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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Jan 09. 2022

카카오에서 투자한 그 스타트업에서 알바를 해봤다

재택알바의 함정, 프리랜스 계약서와 스타트업의 어두운 이면

구직을 시작하기 전인 한 달 전에 나는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했었다.


그중에 재택 아르바이트가 하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 대기업들도 고객사로 두고 있고, 장관상도 받은 적이 있으며, 카카오에서 투자도 받은 업계에서 꽤 잘 나가는 AI 스타트업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의 재택알바 경험담이다.


최저시급이 채용공고에 명시되어 있었지만 '단기 재택알바고 겨울이라 추운데 잘됐네' 하고 시작했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걸 3주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최저시급 받고 감당할 감정노동이 아니었고,  무급 야근을 요구해서 최저시급도 안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는 얘기까지 다른 작업자에게 듣고서 결심이 섰다.


이 혁신적인 인공지능 스타트업은 정말 혁신적으로 사람들을 다뤘다.(대했다고 표현하기엔 그들이 사람을 너무 객체화한 것 같아서)


일단 알바에 지원하고 나면 선발되었다고 교육을 위한 줌 링크와 함께 문자가 온다.

첫날, 시작 10분 전에는 줌 미팅에 들어와 달라는 요구사항에(시급제 아르바이트라면 이런 요구는 하면 안 된다) 아침에 바쁜 일정이 있었던 터라 뛰어서 집에 들어와서 옷도 못 갈아입고 모니터 앞에 앉았는데 시작은 원래 시작 예정시간에서도 15분이나 지난 후여서 25분 동안 그냥 기다려야했다.  

여기서 일단 알아채야 할 시그널은 "이 업체는 작업자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일찌감치 도망치라는 뜻이었는데)


"이제 거의 다 들어오신 것 같으니 시작할게요" 하면서 시작 지연에 대한 죄송하단 말 한마디 없이 교육은 시작되었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자기네 생각보다 인원이 덜 들어온 것 같으니 아무 공지없이 시작을 미룬 모양이다. 회사와 프로젝트 소개를 하고, 교육내용은 작업방식과 내용에 대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하시면 짤려요" 같은 엄포도 중간중간 잊을만하면 언급되었다.


계약서는 요즘 많이 쓰는 모두싸인을 통해서 쓰게 되고, 이것도 작업 시작 전이 아니라 며칠 지나고 보내줘서 쓸 수 있었다.

자 일단 계약서에는 비밀유지 조항이 들어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계약 및 업무와 관련된 어떠한 일체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유출해서는 안된다"라고 적혀있으니 개인적인 소감만을 적어봅니다.(이 계약서가 과연 합법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기선 접어두고) 계약이 정확히 어떻게 되어있는지 계약서 내용을 직접 적시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곳에서 한 업무가 뭐였는지는 빼고 근무 방식과 환경만 좀 설명해보겠다.


서버는 느리고, 가끔 터지고, 페이지가 튕길 때도 많고, 작업을 하고싶어도 작업물이 떨어져 기다리는 일이 잦았다. 이 와중에 시간당 작업량에 대한 경고는 공지방에 종종 올라온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작업량으로 노동자를 압박하면서 인권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작업자들 사이에서 이거 그 물류센터 온라인 버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그 최소 작업량이라는 것이 가능한 환경부터 만들어 놓고 일을 시키셔야하지 않겠습니까.


한 번은


"여러분 내일은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쉬기로 했어요~ 다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하고 해맑게 공지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지정된 요일과 시간에 일하기로 약속하고 한 일인데, 마음대로 전날 오후에 작업일자를 취소하고 죄송하단 말 한 번 없이 "무급휴가라고 생각하세요~" 하는 걸 보니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2주 동안 하루 전에 다음날 작업이 취소되는 것은 두 번 있었고, 그럴 때마다 작업자들끼리의 채팅방에서는 시간 기껏 빼놓고 일정 조율해놓은 사람만 바보 되는 거 아니냐, 이 회사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일단 그만둘 결심이 서기 전까지는 '공지방'에 공론화하는 사람은 없었다). 첫날에 다른 사람의 시간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회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도 계속한 내 탓이다. 전날 근무일을 기분대로 취소하고 전혀 이상한 점을 모르는 사람들인 것 까지는 몰랐지만.  아, 당일에 갑자기 정해진 업무시간 중간에 퇴근하라고도 했었지 참.


그리고 작업능률이 떨어져서 짤리는 사람들의 목록은 실명으로 몇백 명이 보는 공지방에 리스트를 띄운다.


 열명 좀 넘는 인원을 굳이..? 짤리는 사람들 망신 주는 것을 이용해서 '너희도 작업량 떨어지면 이렇게 되는 거야'라는 협박성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조금 역한 기분이 든다. 좀 오래 했다던 작업자에게 들어보니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때 효과를 보고 이걸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짓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이것이 작업 능률을 올리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자신이 일을 잘한다 생각했겠지만 이건 좀 트렌드가 지난 인사관리 방식이다. 추한 부분은 숨기려는 척이라도 하지 참... 80년대는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아 보이던데 저런 걸 어디서 배웠지? 8~90년대 중고등학교에서 시험 등수/점수 복도에 붙이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은 작업자당 작업량도 역시 구글 시트에 모두가 볼 수 있게 전시되어있다.  


아, 가장 중요한 급여는 프리랜서 계약으로 3.3%를 떼고 들어오는데 실수로 3.3%를 두 번 공제해서 적은 금액이 들어왔을 때 이걸 "오류로 인해"라고 표현하며 가장 중요한 급여지급에 차질이 생긴 건에 대해서도 역시나 "죄송하다" 한마디가 없었으며, 이 차액은 처음에는 이틀 후에 정산해 넣어준다더니 나중엔 그다음 주가 되어서야 넣어줄 수 있단다. 그리고 역시 사과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시간 동안 작업자를 압박해가며 작업량을 쥐어짜내는 방식은 엄연히 따지면 프리랜서 계약 방식을 쓰면 안 된다. 프리랜서 계약은 회사와 개인사업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3.3% 뗀 급여를 주면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거나, 회사의 지시를 받는 근로감독 관계가 존재하고, 근무상의 강제력을 행사하면 위법이다.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데 이런 근무환경이라면 당신은 근로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계신 겁니다. 프리랜서면 Free해야지.


이 잘 나가는 AI 스타트업에서의 근무 여건은 이 모든 위법사항에 해당한다. 돈 아끼려고 프리랜서 계약서로 계약하고 실제로는 아르바이트 근로자로 쓰는 형태다. 계약서도 며칠 일하고 나서야 이거 싸인 안 하면 급여가 안 나가니 싸인해서 내라며 보내줬잖아. 마땅히 근로계약서를 써야 할 일을 시키며 프리랜서 계약서로 대신했으니 이건 무지해서인가 아니면 그보다 당장의 돈이 아쉬운 건가.


아, 그리고 페어로 일하는 작업자들한테 상대 작업자가 딴짓하는 것 같지 않냐고 개인 톡으로 묻는다거나 하는 일들도 있었다는데, 재밌는 것은 이 괴상한 근로감독 시스템은 아무래도 아르바이트, 아니 계약상은 프리랜서에게뿐만이 아니라 직원에게도 해당이 되는 모양이다. 이 회사는 얼마 전에 인사담당자를 뽑는다고 채용공고를 올렸는데 사전질문 중 이런 게 있다.



재택근무중에 다른 직원이 지원자께서 일하지 않고 SNS를 하고 있다는 제보를 했고,  이에 매니저가 해당 문제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재택근무중에 내가 SNS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직원이 어떻게 왜 알고있고 이걸 제보한다는 전제 자체가 매우 이상하지 않나? 다른 직원도 SNS를 하고있어야 제보 가능한 부분이고, 개인 SNS를 말하는 거라면 회사나 동료가 사생활까지 감시하는게 되니 좀 소름끼치는데.

그리고 업무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있어 지인이나 관련 커뮤니티에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일하다 잠시 쉬는 중일 수도 있는 건데 이게 동료를 제보하고 상사가 추궁할 일인가? (물론 업무 실적이 유난히 나쁘다던가 하는 특수상황이면 음 그래 그 이유를 찾아볼 수는 있겠다만 본인에게 묻는 게 먼저 아닌가?) 회사 내의 동료애라던가 신뢰는 전혀 없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감시자인 상황 설정도 이상하다. 직원이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 중이라면 잠시 SNS를 사용하는 것이 왜 그렇게 문제 될 일이며 그런 식의 근태 감시는 과연 괜찮은 건가? 쿠팡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의 휴대폰 사용을 제한해 인권위 민원이 올라간 게 몇 달 전이더라...


이런 채용공고를 올린 인사담당자부터 일단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작업자들 입장에선 어차피 푼돈이 걸린 일이고 귀찮으니까 대충 관두거나 욕이나 하며 넘어가긴 하지만 대기업이 이랬으면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대기업이 몇십억 단위로 투자해 키우는 회사니 난리가 나야 정상일지도?)이런 질문을 이렇게 대놓고 채용 플랫폼 메인에 걸리는 채용공고에 써놓는 용기는, 이것이 회사의 신념이고 지향하는 가치 중 하나라고 봤을 때는 굉장히 대단하게 보이기도 한다.    



나는 "저 오늘부로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3주 차에 이 일을 그만뒀다. 같이 하던 다른 작업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일단 돈이 필요하고 아이를 봐야 한다던가 재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유로 남아서 일을 했다. 고작 최저시급에 버는 돈 보다 스트레스가 많은 기분이라는 이야기를 이 일을 잠시 하며 함께 일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다.  


대면 업무가 아니라고 해서 사람이 숫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재택 근로자여도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근로형태에 맞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그에 걸맞은 처우를 받는 것이 옳은 길이지 않을까?  (여기 투자한 대기업들은 알고있으려나, 그 돈이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작업자들 사이에서는 이게 대면 근무가 아니고 재택이다 보니 우리가 사람으로 안 보이나 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과연 모니터 뒤에 사람 있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준 재택 아르바이트 경험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 회사는 대규모 펀딩까지 받으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성장 중이다. 블라인드에서의 평가는 4.1이나 된다. 심지어 사내 문화가 그중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채용공고들 보다가 반가운 이름을 봐서 읽다 보니 또 글감이 나와서 갑자기 내 재택근무 경험과 노동자 인권에 대해 써보긴 했는데, 이러면 꼭 스타트업들이 다 이상한 것 같잖아. 다음번엔 꼭 긍정적인 스타트업 경험담을 들고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긍정적 경험을 했고, 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나는 차별이나 인권에 대해 쓰는 사람이니 당장은 이런 경험이 글감이 되어 좋기는 하다만 이런 글감이 계속 쏟아지는 사회의 구성원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곳을 그만두면서 퇴사 이유를 묻는 매니저라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개인 톡으로 말해주기는 했는데 이후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니  메시지는 윗선까지 전달되지는 않은  같다. (최저시급 알바주제에 뭐라는거야? 일지도)


개인적으로는 세상엔 이런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일들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지 못하고, 미래를 이끈다는 (그것도 실제 청년들이 운영하는)스타트업에 의해 아직도 이렇게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걸까 싶다. 이런 스타트업이 중견이되고 대기업이 되면 몇명이나 이런 경험을 하게될까? 이게 당연한 문화로 다시 돌아가면? 이런  미래라면, 너무 우울하잖아.




 *관련글로는 또 다른 AI 스타트업 면접 후기를 추천합니다.

  잘나가는 AI 스타트업 지원과 면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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