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꽉꽉 차있다는 느낌이 참 오랜만이었다.
어제, 시어머님이 쉬시는 날이었다. 아직 60대인 시어머니는 일을 다니고 계신다. 시어머님과 함께 산지도 어느덧 17년째. 나도 일을 다니고, 어머니도 일을 하시니 반찬은 최소한으로 만들어 먹는다.
우리 집 냉장고엔 지난주 친정엄마에게서 받아온 부추김치와 파김치만 가득이었는데 퇴근하고 오니 냉장고 안이 빈틈없이 꽉 차있다.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러온다.
신랑과 아이들 밥을 차린다고 반찬을 접시에 옮겨 담는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도라지무침, 오이무침, 감자볶음, 숙주나물, 물김치, 데친 엉개잎까지 봄내음 가득한 반찬이 가득하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기에, 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밥상이 풍성해지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 어진다. 미소에 이어 감사한 마음도 가득 차올랐다. 쉬시는 날, 우리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주신 정성에 감동도 몰려왔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힘들지 않냐고,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좋은 점이 더 많아서 힘든 것도 모르고 산다. 20년 가까이 함께 살다 보니 이제는 원가족만큼 가까이 느껴진다. 비단 이것만 좋은 게 아니다. 감사할 일이 불편한 것보다 많기에 감사히 살고 있다.
봄으로 가득 찬 밥상을 보니 어느새 내 마음도 봄이다.