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기억이 뚜렷한데 어떤 것은 기억이 없습니다. 인간의 기억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록을 남깁니다.
슬프고 아픈 기억은 오히려 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망각이 축복이라고 봅니다. 나이가 들면 치매현상이 바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망각의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분 중에는 단기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금방 말해줘도 여러 번 같은 질문을 합니다. 스틸 앨리스라는 영화는 여교수가 젊을 때 알츠 하이머를 앓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강의를 하며 기억이 상실되고 자기 집 화장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전에도 약속날짜를 잘못 알고 갈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나의 확신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오늘도 영어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한 것처럼 착각하고 강의실에 갔습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다고 해놓고 집에 두고 왔습니다. 아침에 가지고 간다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잊어버렸습니다.
나이가 들면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나이가 70이 가까우니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알아가려는 호기심에 살아갑니다. 이런 망각증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나에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65세에 치매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지난번 치매검사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검사에는 여러 문장을 외우라는 것이 있고 문장을 거꾸로 외우라는 것도 있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겪으면서 잊지 않겠습니다. 꼭 기억할게라고 합니다. 오늘 기억과 망각사이에서 살아가는 노년의 인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