사연이 관객의 공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밀도를 높이는 보다 적극적인 극적 전략이 필요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나열에 머무르고 만다.


(이러한 방식은 연극 〈몸 기울여〉에서 고양이를 찾는 주인공 ‘홍인’을 중심에 두고, ‘병민’과 ‘동파’ 등 주변 인물들의 서사에 관객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집중시켰던 사례와 대비된다. 〈몸 기울여〉는 ‘홍인’의 내적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를 타인의 이야기에 연루시키되 그들의 욕구로부터는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서사의 밀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무대 미술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이번 작품의 공간 구성은 극단 ‘문지방’의 전작인 〈축하케이크〉의 집 내부 구조를 연상시키며, 전면에 배치된 구덩이는 〈이해의 적자〉의 시각적 문법을 떠올리게 한다. 동일 극단 내의 미학적 연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작품에서 반드시 이러한 세트 구성이 요구되었는지에 대한 미학적 당위성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아르코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제작 환경 속에서, 볼풀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의미 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점은 더욱 뼈아프다.


여성 관객에게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구체적인 극적 전략의 부재로 인해 이 작품이 과연 얼마만큼의 동감을 이끌어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임신,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여성에게 오랫동안 할당되어 온 삶의 무게를 이처럼 불분명한 방식으로 다룬 선택은, 극단 ‘문지방’의 향후 행보를 위해서라도 냉정한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비판이 자가복제의 굴레를 벗어나 보다 단단한 서사 구조를 구축하는 다음 도약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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